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몇년째미국교회에나가고있다.
설교가좋고,발음이깨끗하며,집에서가까워서이다.
지난주일(일요일)아침설교의주제는Pride였는데,다음과같은예화로시작되었다.
———————–
그런데낙하산은세개밖에없었다.
다섯아이의아버지,컴퓨터프로그래머,목사,그리고중학생,이렇게네사람은서로얼굴만쳐다보고있었다.
이제목사가슬픈눈으로중학생을바라보니,중학생이목사의손을꼭잡으면서이렇게말했다.
"목사님,우린다살수있어요."
"어떻게?"
"저컴퓨터맨이낙하산대신내책가방(backpack)을메고내렸거든요."
—————————
설교를듣던사람들이웃었다.그런데나와내남편은못웃었다.
할수없이그냥지나치고,나머지설교만감동적으로들었다.
예배가끝나자남편이나에게아까사람들이왜웃었느냐고물었다.’몰라,’했더니뒷자리의델라에게물었다.
(위의글은델라가설명해준대로적은것이다)
우린왜못웃었을까?
어이없게도나는parachute(낙하산)를pairofshoes로들었고,
남편은backpack을못알아들었기때문이다.
미국사람들에게영어로가르치고,영어로서비스를하며20여년을밥벌이하고살아왔다.
그런데도가끔이런배경없는넌센스퀴즈같은예화가있으면웃지못하고놓치는것이다.
그래도미국목사님의메세지가가슴을칠땐참회의눈물을주루룩흘리기도하고,
13살미혼모의아기양육기를들을때면가슴이찡해서훌쩍거리기도하는데말이다.
그런데왜이런부끄러운일화를또끄집어내는가하면
지난번내블로그의글’슬픈외국어’를보신내어머니께서
"너,그게아니다…"하신것이생각나서이다.
나의어머니를비롯하여한국에계신분들은모두영어에대해일가견이있으신데,
그래서우리를바보같이보건말건,
정말정말내가그분들께하고싶은말은’나는영어가아직도슬프다’는고백이다.
"슬픈외국어"는무라까미하루끼의책제목인데,
그일본작가가남의나라인프린스턴대학에교환교수로와서사는동안이방인의느낌을쓴글모음이다.
남들이다웃을때못웃는슬픔(이건감상적인슬픔이아니라씁쓸한비애다),
그슬픈감정을하루키작가는일본어로책을썼지만
나는그냥한국말로누군가에게말하고웃어날리고싶다.
그리고,
한국어가편하면서도영어를더잘한답시고가르치려드는오만한자들과
학원엘못다녀서영어를못한다는편견에젖어있는자들에게
이젠그만들하시고,슬픈나를보라고말하고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