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내가 여기 있나이다 1~2 세트 – 전2권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이미 ‘엄청나게 시끄럽고…’란 작품을 쓴 저자의 신작이다.
10년이 넘은 세월의 텀을 두고 신 작품을 내놓은 이 작품은 저자의 환경과도 연관이 있는 작품. 그렇기에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 이스라엘의 파괴가 시작되었을 때 아이작 블록은 자살할지 유대인 요양원으로 옮길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위의 아이작은 폴란드 인으로 7명의 형제가 살고 있던 유럽에서 나치의 공습에 동생 베니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 후 아이작은 미국으로 건너가 성(性)을 미국식으로 블록으로 바꾸고 자손을 이어나가는 한편 베니는 이스라엘로 건너가 자손을 이어간다.
아이작의 유일한 소망은 자신이 죽기 전에 증손자인 샘의 바르 미츠바가(유대인들의 성인 의식)을 보는 것, 그러나 하루하루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현실 자각에 고민에 휩싸인다.
한편 아이작의 증손자인 샘은 인종차별을 내포하는 말들을 적은 종이가 발견되면서 그의 부모인 제이컵과 줄리아를 랍비 앞으로 부르게 만들고 랍비는 바르 미츠바를 치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 앞에 자신의 잘못을 밝히는 조건 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들의 필체가 확실하지만 하지 않았다고 믿는 아버지,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 엄마, 그런 가운데 샘은 가상의 컴 세계로 푹 빠지고, 이들 부부가 함께 해온 16 년간의 부부 생활은 삐걱거리기 시작하는데 결국 제이컵이 몰래 사용해 온 전화기가 도화선이 되어버린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면서 옆에 있는 팔레스타인들 또한 처참하게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치료를 위해 이스라엘로 몰려든다.
이들을 거부하는 원주민들과 팔레스타인들의 다툼, 그 옆의 이슬람 국가들까지 합세하면서 이스라엘은 뜻하지 않게 전시 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일들을 통해 저자는 아이작의 4대에 걸친 미국계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과 이스라엘로 건너가 살고 있는 베니의 후손 타미르의 방문을 통해 서로 다른 유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비교해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갔던 유대인들이 타국에서 그곳에 뿌리내리고 정착하기까지의 애환은 그들의 후손들이 미국식 문화에 젖어 살아가되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문화적인 양식까지 고수하며 살아가는 두 가지의 생활에서 오는 마찰, 그 안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불협화음, 부부간의 이상기류,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원하는 고국으로 돌아와 적국과 싸우자고 설득하는 메시지를 통한 동참 권유까지….
제이컵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타미르의 시선은 성공은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들은 국방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고 미국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비교를 통해 같은 뿌리, 유대인이지만 현저하게 동떨어진 삶을 비교하게 된다.
고국(?), 조국(?)에 대한 의미, 이스라엘로 돌아가 동참하고자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제이컵, 끝내 아이작은 증손자의 성인식을 보지 못한 일, 부부의 이혼과 성장한 아이들의 독립까지..
결국 이스라엘은 사태의 진정 국면을 맞고 제이컵의 가족들은 뿔뿔이 헤어지고 죽음을 맞는 일들까지 그린 이 작품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각자 4대에 걸친 갈등과 종교적인 문제들을 예리하게 파헤치면서도 인생이란 흐름에 그들 나름대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읽으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 줄리아의 재혼 결혼식에 전 남편을 초대하고 그 초대에 응하는 제이컵의 행동은 어떻게 봐야 할지…
책 제목이 창세기 22장 1절에 나온 구절이라고 하는데, 샘이 말하는 대목이 책의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밌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저자의 언어유희에 대한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전 작품에 이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