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8년 5월월

명상록

명상록명상록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로마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하고 막강한 시대를 구가했던 시대를 말한다면 5 현제 시대를 말하곤 한다.

그만큼 다섯 명의 각기 다른 황제들이 통치한 시기를 통해 로마제국이 유럽의 모든 영토를 거의 손에 넣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특히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아스 황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 황제를 생각하면 영화 ‘글레디에이터’가 생각난다.

영화 속의 한 장면 중에서 남자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 전장의 천막으로 기억되는데, 그 안에서도 붓을 들고 뭔가를 쓰는 듯한 것이 인상 깊었다.

 

카이사르가 남긴 책도 유명하지만 타인들이 보기에도 최고점에 이르는 높은 지위와 특수한 전장이란 환경에서 자신의 내면을 통해 들여다보고 생각을 다듬어 이 글을 썼다는 점은 보통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인 자신이 쓴 일기를 바탕으로 엮은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판으로 출간한 책이다.

명상록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처럼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의미를 하며 읽어나가는 것이 더 뜻깊게 다가오게 하는 책이다.

 

 

*****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날들은 점에 불과하고, 우리의 실재는 유동적이며, 우리의 인지능력은 형편없고 , 우리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다 썩게 될 것이며, 우리의 혼은 늘 불안정하고, 우리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고, 우리의 명성은 위태롭다. 요컨대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고, 호흡에 속한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다. (p52)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 더욱 주의를 해야 할 것을 무엇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느낄 수가 있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 시대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관심사, 삶의 중요성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에 대한 생각, 즉 행복이란 형태를 통해 스토어 학파를 배운 출신답게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대해 심오한 생각을 많이 한 듯한 글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의 선함을 믿는 글들은 시대의 역주행이 아닌 여전히 모두가 공감할 만한 부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읽다 보면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클리턴이 해마다 다시 이 책을 읽는지를 조금은 이해가 됨을 느낀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통치자로서의 외로움과 고독, 그 외에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쓰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실히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글들이 담겨 있기에 이 책은 언젠가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중에 하나란 생각이 다시금 들게 한다.

 

스스로의 자만을 경계하며 쓴 글, 두세 번 일독을 해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풀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이다.

전작에서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서정적인 감각의 표현을 잘 그리는 작가란 생각을 하는데, 이번의 작품은 거기에 추리라는 것을 더해 넣어 또 다른 감각을 느껴보게 했다.

 

오바타 겐야는 미국인과 결혼 후 미국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고모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일본 여행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생을 마감한 고모는 겐야에게 뜻밖의 막대한 유산을 남겨준다.

 

400억이 넘는 막대한 금액의 유산, 그런데 고모의 유언장에는 어린 시절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는 고모의 딸 레일라를 찾게 된다면 유산의 70%를 주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레일라는 살아있다는 말인가? 곧 사설탐정을 고용한 겐야는 이후 레일라가 실제로 존재하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하 추적과 함께 고모가 살았던 대 저택에 머물면서 그 주위의 식물과 바다 풍경을 함께 느껴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책은 겐야의 시점으로 진행이 되면서 고모가 살았던 저택에서의 풀꽃들, 식물들, 고모의 저택에서 친분을 쌓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 폭의 서정적인 감상을 느끼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알고 있는 레일라의 실종사건, 그 사건의 진실 속에 감춰진 고모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를 연신 탐구해가는 겐야를 통해 독자들은 정말 레일라는 살아있는지, 아니면 그저 허상에 불과한 사실이었는지에 대한 추리를 함께 하게 된다.

 

천륜이라 불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그 안에서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더 이상 좌지 할 수없었던 고모의 선택은 그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나뉘어 버린 안타깝고 쓸쓸한 한 인간의 여생을 보는 듯하다.

 

종반부에 이르러서 밝혀지는 진실의 충격은 어머!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책 제목에서 의미하는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를 이해할 수 있는 고모의 생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곳곳에 뿌려놓은 듯한 사건 해결 실마리에 필요한 작은 단서들, 안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비밀을 끝내 감춘 채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고모의 인생 자체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긴박한 스릴의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획기적인 결정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가운데 조용한 풀꽃들의 움직임과 고모의 연관성이 쉽게 떠나질 않는 책이다.

