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9년 4월월

여자들의 등산일기

여자들의등산일기

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한때는 등산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이래저래 핑계처럼 들리는  여러 가지 사정상, 피치 못할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발을 끊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산’과 ‘등산’에 관해서 생각을 해 본다.

 

요즘 케이블에서 순레자들의 길로 유명한 장소에 알베르게를 통한 음식 대접을 하는 작품이 방송 중이다.

 

그곳에 하룻밤 묵기 위해 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 걷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곁에 누가 있든 간에 오로지 자신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더란 말…

 

이 책을 통해서도 등산과 순례의 길은 차원이 다르겠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공통된 점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총 8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이 책은 제목처럼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마운틴 걸이란 명칭이 있는 것만 봐도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들은 과거에 산을 좋아했거나 등산을 한 적이 있는 경험이 있거나 아예 초보자인 유미처럼 복장 자체도 가볍게 하고 오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처음에 등장인물은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여성이다.

같은 사내 연예를 통해서 결혼을 할 예정이지만 상대방과의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 문제와 다른 문제로 인해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인 상태, 우연히 대니 등산화가 너무 마음에 들어 구매하게 되면서 직장 동료들과 등산을 하기로 하지만 한 명이 불참하게 되고 사내 불륜을 하고 있는 유미와 같이 동행하는 여정의 모습이 보인다.

 

처음에 산을 오르는 자와 이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모종의 배려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불륜을 드러내 놓듯이 하고 다니는 유미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생각엔 이러한 불편한 심기와 함께 조공처럼 갖고 온 간식마저도 달갑지 않은 것으로 내비친다.

 

이외에도 40이란 나이에 해당되는 여성이 만남의 파티처럼 열린 장소에서 만난 남성과 등산에 오르는 과정 속에 대화를 통해 나누는 과정들, 우리나라 엄마들처럼 알록달록 등산복 입고 단체 산행을 나선 모습처럼 보이는 여성단체들과의 만남, 자매의 등산까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만난 이들은 서로가 연관이 있으면서도 스치듯 지나가기도 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기타 등산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모습들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알게 모르게 아픈 상처와 고민들이 내재해있다.

 

기존의 저자가 그려왔던 장르를 읽었던 독자라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또 다른 방향의 관점을 선사한 저자를 달리 볼 것 같다.

 

산행을 하다 보면 리드하는 자와 뒤따르는 자 간에 불화가 있을 수도 있고 그 과정 중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산이란 자연을 대했을 때의 자신의 마음속에 그 무언가를 달리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그린 이 작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혼을 통고받은 언니의 고백, 등산이란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아닌 그 과정 자체도 중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다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함께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일본의 산을 배경으로 다룬 내용과는 달리 뉴질랜드 통가리 편은 교차편집이란 구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모습 모두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번 시작하면 산이 주는 매력에 빠져 그만 둘 수없는 등산-

 

지금 이 책과 함께  가벼운 물병 하나에  간단한 요깃거리 챙겨서 가까운 근교 산으로 떠나보고픈 유혹을 던지는 책이다.

                                                                                                                                

보잘것 없어도 추억이니까

보잘것 없어도

               보잘것없어도 추억이니까 –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
사노 요코 지음, 김영란 옮김 / 넥서스 / 2019년 3월

솔직하면서도 유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따뜻한 것도 있지만 때론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작품을 남긴 작가, 사노 요코의 책이다.

 

이 책은 그녀 자신이 실제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일들을 회상하며 그린 초년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미 이전에 그녀의 작품 몇 개를 접했지만 당시의 흐름이 과거에 속한 만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흐름과 그 안에서 성장했던 작가의 어린 추억담이 그려져 있다.

 

그녀는 작품 안에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에세이의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이런 분위기는 이 책 또한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시간이 흘러가도 여전히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은 강하게 남기 마련인지 저자가 그린 당시 저자의 성장기는 작은 추억 하나에도 세세한 기억과 함께 순진한 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추억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짝사랑에 대한 추억, 엄마와의 트러블,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형제자매의 죽음을 바라보고 느낀 감정들, 드럼통을 이용해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웃음이 빵 터지기도 하고 아련한 아픔과 향수를 같이 느껴보게 한다.

