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본지” 나갈 때
선교사부인이"강된장"을해왔으니점심먹고가라고했다.

열명도넘는사람들이둘러앉아콩나물과달래를넣어열심히비벼먹었다.

온갖피로와시름이풀리는것같았다.

다른사람들이회의를하는동안나는교회마당에서냉이를캤다.

얼마나많은지앉은자리에서뽑은것이한소쿠리다.

뛰어놀던카작아이들이나물캐는나를신기하게쳐다보더니몇뿌리뽑아다비닐봉지에넣어준다.

점심에먹었던달래도동네에서캔것이라는데,너무많아이젠뽑기도싫단다.

집에돌아와달래를깨끗이씻어제이님이주신곡식가루에버무려약간의끓는물에넣고데쳤다.

시어머니의레시피다.고소한냄새가나는냉이데침.남은국물도떠먹을수있다.

남편과둘이쌈장을넣고저녁에또비벼먹었다.

교회마당에있는가마솟과아궁이.

여기명절인’나우누리’에솟을세개나걸고밥을해서온교인(카작인)이먹었다.보이는파란풀은모두냉이다.

1937년,

연해주에거주하던우리동포들은스탈린의강제이주정책에의하여이곳중앙아시아로왔다.

그들은"고본지"라는특유의농업생산방식을시작했는데,

쉽게말하면봄에우크라이나나카프카즈등지로가서땅을임대해농사를지은후,

가을이되면미리계약한만큼의수확량을돌려주고나머지는개인수익으로챙겨서집으로돌아오곤했던

농사방식을말한다.

"고본"이란구러시아의국영농장이나집단농장체제에서개인에게할당된토지의단위를말한다.

그러니까,고본지란"토지임대계약경작"이라는뜻이되는것이다.

1980년대고르바쵸프의개혁정책에의해도입된자본주의경제방식에재빨리적응한고려인들은

15-20명씩팀을만들어"고본질"을하러여기저기다녔다.

고려인들은부지런히일해서온갖곡식,채소들을현지인들에게공급했다.

한편,

국영농장관리자들은부지런한고려인들로인해자기들이맡은할당생산량을채우고,임대료까지챙길수

있으니이를눈감아주었다.

자신들의노력에따라소출을올려할당량이상의것은시장에팔아과외의수입을올릴수있었던

근면한고려인들,그들은이렇게해서자녀들을교육시켰다.

이들의후손들이지금카작의재계에두각을나타내고있다.

한편,

일한결과에상관없이일정한급여를받는데익숙한구러시아체제의다른종족들은이들고려인들을

따라하려고도하지않았다.

결과적으로,

현재카작고려인들은"부지런하고,돈많은고려인"으로생각되어지고있다.

아,또있다.예의바르고효심깊은고려인.

5월이되면맛있는체리가나온다고했다.

집집마다분홍색꽃이만발한데,벚꽃같기도하고복숭아꽃같기도하다.체리는어떤꽃에서나올까?

봄이되니

길거리는적당히분주해지고,좀더지저분해지고,아직도검정옷을입은젊은이와늙은이가꾸역꾸역

5층아파트단지에서나와돌아다닌다.머플러를쓴아주머니도있고,부츠를신은몸짱아가씨들도많다.

나도옛날에똥구멍이보일듯한미니스커트를입고다녔었다고하면누가믿을까?

천산의눈녹은물이내려오는천변.우리가걷는곳이다.

갑자기마음이분주해진다.

겨울내내,

눈녹으면산과들로나가리라다짐했었는데,막상눈녹은물이흘러내리는데도

어디를언제어떻게가야할지몰라마음이다급해진다.

,가을이짧은이곳.

,다시살아났구나,하는데그새벚꽃이진다.

으메,우짤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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