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한국에서의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선호도는 대단한 것 같다.
이번의 작품 출시와 맞물려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등극을 하고 판매량에서도 좋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냄새가 묻어나지 않는 느낌 때문인지 매년 노벨 문학상의 단골 후보로 연일 오르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그의 7년 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란 점에서 다시 한번 관심을 끌지 않았나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징인 현실과 비현실적인 경계를 무리수 두지 않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무난히 넘어가게 하는 글의 힘은 여전하단 생각이다.
총 2권으로 이뤄진 책의 분량은 대단하지만 술술 읽힌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독자들이 빠져드는 매력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지만 역시나 글 속에서 다분하게 여기저기 장치적인 묘사라든가 글의 매력적인 요소로서의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구성은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를 조절하는 완급의 효과마저 느끼게 해 준다.
이야기의 구성은 36살의 초상화를 생계의 목적으로 그리며 살아가는 ‘나’이다.
어느 날 6년간의 결혼 생활에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이미 불륜을 저지른 남자가 있고 그 이후 ‘나’는 집을 나와 배회하다 동창의 아버지인 유명한 일본화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별장으로 옮겨 생활하게 된다.
그곳에서 아마다 도모히코가 그린 ‘기사단장 죽이기’란 제목의 미 발표작을 천장에서 발견하게 되고 그 그림을 감상한 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등장인물을 일본화에 맞게 그려놓은 듯한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 중에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는 기사단장은 실제로 집 옆에 있었던 구덩이 안에 있었던 방울을 가져오게 됨으로써 그곳에서 풀려난 이데아가 현신하는 모습으로 나의 곁으로 오게 되고 이후 ‘나’가 겪게 되는 기이한 일들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인지 비현실적인 어떤 가상의 일들에 의해 꿈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하루키의 글에 의해 서로가 교차하듯 보인다.
책은 곳곳에 하루키가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꾸준히 발표해왔던 흐름을 유지하되 한층 완숙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의 특허인 음악과 와인, 요리를 통한 글의 설정은 여전한 매력을 뿜어낸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돈 조반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일본화라는 격식에 맞춰 그린 그림을 통해 유명한 클래식의 음악은 기본이고 ‘나’가 창작활동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듣는 음악들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눈길을 돌리게 만들기 충분한 여력을 발휘한다.
책은 빈에 유학해 서양 화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아마다 도모히코의 감춰진 당시의 시대적인 역사 사건들 속에 예술인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인 양심의 고통과 개인적인 아픔을 저자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느끼게 하고 있으며 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가 여행하면서 스치듯 만났던 스바루 타는 남자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일, 이후 묘한 존재인 이웃인 멘시키를 만나면서 그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가 자신의 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웃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들이 때로는 스릴처럼 추적해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얼굴 긴 남자를 따라 어둠을 걷혀 모험을 감행하는 일들까지,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를 연속적으로 그려나가는 설정이 책 속으로 빨려 들게 한다.
여기에 기사단장의 모습을 나타난 이데아와 2권에서 다뤄지는 메타포의 출현은 현실 세상과 비현실 세상의 구분은 어떻게 느끼고 다뤄지는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골똘히 하게 만들어 놓는다.
–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P.94~95
화가로서의 그림을 대하는 자세, 농도의 짙음과 창작활동에서 오는 다양한 기분과 중압감을 하루키 방식만으로 그려낸 이 책은 틈틈이 ‘나’가 듣는 클래식 음악과 음식의 조리 과정을 통해 여전히 하루키 만의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연의 경관과 더불어 그림에 몰두해나가는 ‘나’가 겪는 일장춘몽의 일처럼 그려지기도 하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의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