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8년 6월 14일

영의 기원

영의 기원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한국의 소설도 이제는 다양한 소재의 발굴로 인해 해외 문학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접한 천희란 작가의 작품 또한 그러하다.

 

‘2017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저력답게 총 8편의 단편을 묶어서 내놓은 이 책의 주된 흐름은 ‘죽음’이다.

 

인간들, 존재 그 자체가 태어남과 함께 죽음도 같이 동반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보인 소재의 여러 가지 다양성은  SF와 현실적인 이야기가 모두 같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소재의 느낌상 그리 밝은 않기에 처음부터 읽기에는 마음이 참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닌, 읽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고 책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은 작가의 글은 모처럼 끈기를 요하는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총 8편의 작품의 기류상 죽음을 다룬 만큼 각기 다른 이야기들 속에 잠재해 있는 저자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죽음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한 책이다.

 

특히 SF 쪽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기에 미래를 대상으로 그린 작품에는 신선함이 묻어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런 류의 글을 통해 죽음을 조금이나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다.

편지 형식을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를 취하고 있는데, 물에 빠져 죽은 엄마, 그 사건을 목격한 여성이 후견이 되면서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애틋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그 애틋함 속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참으로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하고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현실에 가깝게 여겨졌던 탓에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무심코 우리들 곁에 항상 존재하고는 있지만 간과해 버리고 마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 죽음의 실체에 대한 단상을 생각해 볼 수 있게 그린 작품이란 점에서 차후 작가의 다름 작품이 기대된다.

식탁의 길

식탁의길식탁의 길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그야말로 먹방 시대다.

tv를 틀기만 하면 너도나도 먹기를 주저하진 않는 패널들, 그 다양성의 뒤에는 요리라는 것이 필수다.

 

특히 셰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손놀림과 재료의 선택 기준, 한정된 식재료를 가지고 다양하게 연출하는 음식의 세계를 보노라면 군침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셰프란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문적인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 또한 이런 범주에 속한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요리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모로의 시선을 통해 세계 각국의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들이 집중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경력에 가려서 셰프의 세계를 선망의 대상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들이 재료를 선택하고 음식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 작가는 이들의 모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해 놓았다.

 

 

베를린의 케밥을 시작으로 파리의 전통 식당,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미슐랭 별을 단 레스토랑, 아시아의 미식의 나라로 통하는 태국과 그 옆의 나라인 미얀마까지..

 

고된 노동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는 요리사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자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하나씩 이루어나가려는 성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다양한 요리의 이름과 그 재료들, 특히 그 조리과정을 읽노라면 한번 시식하고픈, 그래서 그 나라를 방문하다면 굳이 미식가를 자처하지 않더라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책이다.

 

전작인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통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바 있지만 이번의 내용은 상반된 것으로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을 전달해 준다.

 

복잡하지 않은 간결하고도 깔끔한 문장력, 화려한 셰프들도 있지만 생계형 요리사들을 다룬 글들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절대정의

절대정의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인간관계들 속에는 어떤 틀에 박힌 룰도 중요하지만 그 룰 안에서의 어느 정도의 융통성도 있게 마련이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다는 말은 이런 융통성과는 정 반대의 뜻을 품고 있듯이 사람인지라 나름대로 사회가 정한 규칙 안에서 생활하려고 하지만 가끔은 예외적인 일들을 당할 때가 있다.

 

여기 그런 점에서는 눈곱만큼도 용서 없는 한 여자가 있다.

 

고등학교에 전학 온 노리코, 항상 반듯한 자세와 빈틈없는 생활은 모범생 그 자체다.

 

책은 그녀와 가까이 지냈던 4명의 동창생들의 시선을 통해 그녀가 어떤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었는지를 그린다.

 

그녀는 이미 죽은 사람, 벌써 5년이 지난 지금 한통의 초대장을 받게 되는 동창생들,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다.

모두가 이제는 작가, 엄마, 연예인, 학원 부원장이란 직책들 달고 있는 그녀들, 그녀들이 죽인 노리코로부터 초대장을 받게 된 지금, 그녀들의 심정은?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시점을 되돌리면서 왜 그녀들이 노리코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상황을 그린다.

 

제목 그 자체로 전달되는 정의의 여신, 몬스터 정의라고 불리는 노리코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의란 목적을 앞에 두고 앞. 뒤에 걸쳐진 상황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노리코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가? 아니, 절대 아니다.