폐선상의 아리스

페선상의 아리스표지

폐선상의 아리스 – S큐브
마사토 마키 지음, 후카히레 그림, 문기업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4월

표지가 심쿵함을 유발한다.

만화적인 느낌, 모처럼 설렘을 느끼며 읽은 로맨스 책이기에 더욱 그렇다는 느낌도 들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즈리하 로우라는 17 살의 학생이다.

기억에도 없는 친부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된 로우, 사실 그에겐 그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엄마와 계부, 그리고 이복 여동생을 놔두고 도쿄를 떠나 친부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살고 있는 카미코미나토라는 아주 작은 무인역에 도착,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아버지와는 연락이 되질 않는다.

 

이때부터 혼자만의 여행처럼 로우의 여정이 그려지는데 찾는 장소가 비로 인해 쉽게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선로를 보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다.

그때 모든 감정들이 복받치면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빗속에 누워버린 로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옴을 듣게 된다.

 

그녀가 바로 책의 제목인 아리스 라 불리는 소녀다.

마침 그곳 고장에서는 유령이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리던 곳이고 때마침 나타난 아리스를 본  로우는 이후  아리스와의 만남을 통해 풋풋한 사랑의 느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를 독자들이 느껴보게 한다.

 

책 읽는 중간에 나오는 삽화도 만화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색채, 주인공들의 싱그러움 그 자체에 어울리는 대사와 행동들은 마치 꿈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무엇보다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여자 사람 친구의 도움과 이부 여동생의 캐릭터에 맞는 말과 행동들은 한층 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 만드는 완충재 작용을 한다.

 

폐선상1

 

끝까지 달달함을 유지하게 하는 글들과 말들, 신비한 판타지 성격이 짙으면서도 푸른 청춘들이 알아가는 첫사랑에 대한 강렬한 느낌과 감정들을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얼음에 갇힌 여자

얼음에 갇힌얼음에 갇힌 여자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번화가도 아닌 한적한 곳, 박물관 내에 있는 보트 창고가 있는 곳, 호수에서 시체가 발견이 된다.

급속도로 추운 겨울 날씨와 눈발로 인해 얼어있는 호수 속에 잠긴 미모의 여인, 그녀는 영국의 귀족 출신의 딸이자 막강한 재력을 가진 사람의 딸인 앤드리아다.

 

교살한 흔적으로 인해 살인 사건임을 알게 된 경찰은 언론에 노출을 꺼리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에리카 포스터 경감을 불러들인다.

 

새로운 여성 경찰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는 첫 시리즈로써 나오게 된 에리카 경감-

 

요즘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다루는 이런 형사물 시리즈물이 나오는데, 특히 에리카란 인물은 자신의 아픈 개인적인 상처를 극복하는 와중에 부름을 받으면서 사건 현장에 나오는 경찰로 그려진다.

 

더군다나 부(副)에서라면 꿀릴 것 없는 동급의 재산가 집안의 자제와 약혼한 그녀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일을 당해야만 했을까?

특히 부자들이 다니는 클럽이 아닌 그저 그런 계급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펍에는 왜 갔을까?

 

좀처럼 연관 고리를 찾을 수 없었던 사건은 오히려 에리카의 활약을 이미 알고 있는 그 누군가, 범인이 중반에 등장하면서 에리카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는 과감한 행동을 보인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면 갈수록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쉬쉬하며 경계를 하는 상류층의 사람들, 같은 형제자매라고 믿을 수없는 냉랭하고 시샘 어린 질투가 섞인 모종의 행동과 말들은 사건을 점차 미궁으로 빠지게 만든다.

