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8월27일
오랜만이예요.
하두오래안봤더니얼굴생각도안나고그저뿌옇게대강대강떠오르고,
다행스러운건,미운건잊어먹고괜찮다고생각되는점만가끔생각난다구요.
그러니애들이야뭐말할필요도없지.
당신은편지에내가보고싶다고썼지만그걸보면서전"흥!"했다구요.
보고싶고어쩌고하는말이사치처럼들리니까.나는여기서휘둘려죽겠는데.
바가지긁던건다잊어먹고시꺼면여자들,등치좋은흑진주들틈에있으니까숨이꽉막혀서
그나마국산생각이났는지…아마그럴꺼라.
여긴별일하두하두많아서(집안팎으로)내머리속이하얘져버렸어요.
그때그때최선이다싶은대로처리했으니이젠처분만바랄뿐.
그쪽일이나빨랑빨랑하고와서효자노릇하라구요.
오늘아침에삼촌에게서전화가왔었지요.
당신회사에가서월급이랑편지랑찾아서관리비물었다구요.
형걱정을되게많이하시더군요.(이북놈들때문에)
그래서문득나도걱정도되고미안하기도해서이렇게위로의글을올리기로작정했구요.
다늦게보내는편지라받을지모르겠지만그래도행여받았다면다음주의사항을명심하시라구요.
1.살찌지말것.
2.빨갱이들조심할것.
-하기야당신은평소에"113수사본부"를열심히봤으니까걱정없지만서두.
3.잘나가다가낙심천만하는버릇,옹고집버리라우요.
참두주일전에엄마네랑전라도칠보라는곳에놀러가개울에서헤엄치다가
어항낙시유리조각이손가락에관통,그래서꿰매고아직실밥을안풀었는데핑계낌에
손에물도안묻히고팔자에없는호강을하려니까갑갑해죽을지경.
요즘진경이가어디서배워왔는지
"그래,화경이너잘먹고잘살아라"한다구요.아무나보고그러지요.
아빠어디갔냐고하면정확히"비행기타고아-프리카갔다"고발음좋게한답니다.
편지지무게많이나갈까봐이제그만씁니다.갑자기더쓸말도없고.
그럼5500원어치애정을보내며이만끝.안녕.선.
추신,5500원어치란?
내가현재가진돈전부.
편지를탁펼쳤을때여백이남으면어딘가서운할테니까아래빈곳에요즘유행하는"이은하"의노래
가사를대강적어놓겠음.제목:아리송해
아리송해,아리송해,짖꿋은너의말이아리송해,
사랑하기때문에미워한다는,바로그말이아리송해.
아리송해,아리송해,…….어쩌구저쩌구…….
1979년9월6일
보고싶은진경아빠께
잡지책과사진,편지를인편에보내라고해서회사에전화를해보니까무겁고부피가많이나가는것은
곤란하다고하더군요.그래서편지나더쓸까하고…
지금옆에서는아이들이어찌나흔들어대는지글씨쓸수가없을정도예요.
화경이는많이컷어요.어찌나사나운지상훈이가꼼짝을못합니다.
큰애건,남자애건,모두꼬집고물어뜯어싸납배기로유명합니다.
말도잘하고노래도한번들으면다쫓아하지요.
진경이는구렁이가다됐습니다.밥안먹겠다는말도"저녁생각이별로없는데요"라고합니다.
당신이떠난직후
어머님께서이유없이저를몰아치시던일도잊어먹을만해지고,
아이들에게할머니,할아버지를가깝게해야하겠기에시골에잠시다녀오려고합니다.
제발억지쓰지말아주시길바랄뿐이예요.
당신부모들은언제나효도를받으실줄알게되실는지…
엄마네집에가있는동안생활비가남아서꿈이많았는데,고모들등록금에착출당했죠.
장기융자,장학금하나도못받고내일모레가등록일인데오늘에야64만원해내라고해서제가혼났어요.
다행히삼촌이이리저리뛰어서단기융자30만원이라도받아주었으니망정이지..
나성질많이죽었어요.내동생들같으면그냥…
참,옆방아가씨는당신떠난후내보냈습니다.
우리가싸우던얘기를낱낱이어머니께일러바쳐어머니께서저더러이혼하라고했답니다.
당신오면이혼하던지말던지하겠다고했습니다.
그래서마음이심란해서사실편지쓰고싶지도않았어요.
참,요즘은왜편지를안보내나요?
지난봄,매일죽으려고자학하고있을때
당신편지가그나마도움이됐는지아직도죽지않고있어요.
당신처럼말주변이없는사람은글로쓰면훨씬의사를정확하게표현할수있지요.
더구나대꾸하는사람없이일방통행이니까하고싶은말,다써서보내세요.
지난번에보낸편지받아보았어요?
어제신문을보니미국에서는외국인에게뇌물을못주게되어있어
서독이나이태리등에공사수주와수출을많이뺏긴다고하던데,
당신너무고지식해서이렇게늦어지는건아닌지요?
가난한나라일수록뇌물을더좋아한다던데…
여비가모자랄테니선물사오라는말은못하고,
삼촌색시레코드판이나사오시고(클래식중에서어려운것으로),
아프리카에서나는괴상한장식품이나가죽에다염색한장신구같은것좀사오시면좋고.
Mr.유,이편지받는대로보따리싸놓고,팔걷어부치고그놈찾아가서사생결단을내고오시라.
나너무힘들어.
진경엄마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