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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중간의 집

언덕

언덕 중간의 집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정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1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출산을 하면서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게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가족들, 특히 남편과 아이들 위주의 삶 중심이란 것으로 바꾸어 살아간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 엄마들 모습에서 자신의 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을 때를 상상해보자

큰 마음먹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려고 아이쇼핑을 하던 와중에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발견하거나 아이들에게 입히면 딱 좋을 제품을 발견하게 되면 일순간 망설임과 함께 자신이 만족할 것을 포기하는 순간이 수없이 스쳐 지나감을 알고 있다.

 

이러한 결혼이란 과정 속에 세월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란 구성원 속에 하나의 결집체가 만들어지지만 이러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육아전쟁’에 돌입했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를 들을 적이 있는데, 실제 곁에서 지켜본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한 생명이 태어나고 사람다운 구실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모자란 잠을 쪼개자면서 틈틈이 모유 수유에다 이유식, 목욕을 시키고 책을 읽어주는 행동들, 특히 바로 태어난 생명으로 출발해 미운 세네 살이란 말이 붙을 정도의 영리한 아이들을 대하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노고를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단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 책-

 

처음 ‘종이달’이란 작품을 대하면서 이 작가가 그리는 여성에 대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 그리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여전하다.

 

타인들처럼 무난한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쳐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둔  리사코는 세 살의 딸아이를 둔 전업주부다.

한창 말을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고 불만스럽다 싶으면 고집을 부리는  어려울 때의 아이를 둔 엄마로서 어느 때처럼 동네 또래의 딸아이 연령대를 가진 엄마들과 대화를 하거나 아동도서관에 가는 행동을 통해 여타의 주부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느 날 미즈호라는 여자의 유아 살인 사건에 보충 재판원으로 재판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즈호라는 여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데,,,

 

미즈호라는 여인은 자신의 딸을 딸을 욕조에 물아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떨어뜨려 살해했다는 죄를 지은 사람, 왜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기를 죽여야만 했던 것일까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와 질의 심문을 통해 독자들은 출산이란 고통을 넘어 하나의 생명체를 안은 그 순간부터 닥쳐오는 육아에 대한 어려움을 같이 느끼게 된다.

 

육아 전쟁이란 말이 쉽게 내뱉어지는 말이 아닌 이상 초보의 부모 된 입장, 특히 엄마 된 입장에서 오는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낮과 밤이 바뀌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 모유가 모자라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남과는 다른 발달이 늦어진다는 초조감 외에 정작 서로가 필요한 말은 배제한 채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남편과의 대화, 시댁과의 갈등들을 보이는 장면에선 아마도 결혼을 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주부라면 공감대를 느낄 만한 장면들과 대화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처음 읽었을 때, 같은 또래를 둔 아기 엄마로서의 리사코가 미즈호를 바라보면서 점차적으로 그녀가 놓인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공감대는 점차 자신의 결혼 생활과 남편이 그동안 자신에게 해왔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시댁과의 관계를 생각해가면서 느껴가는 의기소침의 과정들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부분과 없었던 장면도 들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는 영유아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이렇게 번진 사건의 토대가 부부간의 말들, 행간에 보이지 않는 의도된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과 그것으로 인해 자신조차도 모르게 위축되어가는 결혼이란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쌓이면서 벌어지는 행태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느껴보게 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육아도 남편들이 적극 동참해 같이 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루 온종일 붙어서 같이 있는 시간을 통해 귀엽고 예쁘다가도 고집을 부릴 때의 행동을 저지 못하는 순간 자식이지만 정말 밉고 행동조차 울컥하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들을 바라보는 엄마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들은 잠깐, 그 해맑은 순간만을 바라보고 느끼는 행복감과는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렇듯 같은 육아를 한다지만 리사코나 미즈호처럼 친정과도 가깝지 않고 주위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철저히 고립되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면 리사코가 미즈호를 바라보던 시선이 결코 가상이 아닌 현실적인 공감대를 느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보게 된다.

 

‘싸운 적은 있지만 싸운 이유는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p.370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위의 경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란 것은 그것을 내뱉는 사람의 의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간의 쌍방향으로 같이 느끼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즈호는 남편의 냉철한 말 한마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뜻과는 다르게 스트레스성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생한 사건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는 점에서 기혼여성들은 공감을 많이 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결혼, 출산에 이어 육아에 지친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그려지는 이 책에 나오는 여성의 심리가 뛰어난 작품인 만큼 다양한 층의 독자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