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학림다방에서브람스를들어야멋있는대학생이라고생각했었다.
그래서재미도없는심포니를시험공부하듯억지로듣기시작했는데,
그것이지금은몇십년의세월을담은나의추억의금고가되어버렸다.
라흐마니노프피아노콘체르토(RhapsodyonaThemeofPaganini))와브람스교향곡1번을같이하는음악회에갔다.
표가비싸서남편은떼어놓고
딸과둘이만갔는데딸은학생이라반값,나는45불짜리.
나는발코니중앙앞쪽을제일좋아하는데,이상하게도보통미국사람들은일층앞쪽을더선호한다.
덕분에내가좋아하는자리를일층보다싼값에구할수있다.
남편을떼어놓고우리끼리음악회에가는것은마치신고배를먹는것같다.
무슨소린가하면,
아이들어렸을적에는대낮에우리부부둘이서만몰래배를깎아먹었는데,
미국서크는애들이라서아직배맛을모르기때문이었다.
그비싼배를맛도모르는아이들에게주기는아깝고(대신워싱턴애플을깎아주면더좋아하니까)
그래서애들학교에간사이에우리끼리만먹는것이다.
이젠그들도배맛을알지만,남편의고전음악맛은아직그때아이들입맛수준이라서
본인이동의하면우리끼리만음악회에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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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ovKasman,Piano/ChristophCampestrini,Conductor
피아니스트와게스트지휘자가모두낯설은이름이었지만,그러나그들이누구이던간에
이대곡을들려주기위해기울였을노고를충분히짐작하는고로겸손히기다렸다.
사실내가이름을기억하는지휘자나연주자는모두옛날’전설의교향곡’과같은인물들이고
요즈음은누가뜨는지전혀모른다.브람스심포니#1은카라얀이제일잘했다는데.
지휘자가부드럽게몸을한번휘젓는것을보며나는아주편안하게음악속으로빠져들어갔다.
바닷가시골집이층에는내아버지의보물지멘스전축이있었다.
보통때는그건음악을들려주기보다는반들반들닦여서다다미방에거만하게서있는것으로소임을다했는데,
그러다방학이되어딸들이내려오면지멘스는비로소목소리를내기시작하는것이었다.
그때새벽에듣던브라암스나다른러시아작곡가의음악은맛이아주특별했다.
새벽에전축을걸어놓는이유는,
이음악이잠을깨우고,일어나느라뜸을드리는동안한숨더자는데그러면서귓전에어려운음악이맴돌면
자면서고전음악을외우겠다는계산이었다.
비몽사몽간에가보지도못한북국의벌판저끝에서오보에와호른소리가나를부르는것같고,
러시아의어느초원을누비고다니다가라스콜리니코프와소냐를만나고,
그가오랜방황끝에그녀의무릎에엎으러지며죄를뉘우칠때
터지는팀파니의포르테가그새벽을깨우기도했다.(이거이름다맞나?)
기억을더듬다보니,
내어린시절도마치’안개’라는영화의무진마을처럼분위기가피어나네.
아버지는나에게아주중요한두가지를주셨는데,
그하나가지멘스전축이고다른하나는정음사판세계문학전집60권이었다.
나에게만주신것이아니라식구모두에게주셨지만,
보물은찾는놈이임자라서아마내가가장많이찾지않았나싶다.
아무튼고전음악과소설을동시에친해보려는노력은몇번의방학을지내며결실을맺었다.
그래서드디어학림다방에가서팔짱끼고브람스를듣기도하고,
석굴암에가서술이취해몽롱한의식으로’의식의흐름’이라는’썰’을풀기도했었다.(사실러시아문학은이것과는상관없는데,내무식했던남자친구들은그래도재미있어했다)
컨서트홀에간다는것은항상가슴설레는일이다.
일상에서탈출하려는시도,옛것을배워새것을알려는시도,
과거를기억해서미래를이해해보려는노력이기때문이다.
젊었을적에는클래식음악그자체에관심이있었으나지금은음악에얽힌내자신의과거에생각이더미친다.
그래서지멘스를사주셔서음악을쉽게접하게해주신아버님과,
내아이들에게악기를가르치느라텍사스의고속도로를누비던기억들,
아이들컨설트마다옷사입히고사진찍던기억들,
무대에선아이들을볼때마다솟구치던대리만족의황홀함…
오케스트라의연주는끝없이나의과거를퍼나르고있는데,
문득발견한사실은내가딱히오케스트라의어느파트에눈을고정시키지않고않다는것이다.
첫째아이가바이얼린을할때는항상컨설매스터를보았고
둘째가첼로를할때는첼로쪽에만눈이갔었다.
막내가바이얼린을하니다시그쪽으로,그리고팀파니를할땐머리허연북쟁이할아버지를열심히보았었다.
그들이오케스트라에서떠나버린지금에야나는지휘자를본다.
그것도예전처럼뚫어져라보지는않고
대신그의율동에따라음악에편하게몰입한다.
보는것보다듣는것에더충실해진것일까?
아이들은지금음악과는상관없는다른일들을하고있으나,
그래도엄마와함께음악회에기꺼이동행하는너그러운음악애호가가되어있느니
그것이큰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