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죽이기
셋째날

치료를받고오니,딸이핫도그를해준다.

전날유기농수퍼에서핫도그빵과코시어핫도그가맛있어보여샀다고한다.

맛은있는데커피도못마시며빵조각을먹으려니속이꺼거브루하다.

갑자기남부를배경으로한소설이읽고싶어서책꽂이로가보니,그전집이몽땅없어져버렸다.

딸말로는지난번거라지세일할때아빠가다버렸다고한다.맘마미아!

그책들은

우리가처음중동나갈때산딱따구리전집과,미국올때사온교학사세계명작문고줄임판이었다.

25년동안여기저기끌고다니며아이들과내가뒤적거리던책이었다.

미국에도줄거리만요약한얇은책들이있지만,그것보다는좀두껍고,영어와한글로되어있어서

다잊어버린줄거리기억해내기좋은책이었다.

속상해하고있으니까,작은딸이"아빠한테전화걸어소리지르세요."한다.

웃음이나왔다.내장끼.

"이젠기운없어못하겠어."하면서도전화를들고

처음에는목소리깔고마피아두목처럼,나중에는고함을질렀다.그랬더니속이울렁거리고

머리가띠잉해진다.

,이래서"속뒤집힌다"는소리가나오는구나

"내몸을위해더이상성질내면안되니까끊어요."

점심이지나고,저녁이되어도아무도뭘먹자고하는사람이없었다.

내가차려주길바라나?

속이좀메스꺼워서그런지,먹고싶은것도별로없었다.

뭘해먹을까…

굴러다니던여성잡지부록에밑반찬과장아찌가보였다.

뒤적거려보니내가먹을만한것은표고버섯과밤졸임정도다.

동생이보내준표고버섯과지난주한국가게에서산날밤을꺼내놓는다.

막상그걸하려니심술이더럭더럭나기시작했다.

때마침남편이들어오는데배가촐촐한인상이다.나는갑자기짜증이팍나서,

"누구야,누가나를암환자취급하지않는게좋다고말했어!다지들편하자고하는소리아니야!"

또소리를지르고말았다.머리가핑돌았다.

의자에앉으면서,

밤을까라고명령하니까날벼락맞은남편은꼼짝못하고눈치보며밤을깐다.

파래볶으고,

표고와밤졸이고,

영계백숙남은것데워먹는데,별맛이없다.

내평생에이렇게진한표고향기는처음이다.

그동안맨가짜만먹었나?하긴중국제였으니까

밥먹고나서피부가가려워약간긁었더니두드러기처럼벌겋게부풀어오른다.

원래건성이라서항상긁적거리며살았는데,그래봐야그저여드름정도크기의뭐가나다가

금새없어지는데,이놈은잘때까지없어지지를않는다.버섯땜에그러나?

에라모르겠다,자자.아침까지안없어지면의사에게말해야지.

넷째날

방사선기계에무슨지도같은게있는데,내배에그린것과같아서뭐냐고물었다.

"당신치료할부분이예요."뻔한대답.

"저게꼭미국의어떤주모양으로생겼는데,어디같아요?"

"글쎄…켄터키?루이지애나?,아하,우리지리공부시키시네."

자기들끼리낄낄거리며,서로어디같으냐고묻는다.

알라바마에사니까기껏주어섬기는게근처의남부주다.

내가보기에는조오지아주를눕혀놓은것같은데

한주치료가끝나는금요일이라서방사선전문의를만났다.

처음만났던나이든간호원지나가다시우리를반겼다.이번에는내빨간테안경이이쁘다고야단이다.

"그래서내가절대로와이프를안잃어버린다구요."

남편이한국식의설렁한농담을했다.빨강모자생각이났겠지.

우리는준비해간몇가지질문을했다.

첫째,두드러기.

둘째,방사선치료22번이다끝나면여행을갈수있겠는가.

셋째,년말에카작엘갈수있겠는가.

두드러기는방사선때문은아니라고.

짧은여행과카작은모두오케이.

치료가끝난다고암세포가그때다없어지는것이아니라서서히줄어드는데,

치료끝나고3개월이나6개월쯤뒤에위내시경한번해보고,계속없어지고있는가를체크하는것이니까,

갔다와도된다고했다.말하자면암세포를지켜보는것이다.

찜찜하다.

이럴때한국사람성질대로그냥확다죽여버리고깨끗이하고싶은데,그게아니란다.

방사선으로암세포를줄여놓고활동을못하도록하면,언젠가는암세포도늙어죽고,

건강세포가그자리를채운다는논리였다.

,그러니까성질도내지말고,욕심도부리지말고

남은인생을암세포달래며순하게살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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