 

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여전히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아감을 느끼게 해 주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그녀가 돌아보고 싶지만 또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를 공감하게 한다.

 

 

신주쿠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시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났다. 어떤 때는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웃기지 마.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딴 건 무시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부러워하는 가난 속에서 살면 되겠네. 부자란 지금은 불행해도 금세 행복해지는 법이니까.

어쩔 때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무슨 연유로 헤어져야만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불행에도 가능한 공감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가난을 불행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나에게 가난은 다투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는 친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것은 아니지만. – p 199

 

 

 

소소한 일들을 통해 저자의 성장과정과 살아가면서 느꼈을 삶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지고 있었는지를 느끼게 해 주는 책, 그녀만의 에세이란 바로 이런 맛에 읽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잠중록 1

잠중록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요즘 중국 문학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전통 소설 문학에서부터 웹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야기까지 여러 이야기의 소재가 다양해서인지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구중궁궐을 소재로 하는 책들은 우리나라도 많지만 중국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비슷한 패턴이면서도 워낙 광대한 나라라 그런지 칭호도 다양하고 각 인물들 별 이름들도 많고, 그래서 그런지 더욱 재미를 극대화한다.

 

 

책 제목인  ‘잠중록(簪中錄)’은 ‘비녀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이 어떤 일에 관하여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할 때 무심코 자신의 머리에서 비녀를 뽑아 마치 연필처럼 사용하는 버릇을 이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황재하는 총명한 머리 덕에 여자로서는 드물게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려운 사건을 풀어온 17살의 소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부모와 오빠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게 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되는데,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선 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가까스로 그런 은인을 만나기 위해 수도 장안에 숨어든 것이 우연찮게 황제의 아우 기왕(이서백)의 마차였으니, 그녀의 운명은 기왕에 의해 결정지어질 판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그녀와 기왕의 관계를 보이면서 구중궁궐 안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다툼과 최우선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피비린내 나는 암투의 이야기까지를 곁들이면서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총 4권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아직 어떻게 결말이 나올지는 알 수없으나 1권을 읽고 난 후에 느낌은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글을 쓴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발표 직후 조회수 1억 뷰 돌파,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문구의 말처럼 이미 드라마화로 결정되었다던데, 중국판 사극 로맨스의 또 다른 흥행을 몰고 올지도 궁금해진다.

 

황재하를 바라보는 기왕의 알듯 모를 듯한 시크한 행동과 말들도 독자들 나름대로 혼선을 갖게 하지만 장차 이들이 사건이 벌어지면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또 다른 어떤 복병을 만나게 될지, 쉼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의 진행이 한 번에 출간되었으면 더욱 좋았겠단 생각마저 들게 한다.

 

 

가볍게 읽으면서 느낄 수도 있는 로맨스와 추리가 결합된 이야기의 서막, 그 끝은 어떻게 이어질지, 1권을 끝내기가 아쉬움을 남긴다

 

판결의 재구성….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판결

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평범한 사람들이야 평생에 갈까 말까 한 법원이란 곳-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죄는 짓지 않았지만 왠지 꺼림칙하게 다가오는 곳이 바로 법원이다.

 

간단한 민사 재판부터 묵직한 주제까지 어느 것 하나 무시할 수도 없는 판결을 내려야만 하는 곳이 바로 법원, 그중에서 판사란 직책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그 책임감이 막중할 것이다.

 

이 책은 얼마 전까지 현직 부장판사를  지냈고 지금은 변호사로서 다시 법에 관한 일을 하는 동시에 전문 작가로서 거듭나고 있는 도진기 님의 신작이다.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질서이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 볼 수 있다. 유전무죄 비판과 진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면책되었던 판결의 ‘내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P7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되는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그동안 판사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으로(그렇다고 아주 일반인은 아닌 법원을 벗어난 일반인으로서) 들여다본 판결 논리에 대해 저자만의 해석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를 준 논픽션이다.

