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빼먹듯이
BY 벤조 ON 4. 16, 2009
하루종일비가오더니저녁에전기가나갔다.
더깜깜해지기전에양초와성냥을급히찾아놓고배낭을꾸렸다.
시내로나가서저녁먹고,커피숍에들러인터넷이나책을읽을까해서다.
강의가끝나집에온남편은나가기싫어했다.
그는엘리베이터도안다니는13층을걸어올라와옷부터훌훌벗어던졌다.
나는할수없이설익은밥(전기밥솥도꺼졌으니까)에고추장과무나물,호박나물을섞어비벼놓고
촛불아래서퍼먹으려하는데,전기가다시들어왔다.
국을데우고상추쌈을싸서저녁을먹고나니,전기가또나갔다.
전기가없으니정말아무것도할일이없었다.
기찻길옆오막살이도아니고…
밥을잔뜩먹었으니금방잘수도없고,반동강남은촛불아래서책을읽을수도없었다.
큰딸이부쳐준미국곶감?
할수없이,
졸고있는남편을깨워옛날이야기나좀해달라고졸랐다.
"처음으로음악선생님이왔어.
그선생님의첫마디가‘노래를못하는사람을음치라한다‘였지.그후로그선생님별명이‘엄치‘가되었어.
그선생님은노래는잘하는데영어를모르는거야.그래서우리는영어로말하고노래는선생님이부르고…
하하.그래도그때가곡을많이배웠다."
그러더니,
"오가며‘거지밥‘을지나노라면","너도가고나도가야지",등등을흥얼거렸다.
그럴줄알았다.
맨날학교다니던이야기뿐이지.
친구와놀던’야그’도없고,수줍은여교사와의사랑야그도없고,군대야그,축구야그도없다.기껏해야
비가오면낙동강물이불어촌애들은일찍집으로가고,읍내에사는자기는늦게까지학교에남아있어도
괜찮았다는거…
아파트와눈덮인천산
우리는,
맞선본지한달반만에약혼을하고,약혼한지한달반만에결혼했다.
서로잘모르는채급행결혼을해서서먹서먹했었다.그래도나는신부의도리를다하느라열심히살림하고,
그는신랑의도리를다하느라열심히회사에다녔다.
묵자,자자,두마디면하루의대화가끝이던신혼시절,참다못해내가과감히,
"무슨얘기좀해봐요.시골에살던얘기나친구들얘기,월남갔다온얘기…"
"음…나중에…긴긴겨울밤에곶감빼먹듯이…"
그때풀어놓긴너무아깝다는듯이피하곤했었다.
어느덧,
곶감빼먹을나이가되었다.
만년설천산아랫동네,카작의밤에서,전기불도나갔다.
커어억…커커억…
그의코고는소리가들린다.
그가꿰어놓은곶감이란도대체무엇일까?
언제나빼내어맛보게하려나?
아아,정녕너도자고나도자야할것인가?곶감도못빼먹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