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견, 불문, 불언.

화엄사 일주문을 통해 경내에 이르니

기 동자상이 법구경을 안내한다.

법구경의 불견, 불문, 불언을 되새기며,

경내를 돌아보니 나 또한 아기 동자가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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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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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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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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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담장 안의 장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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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의 곡전재(穀田齋) 안채 뒤꼍에는

나지막하게 쌓은 기와 담장 안에 장독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장독에 기와 담장이 있다니 ……

고추장 간장 된장을 참 소중히 여긴 것 같다.

한국 전통 목조 건축-곡전재 (穀田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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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전재 (穀田齋)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구례군 향토 유적 제9호

이 건물은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에 이교신(호-곡전)씨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전통목조 건축양식의 주택으로서 부연을 단 고주집, 문살의 외미리 형식, 기둥 석가래 등이 매우 크고 지붕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영 호남지역에서 발견되는 부농의 민가형식 주택으로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자형으로 배치되었으며 2.5m이상의 호박돌 담장을 설치하여 집터의 환경을 금환(金環)의 개념을 도입한 점 등이 독창적이다.( 안내판 해설 내용임)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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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거나 냇가를 거닐 때 주변에서 돌탑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돌탑을 쌓으면서 본인의 소원을 빌면서 돌탑을 쌓을 때까지 무너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민간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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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흩어진 돌무더기를 모아 보기 좋게 예술적으로 돌탑을 만든다면,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예술로도 손색이 없겠지요.

산길 가다가 돌 하나 주워 돌탑 위에 얹어 놓아, 쌓는 이도 보는 이도 기분 좋게 하면 어떨까요?

 

 

기와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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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는 ‘기와불사’ 접수처가 있다.
쭉 늘어진 기와에는 많은사람들의 기원이 적혀져 있다.

건강기원, 사업번창, 혼인기원, 합격기원,취업기원, 자녀출산기원, 로또당첨 등등 소원도 가지가지이다.
그것을 적는다고 해서 정말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일종의 종교적 기부이니까, 나는 처음 가는 절이나 특별한 날에 절에 가면 기와 한 장에 소원을 적어 ‘기와불사’를 한다.

생일을 앞둔 하루 전날 화엄사에 들렸다. 기와 한 장에 願娥老行 (곱게 늙어가는 노인 기원)이라 적었다. 어법에 맞는지 모르지만 ……

나는 곱게 늙어가고 싶다.

타인능해(他人能解) →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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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능해(他人能解) →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 >

약 250년이 된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에 ‘타인능해’라는 쌀 뒤주가 있다

“타인능해 (他人能解)”란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 뒤주에 쌀을 채워놓고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때 마개를 돌려 쌀을 빼다가 밥을 짓도록 허용한다는 뜻으로 쌀독 마개에 “타인능해”라고 써 놓았다.

각종 민란, 동학, 여순 사건, 6.25전쟁 등 힘든 역사의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지금처럼 ‘운조루’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이 타인능해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운조루 창건주 유이주는 한 달에 한 번씩 이 뒤주에 쌀을 채우도록 하는 등 쌀 수확량 200여 가마 중에 약 40여 가마의 쌀을 양식 없는 이웃들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운조루(雲鳥樓)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운조루(雲鳥樓) :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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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雲鳥樓) :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중요민속자료 제8호)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詩 귀거래사(歸去來辭)라는 칠언율시의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無心以出岫 倦飛而知還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는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올 줄 아네) ]

조선 영조 때 유이주(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 큰 사랑채 대청 위의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 52년(1776)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ㅡ 자형 행랑채, ㅜ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당과 연당이 남아 있다. 집을 지 은 12년 후에 유이주가 작성한 <장자구처기>에 따르면 최초 운조루는 78칸 집이었다.

화재와 세월로 인한 유실, 필요에 의한 복구와 증축 등의 과정이 있었다. 2007년 문화재청의 실측 조사에 의하면 현재 63칸이 보존되어 있다.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이어 있으며 팔작지붕이다.

‘운조루’는 일종의 택호에 해당하는데, 원래는 큰 사랑채 이름이다.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이다.

운조루와 오미동은 이른바 길지(吉地)로 유명한데 길지란 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란 뜻이다. 하지만 세상사 요행은 없는 것이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성실하게 노동하고 그 댓가로 살아가는 사람 사는 이치는 동일하다. 사람 살기에 안온한 땅이란 뜻으로 이해하면 족할 것이다.

(해설은 운조루 안내 사이트에서 발췌)

걸음은 조용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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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우측 하단의 푯말이 재미있다.
‘ 걸음은 조용 조용 ‘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게 인생 아닐까?​

                                                                                            — 쌍계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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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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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원효는 어릴 때 황룡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34세가 되던 해에 원효는 8살 아래인 의상과 함께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고구려 땅을 거쳐 중국으로 가려고 하다가 고구려 군사들에게 붙들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1년 뒤 두 번째 유학을 떠나기 위해 의상과 함께 백제의 옛 땅을 거쳐 바닷길로 중국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도중에 그만 날이 저물어 무덤 속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물을 찾다가 바가지에 있는 물을 아주 맛있게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원효는 너무 놀랍고 역겨운 나머지 구역질을 하였고, 그 순간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제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이 날 때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것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생겨나므로 모든 것이 생긴다.” 라고 읊었다고 한다.

— 사진은 구례 화엄사 입구에서
— 글은 백과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