 

우연찮게 걸려든 제보자 또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은 에리카가 겪은 개인적인 심적의 고통과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때론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경찰의 사명감을 잘 보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보통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책에서 그려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과연 평등이란 말이 그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를 묻고 싶어 진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영국 내에서도 계급층에 따른 영어가 다르다고 한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대강 어떤 층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데, 책에서도 이런 계급적인 차이를 체감하게 하는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미 유럽은 러시아를 비롯해 동구권 나라에서 넘어오는 불법체류자들, 특히 어린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과 마약의 실태가 많은 탓에 이런 사례들을 넣은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동구권 세 여인의 사망 사건과 앤드리아란 여성의 사망 사건이 비슷한 패턴을 지녔음에도 세 사건은 그저 미완결의 사건으로 남았고 부유층인 여성이란 것만으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려는 경찰들의 윗선의 지시들은 비교할 만한 내용이란 생각이 든다.

 

에리카 경감이 느낀 사실 그대로 세 여인과 앤드리아의 죽음에는 그 어떤 계급으로 나뉠 수 없는 평등의 원칙 하에서 수사 사건이 이루어져한다는 말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를 꼬집어 말하는 저자의 생각이 우리 인간들의 본성 안에 각인되어 있는 차별의 고정관념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장면으로 기억이 될 것 같다.

 

돈과 권력이 있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에 벌어지는 격차는 이 책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삶의 형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함을 던져 준다.

 

문란한 생활의 일인자, 그런 그녀가 죽었고 이를 둘러싸고 진실에 다가서려 하는 에리카 경감의 투철한 사명감은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범인의 숨죽임과 죽음에 점차 다가간다는 극한의 공포, 꽁꽁 언 호수 밑 얼음 속에 갇힌 여자의 죽음은 서서히 깨져가는 진실의 첫걸음이었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농담 안에 담긴 진담의 향연

말한마리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우리나라 한 강 작가의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진 문학상-

이미 기존에 이 상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독자들이라면 두 분류로 나뉜 수상작을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싶다.

 

 

작가로서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반추해보거나, 살아오고 있는 시대를 그린다는 것은 글을 쓰는 창작자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한 부문으로 자잡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굴곡이 많은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의 출신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알고 있는 이름을 대보라면 아모스 오즈 정도밖에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접한 작품의 출신이 이스라엘 작가, 더군다나 맨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가라는 말에는 이 책을 꼭 읽고 보고픈 마음이 있게 한 책.

 

여기 키 작은 한 남자가 있다.

키는 157cm 정도, 바짝 마른 몸매에 부츠를 신고 이스라엘의 도시중 하나인 네타니아에 위치한 작은 클럽에 서 있다.

그의  이름은 도발레 G,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책은 그가 어느 날 어린 시절 친구였던 전직 판사 출신의 아비샤이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고 자신의 쇼에 자신을 보러 와 줄 것을 부탁하면 서다.

자신의 먼 기억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옛 친구라고 말하기조차도 가물가물한 그에 대한 회상은 점차 얼굴이 생각나게 되고 이후 그가 공연을 벌이는 장소에 오게 되면서 도발레가 벌이는 쇼를 생중계하듯 아비샤이에 의해 독자들이 그 공연을 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어두웠던 무대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도발레의 모습은 그가 입을 벌리고 팬터마임처럼 보이는 행동까지 겹치면서 유머가 난무한다.

 

때론 일상적인 유머, 때론 정치적인 비판이 섞인 유머를 시종 넘나드는 그의 입담은 농담의 진가를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문득 그가 내뱉는 말 중간중간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그의 개인적인 삶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 자라온 나라가 지닌 지정학정 위치와 여러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역사, 특히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인 도발레를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왕따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고 맞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써의 거꾸로 물구나무로 서서 걸어가는 행위, 여섯 달 동안 기차 한 칸에서 목숨을 부지하면서 죽다 살아난 엄마의 홀로코스트, 이발사인 아버지의 폭행과 그 나름대로의 사랑방식을 두런두런 다른 해학과 유머를 통해 디스를 날리는 도발레는 관객들조차 하나둘씩 떠나게 만드는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란 무엇인가, 아니 한 나라가 지닌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국민, 한 개인의 삶은 역사가 주는 영향에서 얼마큼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를 연신 묻는 듯한 도발레의 과거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주변 국가들의 국민들 이야기가 함께 섞이면서 친구인 아바샤조차도 미처 몰랐던 도발레의 아픈 과거를 느껴가게 된다.

