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타버렸다는기사를인터넷에서접하는순간
마치건강하셨던아버님이갑자기돌아가셨다는연락을받은것처럼멍해졌습니다.
그날저녁(한국시간으로는불탄날아침)저는약속이있었는데,
만나기로한사람들은다음날한국으로귀국하는가족들이었어요.
이들에게슬픈소식을전하니
"한번도남대문에가보지도못했는데불탔네…"
경남진주에사는그들은남대문을직접본일이없다고했습니다.
그래서인지남의아버지부고를받은정도의반응밖에는보이지않았습니다.
그러나나는내아버지께서돌아가셨다는연락을받은것처럼허탈했습니다.
낡고초라해가는데말로만보물이라고하면서돌보지도않고관심도안갖던남대문.
늙고힘이없어진다는걸알면서도별일없을거라고자위하며잘모시지도않는우리아버지.
그런내아버지가어느날갑자기남대문처럼이세상을떠나신다면그때야
‘아니이렇게갑자기가시다니요,이것도못해드리고저것도못해드렸는데.더자주찾아뵐것을…"
하고후회하겠지요.
아버지는지난세월을남대문과함께묵묵히우리를지켜주셨습니다.
정직하게살자라는현판을가슴에새기고팔일오,육이오,사일구,오일륙,십일십이등의
거친숫자들을다견뎌내셨습니다.그이후의숫자부터는침묵하셨지만…
서울사람들을그문안에들여놓았다가,지친그들을다시문밖으로내보내던남대문처럼,
아버지도우리의들고나감을지켜보고계셨습니다.
그런데그토록많이남대문을지나다녔어도거기대문이있는지,없는지를몰랐습니다.
남대문은지날때통과세도안받았고
그냥
다음내릴정류장이시청앞이거나서울역이라고가르쳐주었을뿐,
한번도단한번도"내가문이다!"라고막아서지않았기때문입니다.
내아버지가한번도"내가아버지다!"라고큰소리안하신것같이.
그래서불에타서다없어지기전까지
호화건물에둘러싸인남대문을보며이정표처럼,잊혀져가는전통처럼
그냥거기에천년만년있을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
우리젊은자식들은세계최고의건물이되려고
건강음식,건강보험,건강운동등각종안전장치를해놓고살면서,
그그늘에가려진늙은아버지는남대문처럼방치했습니다.
아,남대문같은내아버지,
부족한자식,이제정신이번쩍듭니다.
남대문이불타버리니까
이제아버지울타리마저없어질까봐걱정이되요.
남대문은갔지만,
아직도나의아버지는"집안의서열1위"라는명분만으로
묵묵히자존심을지키며우리의울타리와이정표가되고계십니다.
살아계실때잘해드릴테니
오래오래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