 

실제로 한 판결만 빼고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의 판결문을 모두 읽어본 노력과 나름대로 논리 정연하게 재 해석한 글들은 딱딱한 논픽션이란 이미지를 거두어버린다.

 

총 3개의 큰 가지를 통해 판결 사안을 다룬 내용들은 얼마 전에 끝난 사건부터 합리적 의심의 정황 때문에 무죄로 풀려난 사건들까지 다양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 사건의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시 재입국 소환해서 범인으로 결정 지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실제 법 이름까지 만들어내게 한 공소시효와 태완이 법, 얼마 전 읽은 ‘합리적 의심’의 소재가 된 낙지사건, 이제는 간통이 폐지가 됐지만 이혼에 있어 유책주의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겨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그려낸 법원 판결의 이야기라 단순히 읽고만 그치기에는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중에서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정당방위’에 대한 부분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도 프로파일러 교수분이 나오셔서 정당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상황에 대한 의미를 듣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 기억이 났다.

 

정당방위

 

 

 

법이란 것이 창과 방패의 개념을 모두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막상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선 이 두 부분들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기에 법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시대의 흐름과 다양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이해하게 해 준다.

 

민감한 사건의 경우 생각하던 형량에 비해 비교적 가볍게 판결이 났을 경우엔 보통의 우리들조차도 어리둥절하게 되지만 이 책을 통해 판결의 근원적인 배경과 논리, 법 안에서 최대한 할 수밖에 없는 선고의 개념과 선고를 내리는 판사들의 고심은 무거운 책임감이 동반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해 준다.

 

특히 합리적 의심에 해당되는 경우엔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기에….

 

 

이 외에도 예술과 외설이냐의 결정을 지었던 즐거운 사라 사건이나 가수 조영남의 그림 사건, 청소년 유해 판정을 받은 일련의 사건들까지, 알고 보면 법 안에서 해결해야 만 하는 사건들의 다양성도 많고 그런 가운데 판사란 직책을 벗어놓고 보면 분명 물증은 없으나 범인임을 확신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도 증거가 우선시 되는 사건의 법 체계상 법이 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판결을 내려야만 하는 직업의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완벽에 가가운 증거 확보와 단서로 인해 누군가는 범인으로, 누군가는 무죄로 판명하는 종이 한 장의 차이는 실로 어마 무시하게 다가오게 만들기에 법이 완벽하게 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고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

 

 

현직에서 느낀 점을 토대로 우리나라 법 현실을 다룬 점들 가운데 판사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말엔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재판

 

의사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 최선을 다하듯 판사들도 자신들이 내린 판결로 인해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억울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에 사건 하나를 맡게 되더라도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제시한 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자 나름대로 판결 논리에 대한 다른 시각의 재해석을 제시한 글들은 소설적 재미와 함께 저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뒤 편의 이야기들도 하나의 읽는 재미를 준다.

 

항상 딱딱한 법률책만 끼고 있을 것만 같은 저자에게 이런 반전(???)이^^

 

재미와 흥미, 그리고 사실에 입각한 냉철한 분석까지 고루 갖춘 책, 읽어보길 권한다.

 

 

이민자들

이민자들 (2)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단 4개의 작품으로 그 이름 자체를 알린 작가, G.W 제발트의 개정판이 나왔다.

 

처음 그의 작품을 대한 것이 ‘현기증, 감정들’이란 작품이었으니 이번에 만난 이 작품으로 인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다른 느낌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그가 다룬 문체나 글의 흐름이 쉽게 읽히진 않는 편에 속한다.

처음 대한 작품이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생각했던 것보다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세계화가 지구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 형상이고 이 가운데 이민이란 형식은 여기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이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결정지을 수없는 사안이기에 이 책에 보인 네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대적인 배경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작품 속의 화자가 만난 네 명의 사람들은 자살하거나 자살의 형식처럼 취해 죽음을 맞는다.

