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8년 3월 7일

아르카디아

아르카디아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한때 유행했던 히피족이란 말-

자유분방하고 자신들의 의지에 따른 삶을 추구하던 그들의 이야기는 노래나 사회성 짙은 분위기 속에 그들의 삶을 보는 느낌이 종종 색다르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여기 아주 작고 작은 아이가 있다.

이름도 그에 맞는 비트라고 불린다.

 

1960년대 미국 뉴욕 주, 자신들을 부르는 히피들이 모여서 만든 공유하는 삶 자체를 만든 사람들의 정착지는 아르카디아다.

 

처음 제목을 대했을 때는 차의 이름이 생각나기도 했었던, 낯설지 않은 명칭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비트의 인생을 통해 유토피아적인 삶, 삶을 통한 다양한 모습들을 보는 느낌이 문체적으로 산문적인 느낌을 받게 한다.

 

아르카디아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비트는 여러 삶의 형태를 지니고 몰려든 사람들과의 생활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오로지 그들의 삶 속에서 서로의 공동 소유로써 살아가는 삶 속에 자라면서 첫사랑을 느끼는 과정, 그 사랑과의 이별과  아르카디아에 무분별하게 몰려드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문제가 발생되고 결국 아르카디아는 해체되는 아픔을 본다.

 

책은 총 4장에 걸쳐 비트의 생을 보인다.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사람들, 이 속엔 비트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자라면서 성인이 된 비트는 사진학과 교수로서 다시 만난 첫사랑 헬레와의 사이에 딸 그레테가 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헬레가 어느 날 산책 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찾고 기다리는 시간의 흐름, 그런 와중에 부모의 병과 사망을 통해 다시 찾은 아르카디아와의 재회는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인생 고해란 말이 있듯이 살다 보면 기쁨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아픔도 있고, 슬픔, 괴로움,… 모든 감정을 수반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말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아르카디아란 곳의 유토피아를 이루려 했던 사람들의 해체 과정은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결국 자연의 순리와 더불어 또 하나의 상실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과연 아르카디아 건설에 참여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는 구절들, 비트가 아르카디아를 떠나며 새로운 바깥세상에 합류하며 살아갔지만 결국 아르카디아에 돌아오면서 유년 시절의 그 모든 일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감정들은 저자의 글 하나하나에 모두 들어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이곳이 진정 아르카디아란 생각을 들게 한다.

 

책은 운명과 분노와는 또 다른 분위기,  잔잔함 그 자체다.

 

어떤 커다란 획일적인 사건도 없고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동과 노력을 통해 자신들이 원했던 공동체 안에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헤어지고 다시 모이는 과정이 경조사를 통한 것이란 사실들은 아르카디아란 상상 속의 장소가 마치 현재 어떤 곳에 실제적으로 있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묘사가 인상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비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인생 모두를 통틀어 아르카디아는 그에게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영원의 안식처이자 또 다른 인생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장소란 생각이 든다.

 

 

*****   이제 그는 아주 분명하게 깨닫는다. 시간이 아주 유연하다는 걸, 고무줄 같은 것이라는 걸. 시간은 길게 늘어날 수도 있고 단단히 뭉쳐질 수도 있고, 매듭이 지어지고 접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시간은 끝없이 순환하는 고리다. 밤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낮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있을 것이다. 한 해가 끝나면 다른 해가 시작될 것이고, 또 끝날 것이다. 노인은 죽고, 아기는 태어난다. ㅡ p 116

 

 

누구나 유년의 시절을 관통하는 기억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만큼은 쉽게 지워지지가 않듯이 비트의 삶을 통해 저자가 보여준 유토피아의 성공적인 결실이 아닌 그 유토피아 자체를 이루려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런 만큼 비록 실패는 했더라도 삶의 긴 연장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아르카디아는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있겠단 생각을 해 본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우아한지 어떤지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 이혼을 했다.

 

 

첫 구절부터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하게 만드는 구절, 더군다나 자신이 아내와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나오고부터의 일을 그린 담담한 일상들을 적은 글은 전

작품을 다시 만난듯한 느낌을 준다.

