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개정판을 대하고 보니 새삼 처음 읽었던 당시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조금은 달리 다가옴을 느낀다.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현재의 사랑법이 워낙 빠르고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탓도 있겠거니 하면서 비교해 읽어 보니 여전히 작가의 짧은 대사들은 깊은 생각을 던지게 한다.
‘사랑’이란 감정 앞, 더군다나 연인 사이도 아니고 부부 사이로 발전해 결혼이란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의 구속이 아닌 구속이 되고, 그 구속이 어떤 형식적인 절차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스러운 서로의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맺어지는 상호 배려 차원에서의 느낌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엔 평생을 해로하기란 정말 어려운 시대란 생각이 들 만큼 이혼율도 증가하는 추세고, 이혼의 원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불륜이 아닐까 싶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 생활에서 닥치는 불륜과 이혼의 현장을 겪은 사람이라면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더군다나 아이들까지 있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게 된다면?
클로에는 두 딸을 가진 엄마다.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고 하면서 집을 나간다.
떠난 남자가 집 앞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불륜의 여인을 생각하고 있다는 현장을 바라보는 클레에의 입장은 비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손녀들과 함께 시골 별장에 함께 가길 권하고 그곳에서 시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말의 위로를 해준다 해도 직접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과연 그들의 말을 들을 여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식구들에겐 따뜻함이나 여유로운 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던 시아버지로부터 위로의 말이라니~
하지만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더 이상 자신의 아들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행복과 사랑에 대한 인생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제목 그녀.. 바로 시아버지가 사랑했던 마틸드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시아버지의 고백은 자신의 옛 시절 처음으로 느꼈던 인생에서의 마지막 사랑으로 끝을 맺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아버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경우를 빗대어서 다룬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배신만큼 크나큰 상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냉랭함과 인정을 받으려 애를 썼던 남편을 위해 자신이 힘이 되어주었던 클로에는 남편의 통보로 인한 가정의 쓰러짐, 더 이상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막막함을 두고 시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들은 아주 실제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눈으로부터 정직하지 못했던 시아버지, 인생에 있어서 어떤 타협점을 찾으면서 살아왔기에 진정으로 자신의 아들이 집을 나간 상태라면 돌아오게 함으로써 사랑이 식어버린 냉랭한 가정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클로에 며느리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세상 밖으로 나아가 더 나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비교해 들려주는 시아버지 자신의 이야기들은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아닌 현실적인 직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 그게 인생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래. 에움길로 돌아가고 상황에 적당히 맞춰가며 사는 게 인생이야. 우리 안에는 약간의 비열함이 있어. 그 비열함은 애완동물과 같아. 그것을 쓰다듬어 주면서 기르다 보면 애착을 갖게 돼. 그게 인생이야.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 타협하며 사는 게 한결 덜 피곤하지.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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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용기 내지 못하고 가정에 머물러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의 상처와 남은 가족들에게조차 온기 있는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을 통해 며느리에게 들려주는 이 고백을 통해 독자들은 과연 누구의 행동이 옳았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까?
내가 당한 현실에서 억울함만 느끼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들이 겪는 상황이라면 시아버지가 말한 대사들은 또 다르게 다가온 사랑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 듯도 하다.
–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서만 말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니?”-p 98
글쎄, 인생에서 다가온 한 순간의 강렬한 선택처럼 느껴지는 사랑이 찾아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정을 버린 아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마음의 차가움을 가정에게 표현했던 아버지의 선택이 남은 가족들에겐 과연 어떤 경우가 좋은 것인지를 묻게 되는 책, 흔하게 들려오는 불륜이란 소재를 이렇게 인생의 긴 여정 속에 하나의 선택으로 다루고 ‘행복’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과 행동이 필요한 것인지를 묻게 되는 책인 것 같다.
실제 저자의 실 생활도 이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클로에의 대사를 통해서 대변해 주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하고, ‘지금의 우리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