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나면 무얼 들고 나갈까
불이나면무얼들고나갈까?

아침10쯤되었는데갑자기비상사이렌이울리며방송이나왔다.

"화재가감지되었습니다.주민여러분은속히건물밖으로대피하십시오.엘리베이터를이용하지마시고

비상구로나가십시오.다시한번말씀드립니다…"

세번이나반복되었다.

나는컴퓨터를하고있다가놀라서핸드백,셀폰,서류가방을들고허둥지둥나가다코트와컴퓨터도챙겼다.

불과2-3분정도걸렸다.

평소에나는엘리베이터를안타고비상계단을이용해밖으로나가고,추운날은운동삼아1-7층까지

복도를걷기도해서비상구를잘알고있었다.

비상문이안열렸다.

팔다리가후들거려주저앉아,

"호랑이에게물려가도정신만차리면된다."

컴퓨터를서류가방에집어넣고꺾어신은운동화를제대로신고,마침복도에서경보등을수리하는남자가

있기에문을열어달라고했다.

딸집현관문은잠그지도않고그대로내려갔다.

일층까지무사히내려가밖으로나가려다,딸에게전화를거니안받는다.

출입문을반쯤열어놓고우두커니서서어디로가나,왜이리조용할까생각했다.

로비로갔다.

이콘도는로비를호텔처럼잘해놓았다.

거기에는인도사람처럼보이는여자와중국할머니가아이들을데리고나와앉아있었다.

나는라운지로가서TV를켜고소파에털썩주저앉았다.불이나도금방대피할수있으리라.

소파에앉아서류가방을열어보았다.

여권,내병진료챠트,체크북,남편의빈지갑,그게다였다.

핸드백은너무뒤죽박죽이라서누가볼까봐창피해못열었다.

보나마나영수증이가득들었을테고,수첩,지갑에는운전면허증과크레딧카드,현금은평소에도별로

안가지고다니니까한20불쯤있으려나?

불난콘도같지않게조용해서프론트로가서다시물어보았다.

",그거엉터리경보였어요.잘못나간거라고다시방송했는데못들으셨어요?"

집으로돌아가는데,

너무기운이빠져핸드백과서류가방들기조차힘이들었다.

문득,캘리포니아산불로집을몽땅태운사람들생각이났다.

우리는그저안됐군,하지만그들은얼마나기가막혔을까.

집이란평소생각했던그런집이상의가치가있다는것을깨달았다.

이구석저구석놓여진물건들,쓰레기통하나도정가표가문제가아니라그닿았던손길이문제였다.

딸방에는얼마나많은CD가있던가,

그걸들었던느낌과시간은새로CD를산다한들돌아오지않을것이다.

DVD,책은,사진은,그런거다타없어진다면?

며칠전,작은딸이블라우스를꺼내상표를보더니,

"엄마,미세스고가누구예요?"물었다.

",30여년전엄마가제일좋아했던한국디자이너."

이제는팔도안들어가지만,그블라우스는내전성기와광란의시절을생각나게해주었다.

결혼하고나서도,

나는가끔씩미친년이되어남편의월급봉투를통째로들고그옷가게로달려갔는데,

남편이뒤따라와옷가게앞에서나오라고손짓을막해대면옷가게의정선생은,

"집에가서하루만입어보고다시가져와."했었다.

낡은블라우스에는그런스토리가적혀있었다.

교회의수련회에가면,

불이났을때무얼들고나갈거냐고묻는질문이있다.

이질문은정말바보같다.

정답은"성경책"이라는걸누구나알기때문이다.

그래서수련회교사는거듭거듭"솔직히"말하라고강조한다.그러면용기있는사람들이,

"돈이요!"

"앨범이요!"

"보석이요!"한다.

그땐이모든사람들을비웃었었다.나는없으면서도있는사람들을우습게보았다.

왜돈을집안에쌓아놓고사냐,

난결혼앨범도반지도다친정에있어,고달팠던과거불탄다한들할수없지,

크레딧카드만빵빵하면성경책도사고보석도산다,스투핏.

속으로그렇게말했었다.

지금도그런것없긴마찬가지이지만,

평생지녀왔던낡은성경책처럼손때묻은가난조차도불태워없애기가아깝다.

그리고겁도난다.

생각만해도다리가후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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