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책의 표지가 앞. 뒷면을 경계로 같은 여인이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듯도 하고, 앞 면의 다른 여인인지 동일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외면하고 있다.
저자의 첫 작품을 읽은 것은 2013년도에 출간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책이었고, 얼마 전 읽은 ‘길 위의 소녀’에 이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지 며칠 안됐지만 이 작가의 세 작품의 느낌은 상당히, 모두가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다.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 사건을 다룬, 자전적인 소설로 이름을 알리게 된 저자는 이 작품 때문에 오히려 주위의 아는 친척들로부터의 다양한 호응성을 받고 고심도 하고 또 다른 문학의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시점부터가 바로 이 소설의 출발점이다.
처음 시작은 ‘L’이란 여인과의 만남이 우습지도 않게 이어지는 상황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회상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뜻하지 않게 독자들과 문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게 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작품으로 인해 독자와의 만남과 여러 문화 초대 행사의 게스트로서 바쁜 생활을 해나가던 중 주인공인 델핀은 ‘L’이란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책 사인을 거절했고 이후 파티에서 만나게 된 후부터 마치 쌍둥이처럼 자신의 마음과 너무나도 잘 맞는 그녀를 델핀은 다른 친구들처럼 가깝게 대하기 시작한다.
작품의 성공에 이은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받는 질문, 다음 작품을 언제 쓸 것인지, 준비 중인지, 언제 출간이 될 것인지, 기존의 작품의 연장선으로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다음 이야기를 쓸 것인지….
자신은 이 책을 내면서 실제 자전적이라고 해서 전부 사실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썼다지만 문학이란 진실된 것만이 제일이 아닌 허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델핀에겐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녀 옆에 ‘L’ 은 전혀 다른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다.
즉 문학이란 진실만이 있을 때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이며 곧 허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계속 되뇌는데, 그런 가운데 델핀 조차도 자신의 문학적인 생각을 저버리고 점차 ‘L’이 말한 부분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초대 메일에 대한 답장이나 행사에 가는 절차, 그리고 뭣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글을 쓸 의지가 없어진 것이다.
컴 앞에서 않아 있을 수도 없으며 ‘L’의 도움 없이는 모든 일을 해 나갈 수 없게 될 정도의 의지를 하게 된 델핀은 점차 남자 친구와 주위의 아는 친구들, 그리고 쌍둥이 아이들에게조차도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말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타 책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글자 한 글자 두 사람이 나누는 문학적인 태도와 독자들이 어떻게 문학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른 책임감, 그리고 책이란 진실과 허구 사이, 양갈래 사이에서 어떻게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이루어지고 선택이 되는지,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취재에 얽힌 절차와 그에 따른 심리적인 압박감들이 사실적으로 전해지면서도 이것이 저자 자신을 대표하는 주인공 델핀(실제 저자의 이름과 동일)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 부분인지, 아니면 이마저도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에 가까운 허구성을 내세운 작품인지를 헷갈리게 한 작품이었다.
***** 그렇다면 인물이 아무 데도 닻을 내리지 않은 채 순전한 상상 속에서 태어날 권리는 없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자는 다 알고 있으니까. 독자는 언제나 환상을 탐닉할 의향이, 픽션을 현실로 간주할 의향이 있으니까. 독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믿을 줄 안다. 그럴 능력이 있다. 가공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사실처럼 믿을 줄 안다. 독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죽음이나 몰락 때문에 얼마든지 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만도 위선도 아니었다. -P118
우리는 흔히 책 속에서 델핀이 말하듯 책 안에 인물을 통해 현실적인 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치 진짜 우리의 곁에 있는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현상을 더러 겪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는 더욱 그런 현실이 뚜렸하게 박히는 것으로 봐서는 델핀의 말이 맞다.
진짜 허구이지만 이 허구를 통해서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 또는 허구는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독자들의 선택이기에 창작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꼭 모두가 ‘진실’만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하지만 ‘L’이 말하는 ‘진실’을 토대로 쓰는 것만이 독자들이 기대했던 바이고, 이런 문학적인 기대감은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란 주장 하에 계속 델핀과 설전하는 대목들은 이 내용들을 통해 문학이 주는 가치성, 즉, 진실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만 이야기는 가능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다리를 다친 후에 두 사람이 같이 살게 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는 스릴 성의 느낌도 주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L’의 존재를 밝힐 수 없는 증거 부족의 현장들과 흔적의 부재 때문에 오히려 델핀이 우울증 증세와 무기력증에 걸려 여기까지 왔다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의 상황들이 여전히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읽다 보면 델핀이 혼자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공의 인물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게 할 만큼 글의 흐름은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궁금증이 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진 문학적인 물음이 아닐까도 싶다.
사실인 듯한 묘사들, 즉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란 작품 이후 펼쳐진 글 중 저자의 심리와 생활상의 일상적인 모습들과 ‘L’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란성쌍둥이처럼 보이는 행동들과 말씨, 그 이후의 진정으로 문학이 지녀야 할 진실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서로가 오고 가는 대화들은 심리 스릴러이자 실제이면서도 또 픽션인듯한 경계의 모호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함으로써 또 다른 독서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