 

 

출판 편집부에서 일하는 48세의 중년 남자 오카다 다다시는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을 둔 채 아내와 이혼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만큼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

시급한 상태, 다행히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집은 자신이 그토록 꿈꿔오던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다.

 

 

집주인은 소노다 할머니, 일본의 1950년대에 지어진 목조 가옥을 소유하고

생활했지만 미국에 있는 아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함께 살기 위해 잠시 떠나

있게 된 것이 오카다와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집을 소유하되 고치는 것도 오케이, 단 전체적인 집이

가지고 있는 기초는 유지한 채 수리를 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오카다는 싱글로 돌아온 만큼 집을 수리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그토록 고대하고

원하던 형태의 집 모양과 내부를 가지기 시작한다.

 

 

 

책은 전 작품인 여름은… 에서 본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같이 느껴보게 한다.

 

 

단순히 집을 고치고 살기 위한 목적을 가진 계획 안에 포함된 독신자로서의

홀로 즐기는 생활, 더군다나 후미란 고양이와의 관계는 고독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오래된 일본 전통의 집 내부의 세세한 표현과 집을 자신의 취향대로 맞게

고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한때의 연인이었던 가나와의 만남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혼의 이유가 어찌 되었건 이혼하기 전에 아내 외의 만남을 가진 여인, 직업상

같은 연계로 인해 만남을 유지하다 헤어졌지만 그녀의 아버지 병간호 관계로

다시 만남을 이어가게 되는 일상의 잔잔함은 독신으로서 살아가는 오카다에

있어서 또 하나의 묘한 애정 관계를 이어가게 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홀로 된다는 것, 돌싱으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한 동경은

자신들이 누리는 것과는 또 다른 부러움일까?

 

 

“오카다는 우아하군”

 

 

회사 직원으로부터 들은 이 말 안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던져버렸다는 시원함,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장성한 아들을 두었기에 당신 자신의 이 생활 자체를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란

위로?

 

 

본인 자신의 이런 생활 자체를 우아하다는 느낌 없이 오로지 이제는 부부로서

함께 해야 할 일들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정도를 느끼는 그에게 이 말은

오카다는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생활의 큰 변화 없이 일상적인 일 속에 가나와의 만남은 또 다른 자신의 생활

일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흐름을 따라 독신이라는 홀로 생활하는 미래의

모습들을 그려보게 한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현실은 특히 가나의 아버지

병 진행 상황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부분으로 책을 읽으면서 일본이나

한국이나 고령화 시대에 벌어질 수 있는, 아니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현실의 생활 패턴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병 없고 혼자의 힘으로 얼마든지 독신으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자신의 집은 아니지만 욕조, 부엌, 침실, 특히 책이 많아서 보관 장소로서의

공간을 이용하는 수리 장면들은 홀가분하게 얼마든지 독신으로서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지만 가나의 아버지처럼 어느 순간 쓰러지게 된다면,

더군다나 치매라는 병으로 발전이 되는 상황에서 느끼는 가나와 자신의

관계는 미래에 둘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우아함의 기준은 어떤 근거를 두고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책 속에서 그리는 집 내부의 묘사, 그 속에서 내가 들어가 살기 위해 수리를

하는 과정에 대한 부분들은 시간의 여유와 함께 외로움과 함께 한다는

독신자로서의 이러한 것을 즐기는 여유,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나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우아함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 오카다의 속마음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어질 수 있을까?

 

미래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상대가 있고 그 결심의 행로를 보이는 오카다란

인물이 보인 행동과 고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타인들이

말하는 우아함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우아함의 결실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게 한 책이다.

 

주어진 하루하루의 평온한 생활 속에 벌어지는 일들의 변주를 통해 독신이란

생활에 대한 우아함을 동경하는 주변인들의 느낌과 그 반대로 홀로 남아서

생활하게 된 주인공의 실감하는 우아함에 대한 느낌을 비교해 바라볼 수 있는

책, 더군다나 책 제목이 암시하듯 한 오카다의 마지막 행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