 

단편 형식을 취하되 연작 형식으로 이어진 글들은 짧은 단편이 있는가 하면 단편이라고 하기엔 긴 이야기의 중편에 속할 수도 있는 사연들이 담겨 있어 그들의 인생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사뭇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인 헨리 쎌윈 박사다.

의사로서 생활하다 이제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자처하는 그, 유대인이란 신분이 드러나면서 부인과 소원해지고 그런 그가 그려본 이민자로서의 고뇌와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인생 후반부에 이르러 자살에 이르게 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나’의 초등학교 은사인 파울 베라이터 선생님이다.

부고 소식을 접하고 고향을 찾은 ‘나’가 선생님의 자살을 계기로 그의 인생 발자취를 찾아가는 형식은 한 인간의 인생의 흐름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교사로서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그가 겪은 개인적인 아픔은 아내의 강제수용소 이송 후 최후를 맞은 일, 자신의 핏줄 중에 4분의 1이 유대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 하나로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던 일, 그러면서도 또 다른 혈통의 아리안을 갖고 있었다는 것 하나로 전쟁에 참여한 일들은 그가 독일이면서도 독일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에 대한 딜레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 번째 인물은 유대인은 아니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해 이민을 간 친척 할아버지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 대한 이야기다.

 

유대인으로 이민을 온 집안의 집사로 일하면서 집주인을 모시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놓은 글들을 통해 할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해 나가는 형식은 말년에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소, 1950년대 유행했던 전기충격 요법을 스스로 자진해서 받으면서 신체, 정신적인 소모를 감행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연을 다룬다.

 

네 번째 인물은 유대인 화가 막스 페르버의 이야기다.

유대인으로서 그가 겪어내아만 했던 이민의 사정, 그가 그림을 통해 펼쳐 보였던 감정의 파고, 그의 부모의 사연들은 역사적인 사건과 당시 독일인들이 행했던 행동의 결과로 탄생한 이미자들이 아픔을 대변한다.

 

총 네 개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실제 인물들을 만나보고 사진을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취하는 형식을 그렸다는  이 작품은 이민, 즉 디아스포라에 대한 각기 다른 사연들을 들여줌으로써 역사 속에 살아간 사람들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향수, 그 이면에 펼쳐진 때론 증오와 회한의 감정들이 모두 묻어나 있다.

 

실제인 듯 아니면 허구인듯한 모호한 경계성의 글들이 제발트의 감각적인 능력이라면 이 작품 또한 이러한 범주에 충실한 면을 보인다.

 

실제적으로 만난 사람들이긴 하지만 화자인 ‘나’가 제발트인 것처럼 보였다가도 단순히 작품 속의 등장하는 제삼자의 화자처럼 보이는 형식, 이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삶의 또 다른 희망적인 채집하는 사람들의 등장을 통해 그나마 일망의 위기 순간 모면이나 짧게나마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처럼 보인 장치는  저자만의 관찰능력이 빚어낸 글이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유대인들이 겪었던 이민자들의 생활만이 아닌 다양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 모습들을 대변해주는 듯도 한 이 작품을 통해 한층 저자의 작품을 가깝게 느껴보게 된 작품이다.

헬로 아메리카

헬로아메리카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SF소설들은 많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이 책이 쓰인 연도에 비해  읽으면서 느낀 점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가까운 미래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게 한 책, 바로 밸러드 풍이란 신조어를 사전에 등재시켰을 만큼의 미래 지향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소설적 배경은 미국이다.

그런데 연도가 1970년대로 나온다.

이때는 이미 미국이란 나라는 원유의 고갈, 경제 붕괴에 이어 베링해를 막은 결과물인 댐의 건설이 자연재해로 이어지면서 사막화로 변화된 멸망한 대륙으로 그려진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원래 고향(?)인 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 아시아…. 뭐 여기저기 흩어져 살기 시작하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한 세기가 지난 2114년으로 이어진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그들은 누구인가?