 

어린 시절 그 당시 도발레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왕따의 희생자로 주목되고도 남았을 것이란 기억과 도발레가 당했던 아픔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양심적인 회개와 고뇌들이 점차 먼 기억 속의 한편에서 서서히 끄집어내게 만드는 도발레의 공연과 눈 마주침,  도발레가 이제껏 어떤 심정과 마음 가짐으로 살아왔는지를 목격자란 자격으로 느껴보는 글이 가슴이 시리게 만드는 책이다.

 

원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부딪친 그 순간의 선택, 떠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템포 멈추면서 농담을 던지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직업의 이점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는 한편 자신의 아픈 성장사를 통해 작가는 그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도발레란 인물을 통해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농담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인간의 삶에서 주는 하나의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보너스란 생각이 들게도 하는, 도발레가 자신의 뺨을 무자비하게 때리면서까지 폭주 기관차처럼 내뱉는 농담 속의 진담의 향연들은 그 자신뿐만이 아닌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에게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훈련받다가 가족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자신을 고향집에 데려다주게 된 운전병, 그가  들려준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간 이야기는 결국 그를 심각한 상황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게 되는 농담이자 유머가 지닌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되게 한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기적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도발레, 아비샤이마저도 자신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한 그들의 삶 자체 한가운데에 진정한 농담인 듯 농담이 아닌 진실이 같이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무대가 끝난 뒤에 몰려오는 먹먹함과 허무함, 자신의 개인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해 낸 노(老) 코미디언의 삶을 통해 독자들은 타인의 인생뿐만이 아닌 각각의 개인들이 지닌 아픔을 승화할 수 있는 농담 하나쯤은 갖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스탠더드 업 코미디언이 벌이는 쇼를 통해 저자가 그리고자 한 역사 속에 개인이 지닌 아픈 역사를 표현한 저자의 구성과 글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죽은 자로 하여금

즉은자로 하여금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요번에 현대문학에서 핀 시리즈 첫 책으로 나온 편혜영 작가의 작품이다.

오랜만에 접한 책인 만큼 한국 작가의 새로운 내용이 기대되고 있는 가운데 저자의 필력은 새로운 읽기의 즐거움을 가지게 했다.

 

 

한때는 조선업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던 이인 시(市)는 조선업의 몰락으로 인해 경영위기에 빠진 도시다.

그곳에 있는 선도병원에 근무하는 이석은 평판이 좋은 사람이지만 정확히는 그 속내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좌천되다시피 이인 시로 내려온 무주는 이석의 덕분으로 적응을 잘해나간다.

하지만 이석의 비리를 알고 나서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석의 가정사에 몰아친 불행, 아픈 아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었고 아픈 아이 때문에 집까지 잡혀있다는 사실들은 쉽게 무주로 하여금 이석에 대한 비리 고발을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보더라도 정직한 아빠임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결심으로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게 된다.

 

그러나 올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뀐다.

바로 무주가 내부 고발자로서 병원 내부의 동료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고 이석마저 가볍게 그칠 수 있으리란 처벌이 다른 보직으로 밀려난 사태까지 번진다.

 

책의 내용은 한 개인이 내린 행동이 과연 전체적인 집단에서 볼 때 필요한 결단이었는지, 정의의 실현으로 나타난 결과가 뜻하지 않게 다른 양상으로 번진 사태에 대해서 독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이석이 미워서가 아닌 병원 전체의 이익과 정의란 이름 앞에서 행동을 했던 무주의 고발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옳다고는 인정하지만 한 사람을 미운털로 몰고 가 전체의 피해보다는 개인의 불이익을 줌으로써 나머지 남겨진 것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방향이 옳은 것인가?

 

사실 한국적인 정서에 드러난 사회 전반적인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그린 작가의 글에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말인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말의 의미를 무주에게도 사회 속에 한 무리의 일원으로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뜻으로 묻혀서 가길 동조하기를 요구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진흙탕인 연못에 아무리 깨끗한 고기 한 마리가 깨끗한 물로 만들려고 해도 결국엔 많은 무리의 진흙탕에 익숙한 고기 무리들에 섞여서 살아가는 편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이러한 권유는 무주에게 결국은 정의와 윤리에 대한 생각을 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희망을 주고 있다.