너무나 명료하고 정확한 의견 제시, 그 상황에서는 이러한 해결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기정사실 앞에 아무런 반발조차 할 수없다면?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여 살지 못한다고 한다.

너무 맑기에 오히려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말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노리코란 인물이 지닌 공감력 부족에 대해 숨이 턱턱 막힘을 느끼게 된다.

 

한치의 잘못된 것을 넘어가지 않는 노리코, 주위에서 모두가 좋게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한 그 점, 융통성이 동반된 해결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노리코란 존재는 만약 이러한 친구를 둔 사람들이라면 바로 위의 네 명처럼 숨 막힘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끝내 죽음을 자초하게 만든 장본인, 그 자신인 노리코의 행동과 말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정확성도 좋고 지적질도 좋지만 어느 정도의 규율 속에 서로가 좋은 방향의 해결 제시 방안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너그러움을 품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 책이다.

 

끝 말미에 네 사람의 행동 뒤에 또 다른 감정을 느끼는 한 사람의 심정, 그것 또한 저자가 독자들을 상대로 제대로 허를 찌른 반전이다.

디렉터스 컷

디렉터스컷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우리들은 편리함이란 보편성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 같으면… 이란 말도 하루 밤을 자고 나면 그 말의 의미가 벌써 과거로 인식이 될 만큼 미디어가 주는 중요성, 그리고 요즘 정치권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가십거리,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올리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게 되면 모두가 너도나도 그 현상에 주목하게 되는 이러한 세태를 제대로 꼬집는 작품을 읽었다.

 

이미 국내에서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고, 그런 만큼 이번에 저자가 그린 미디어의 무차별 공격성과  그 뒤의 이야기에 감춰진 진실은 허구를 떠나 실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게 되면 그에 부응해야 하는 방송가 사람들의 소재 고갈과 더욱 자극적이고 한눈에 깊은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는 강박감 속에 살인사건을 토대로 그린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요즘의 세상을 꼬집는다.

 

방송국 밑에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하세미는  보도 와이드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 ‘내일 없는 폭주’를 통해 제작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런 그가 좀 더 시청자들에게 강한 어필을 필요로 하고 소재의 보다 넓은 저변의 확대 차원으로 아르바이트생들을 쓰게 되는데.  그 아르바이트생들은 무분별한 행동, 즉 계산된 행동 속에 상대방이 보이는 행동을 방송에 보임으로써 한편의 실제상황 같은 연출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를 한다.

 

한편 내성적이고 직장 동료들과의 사이도 원활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는 미용 보조사 모토키는 우연히 아르바이트생들이 모인 현장에서 그들이 벌인 몰지각한 행동을 보고 자신의 안에 내재해 있던 온갖 울분과 옳지 못한 행동을 보인 그들을 보면서 우연찮게 그들 일행 중 한 명을 가위로 살해하게 된다.

 

이후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쏟아붓는 트위터를 통해 그의 존재를 알리는 모토키-

이를 방송에 사용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하는 하세미의 계획에 따라 사건은 점점 살인마로 변해가는 모토키를 먼저 잡으려고 하는 경찰들과의 머리싸움이 시작되는데….

 

 

우연찮게 걸린 하나의 기사가 만인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요즘의 댓글의 성향과 그로 인해 실제 당사자가 겪는 고충과 고민,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생활처럼 다가온다.

 

방송의 본 재미를 위해서,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쌓인 하청 방송업체 직원으로서 느끼는 존재의 박탈감, 열심히 하고자 하지만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놀림감 대상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시선을 쏟게 되는 모토키의 존재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을 그린다.

 

자신이 처한 상태를 보다 냉철하게 파악하고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서지 못한 모토키의 불행도 안타깝지만 인간으로서 책임지고 느껴야 할 사고 의식조차도 방송에 적합한 소재로만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시피 한 하세미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그 실마리를 놓지 못했다는데서 더욱 씁쓸함은 느끼게 한다.

 

나만 아니면 되는 방송의 소재 다양성이 실제로는 언제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경고성을 보여준 이야기 자체의 소재는 끝 말미에 반전이 깃들어 있어 더욱 재미를 준다.

 

어떤 것이 우선적인 문제의식으로 여겨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 미디어 매체가 주는 이면에 감춰진 짜깁기식의 편집 과정이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보이는지를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한 책, 그래서 더욱 체감 있게 다가온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