 

골드러시 행렬처럼 그들은 과학자들과 선원으로 이어진 탐사대, 그들 중엔 더블린 출신의 유복자 웨인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무리에서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다시 구조되면서 미국의 곳곳의 모습들, 라스베가스의 과거의 찬란했던 모습들의 재현이나 이미 사라져 버린 옛 대륙에서 존재했던 원주민들과의 만남은 예상외의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중에서도 SF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계인간과 유리로 만든 비행선의 묘사는 여전히 공상 세계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게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주재의 흐름 속엔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이란 것이 식지 않는 용광로처럼 도사리고 있는 모습을 비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들, 이 책이 1981년도에 출간된 것을 기준으로 현재의 2019년도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니 약간의 앞서간 나머지 예측불허의 배경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저자가 그린 미래의 경고를 알리는 내용들은 상상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앞선 글들은 깊은 통찰력을 보인다.

 

 

특히  각기 개성 있는 인물들의 등장, 환상이 겹쳐지면서 펼치는 이야기는 쉽고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 약간의 인내를 요하는 책이지만 저자가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에 대한 흐름은 탁월하단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떻게 표현해낼지 이 책을 먼저 읽고 넷플리스에서 영화가 방영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그린 SF의 세계를 통해 지금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현실적인 모습들의  비교를 통해 보다 더 나은 삶의 모습들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 책이다.

 

아일린

아일린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좀 독특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한 여성을 만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들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뭐라 할 수도 없는 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74세의 아일린이란 여성이  50년 전의 24살 때  자신의 모습인  아일린을 회상하며 그린 형식의 책이다.

 

미국 보스턴의 한적한 곳에 민간 청소년  교정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24살의 아일린, 한때는 경찰이었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는 아버지와 생활하고 있다.

 

겉보기엔 아무런 내세울 것 없는 그녀, 조용하면서도 보수적인 옷차림, 누구에게 자신의 싫다는 소리를 한 번도 내세운 적 없는 답답녀-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죽어 없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죽길 바라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인, 집안은 엉망이고 더러우며 매일 이곳을 벗어나고자 애를 쓰는 그녀의 일상은 그날이 그날이다.

 

그런 그녀는 같은 교정국에서 일하는 랜디를 짝사랑하고 그의 집 주변에 머물면서 스토킹 같은 행동을 하면서 때론 과감한 야한 상상과 망상력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유일한 꿈인 집과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은 매일같이 세우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도둑질을 하는 과감성의 비행을 서슴지 않는 그녀는 언니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어린 시절에 이은 현재까지의 성장과정을 거친 여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런 그녀의 내밀한 심리는 크리스마스전 금요일부터 일주일 간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게 그린다.

 

이런 그녀의 일상에 아름답고 쾌활한 성격의 리베카란 소년원 교육국장이 같이 일하게 되면서 그녀의 마음에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과는 전혀 닮은 곳이 없는 리베카, 그녀가 자신을 같은 동료로서 인정하고 같이 지내면서 아일린은 스토킹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리베카에게 빠진다.

 

이렇듯 매사가 뒤틀리고 비난하기 일쑤이며 냉소적인 그녀의 삶에 리베카를 통해 같은 동지이자 같은 주류란 느낌을 받은 아일린, 리베카가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낼 것을 제안하면서 그녀는 결코 다시는 아버지가 살고 있고 그녀가 자라온 X빌 마을로 돌아오지 않게 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다시 그려보는 과거의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사고와 그로 인한 기로의 선택에 선 여성의 모습이 전반부의 설정을 참고 이어간다면 후반부에 설득력 있는 과정을 통해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진행을 보인다.

 

읽으면서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그것이 어린 시절의 차별로 성장한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아니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놓지 못한 울분이 차곡히 쌓여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보게 됐는지, 목적대로 그녀가 모든 것을 놓고 떠난 것에 대해 그녀의 행동은 옳은 선택이었을까에 대한 생각은 호불호가 가릴 것 같다.