 

아내와의 동료들에게 버림받았을지라도 마지막 무주의 양심으로 남았던 윤리란 의식을 통해 세상은 결코 진흙탕 물만 있는 것이 아닌 더러는 깨끗한 물도 있다는 사실, 무주가 아내와의 연결을 재시도해보려는 의도를 통해 또 다른 희망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느낌에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핀 시리즈의 계속될 발간으로 인해 한국 작가들의 활기찬 다음 행보를 기대해보게 한 작품이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펑쓰치의 첫사랑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 휴……….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지…

 

정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는 내용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 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여파가 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의 내용은 이런 범주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는 책이라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시점은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13살의 소녀인 팡쓰치가 50 살의 유명 문학 선생인 리궈화로부터 상습적인 성폭력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모든 노력들을 쏟아붓는 대만의 현실에서 빚어진 비극은 어린 소녀에게 너무나도 참혹한 인생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게 한다.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같은 것을 공유해온 친구사이다.

이 책은 팡쓰치의 일기를 이팅이 읽은 후에 사건의 진실을 다루는  형식을 취한다.

 

팡쓰치의 이웃에 살고 있던 유명 강사인 리궈화는 팡쓰치처럼 입시를 목표로 공부해 온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인 강간을 저지른다.

13살부터 시작된 강간은 5년 간 이어지고 그런 가운데 리궈화가 자신의 문학적인 전공답게 달콤한 말과 시적인 문구로 이어지는 유혹의 속삭임은 이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덪에 빠져나올 수 없는 팡쓰치의 암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불안한 조짐은 같은 이웃인 친한 언니가 느끼고 있었고 그런 일들에 대한 진행을 그녀조차도 자신이 당하고 있던 가정 내의 폭력 때문에 손을 쓸 수조차 없었던 현실마저 겹치면서 더욱 팡쓰치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팡쓰치가 당하고 있었던 그 세월, 그 황금 같던 시간들 속에서 정작 부모님에게 선생의 잘못됨을 비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의 힘으로는 손을 쓸 수없게 만든 사회적인 통념과 지위,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한계를 드러낸다.

 

한창 좋을 것을 보고  생각하고 올바른 성장의 길로 가기도 바쁜 청소년 시기, 그 시기의 아픔을 온전히 자신의 잘못인양,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가 죄인처럼 지내야만 하는 비현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인다.

 

저자가 실제 당한 자전적인 소설이란 점에서, 더군다나 이 책을 발간한 지 두 달 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삶이 참으로 가슴 아프게, 그 어떤 육두문자를 쏟아내 놓아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분함 그 이상을 넘어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에 대한 ‘용서’란 말 자체도 사치에 해당된다는 느낌을 준다.

 

피해자는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깊은 구덩이 속에서 자책하며 생과 사를 오가고 있을 때,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그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결코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아니 그녀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손만 잡아줬더라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아픔을 느낀다.

 

가해자가 오히려 사회적에서 바라보는  성(性)에 대한 인식에 힘입어 궁지에서 탈출해 오히려 떳떳하게 다시 세상에서 활보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피해자라면 과연 그 누구를 믿을 수 있었겠는가?

 

왜 그녀의 부모는 자식의 말은 믿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서 인정하는 유명인사란 명칭 하나로 그 모든 것을 감추려고만, 아니 한쪽 눈만 뜨고 보려 했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참으로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는 일들, 미투의 운동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인 어떤 흐름들 때문에 잊힐 여성들이 당한  피해들이 하나둘씩 드러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만큼 안타까움을 던져준다.

 

책 제목에서 보이는 낙원과 첫사랑이라는 반어적인 팡쓰치의 삶을 보면서 우리 모두, 타인의 모든 아픔과 그 아픔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도덕적인 책임이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 고통스러웠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없는 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쓰면서 두려웠다. 누군가 나의 책으로 이 사회에 살고 있는 팡쓰치를 소비해버릴까 봐, 그녀들이 더 상처 입을까 봐.

 

저자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