 

 

 

한 번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하는 행동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일린의 숨죽이며 살아가는 내밀한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읽을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모든 것을 한순간에 버리면서 떠날 수 있는 결정에는 글쎄?

 

반전의 맛도 있지만 이 책의 주류 흐름인 아일린이란 여성의 개성 있고 뒤틀렸지만 어느 부분에선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좀체 책이나 영화에서 만나볼 수 없는 캐릭터의 탄생,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 인물이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술가들 중에는 살아생전 자신의 명성을 제대로 느끼며 살다 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닐까 싶은데, 미술 시간에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터라이번 책을 접하면서 저자가 그린 빈센트에 대한 내용이 궁금했다.

 

지금도 엽서나 편지지, 때론 영화의 한 장면이나 소설의 소재로서도 가끔 나오는 고흐의 그림들은 색채의 명암이나 농도, 채도에 있어서 그만이 그릴 수 있는 독보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런 그의 그림에 반해서 지난 10년간 빈센트가 머물었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그의 흔적을 담고 자신의 지난 삶에 위안을 준 그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펴냈다.

 

살아생전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고흐의 삶은 지금 생각해도 궁핍과 외로움, 쓸쓸함이 많이 담긴 인생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자신의 힘겨운 삶을 그림을 통해 오히려 이겨내는 역발상의 힘을 발휘하며 살아간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을 그림으로 위안을 삼은 사람, 이 책을 읽으면서 보통의 우리들도 때론 힘들거나 지칠 때 타인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 자신에게 맞는 위로의 어떤 대상이나 취미로 그 갈등을 해소한다는 점에 비추어 그의 이런 행동을 일말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갔던 그였기에 이러한 좌절과 고통은 오히려 창조의 힘을 발휘하는 보조의 역할까지 담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마저 해보게 되는데, 저자는 이러한 그의 삶을 그림을 통해 아픔에 맞서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한 부분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빈센트1

 

독서광이기도 했던 고흐,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는 이미 유명하지만 그의 전체 생을 관통하는 그림이 주는 위안과 창작의 힘을 넣어준 불굴의 의지는 살아생전 그의 명성이 좀 더 일찍 알려졌더라면, 그래서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통해 또 다른 작품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저자가 그린 빈센트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의 고흐에 대해 알고 있었던 이야기 외에 그를 애정 하는 한 개인이 느끼며 쓴 담백하고도 긴 여운이 남는 글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비아 로마

비아로마  비아 로마 – 로마의 50개 도로로 읽는 3천 년 로마 이야기
빌레메인 판 데이크 지음, 별보배 옮김 / 마인드큐브 / 2019년 4월

로마에 대한 글을 다룬 책들이 많다.

 

지금의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이를 토대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생활에서부터 정치, 언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스며들다시피 한 영향력의 파급은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여러 변주를 담은  교향곡의 선율처럼 로마에 대한 이야기는 질리지가 않을 만큼 재미와 흥미,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서 알게 되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은 로마에 대해 다루는 다른 책들처럼 로마란 제국, 처음부터 강대국이 아닌 나라가 어떻게 제국을 이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아, 즉 길을 통해 로마에 대해 알아보는 책이다.

 

흔히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통팔달 형식의 모든 길의 정비, 특히 위급한 상황에 닥치더라도 로마인의 기질상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길을 만든 그들의 탁월한 안목은 길에서 생성된 모든 이들의 이야기요, 역사의 현장이며 그렇기에 유럽권 통치를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로마2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 강부터의 원초적인 시작이 된 이야기의 서두는 로마의 태동부터 서서히 그들이 필요에 의해 ‘길’에 주목함으로써 어떻게 이를 유지하고 이용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란 나라 자체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역사적인 내용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건물이 없는 만큼 그들의 역사 속에 담긴 현장의 모습들은 특히 관광객으로서 다녀 본 지난날의 추억과 함께 그때의 길이 지금도 밟고 다니는 현장이란 말엔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마저 떠오르게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피아 가도의 생성 시초부터 그 이후 각 길에 담긴 이름의 내력, 고대 로마부터 파시즘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그 당시의 흔적들을 통해 역사의 발자취를 알아보는 책이기에 실제로 책 뒤편에 담긴 지도를 통해서 여행을 해본다면 그 의미는 훨씬 크게 다가올 듯싶다.

 

로마3

 

학창 시절 그리스와 로마의 비교를 공부할 때 로마인들은 정서적인 면보다는 실리적인 면에서 강하단  내용을 기억하게 하는 책, 그래서인지 도로를 만든 목적의 이용가치는 결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각 도로마다의 기능도 구분되어 있었다는 점, 팽창의 일로에 있던 로마제국이 곡식 수급 상황이나 홍등가의 장소로 대표되는 수부라 광장,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서양 귀족 자제들의 유럽 견문 넓히기에 일조를 한 카로체 거리까지, 그 무엇 하나 허투루 넘겨가며 읽어볼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역사 속의 한 시대를 풍미한 로마제국이란 테두리 안에 담긴 비아 로마가 차지한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이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요, 그  길에서 생성된 많은 인간들의 교류와 역사는 지금까지 여전히 그 생동감을 불어넣는 매개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길에서 태동한 인간의 역사 이야기이자 길이 주는 단어 그 자체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이야기, 다시 한번 로마의 그 길을 밟아보고 싶다.

 

 

 

 

안녕,드뷔시

드뷔시

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범죄의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좀 더 색다르게 다가서게 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 바로  나카야마 시치리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온 이 책은 그의 다른 작품과 함께 경합을 벌여 최종적으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그의 이러한 여러 분야의 소재를 통해, 때론 경감 시리즈물을 통해 접해 본 독자의 입장에서 그의 새롭게 단장한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게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몰입도와 반전을 맛을 선사하는 느낌은 왜 이 작품이 대상을 수상 했는지에 대한 수긍을 하게 만든다.

 

여기 피아노를 전공해 음악가를 꿈꾸는 소녀 하루카란 여학생이 있다.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은 사고는 할아버지와 사촌까지 잃게 된, 거기에 자신의 신체마저 화재 후유증으로 피부 이식과 고통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까스로 자신의 보기 흉한 신체가 어느 정도 아물어 갔다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구부릴 수없어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때 그녀 앞으로 할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통해 6억 엔 재산을 하루카에 상속한다는, 여기엔 조건이 있으니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말 것을, 포기한다면 재산 상속은 없는 얘기로 한다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이후 할아버지의 뜻대로 음악의 길로 몰입을 하게 되지만 엄마가 살해당하는 일까지 터지자 그녀의 생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픔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과 재활에 힘을 써온 사람인 미사키 요스케의 헌신적인 노력은 그녀로 하여금 점차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자신이 피아노 콩쿠르 입상자이면서 하루카의 힘든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과 지도를, 그러면서 사건이 터진 후에는 탐정으로 이 모든 정황을 둘러싼 범인 찾기에 나서는 모습은 상반된 이미지를 갖춘 인물로 그려진다.

 

누가 이 가녀린 소녀에게 이런 아픔을 준 것일까?

 

범죄의 사건을 둘러싼 배경이 피아노란 음악을 매개로 하면서 한 소녀의 성장기와 그 뒤에 감춰진 반전의 진실은 책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음악이 사람들에게 주는 안정감, 특히 클래식이란 분야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일단 듣게 되면 차분해지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데 이 책에서 보인 음악을 다루고 그 뒤에 인간의 힘든 우여곡절을 통해 좀 더 성장해가는, 독자들에겐  한편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아가면서도 음악이 주는 재미를 함께 알아가는 책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통해 사건의 반전과 진실들을 그린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음악이 주는 선율의 조화를 통해 묘미를 선사한 저자의 다음 작품 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