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낯설고어수선했다.지나가버린내젊은날처럼.
도시는,바쁘지만슬프고허전해보였다.
브란덴부르그문앞에서서어리둥절한채동서남북을둘러보았다.
그리고나는바흐의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떠올린다.
여섯개의각각다른협주곡과,협주곡마다각각다른악기들의편성으로구성된곡.
독일과이탈리아음악의특징을잘혼합했다는곡.
"고르바쵸프당서기장,
만일당신이평화를추구한다면,그리고소련과동유럽의번영과자유를갈구한다면,
이문으로오십시오.
미스터고르바쵸프,
(와서)이문을여십시오!
이벽을허무십시오!"
레이건대통령의그유명한"TearDownThisWall!(이벽을허무십시오)"이라는연설문이다.
1987년6월12일,냉전이한창일때,미국의로날드레이건대통령은베를린을방문했다.
베를린시건립750주년을축하하기위해서다.
그때,그는브란덴부르그문앞에서이연설을했다.
그로부터26개월뒤인1989년8월23일,
고르바쵸프는놀랍게도베를린장벽을허물라는지시를내렸다.마치레이건의주문에걸린것처럼…
그리고장벽은무너졌다.
사실,
처음에는이레이건대통령의연설에대한반응이크지는않았었다.
그러나,베를린장벽이무너지자사람들은이연설을떠올렸고,2년이지난후명연설로남게된것이다.
기록을보면,
백악관의참모들도이연설문초고를별로탐탁하게여기지않았다고한다.
너무도발적이라서냉전시대의국제정치와,레이건-고르바쵸프관계에금이갈수있다고여겼기때문이다.
그러나연설문초고를본레이건대통령은"좋다,그대로하겠다."고밀고나갔다.
그당시베를린에주재하며레이건대통령의연설을지켜보았던미국외교관콘블럼대사(JohnC.Kornblum)는
후일이연설을"리건의브란덴부르크협주곡(Reagan’sBrandenburgConcerto)"라고표현했다.
냉전시대의복잡한국제관계가카운터포인트로깔려있기때문이었다.
그러나20세기의브란덴부르크협주곡은,
미영불소에의해4개지역으로쪼개져살아가던베를린의신음소리일뿐이었다.
베를린장벽이세워졌던자리
나는브란덴부르크문을지나도시의동서를보고,남북도둘러보았다.
한때,
동(東)과서(西)만있었던도시베를린.
이문을통해야만동(東)이서(西)를만나고,서는동을볼수있었던슬픈역사의도시.
제2차세계대전승전국들은베를린을넷으로쪼개놓고,독일을둘로갈라놓았었다.
서방의자유를찾아서쪽으로떠나는동쪽사람들이점점많아지기시작하자,소련은이를막기위해1961년베를린장벽을쌓기시작한다.
그후,
이장벽은냉전과분단의모든것을상징했다.국가,이념,사상,가족…
그러면서1989년까지지탱되었다.그리고무너졌다.
자유를갈망하는힘에의해서…
베를린동쪽의한전철역.
아직도동서빈부차이의흔적이엿보이지만,독일정부는그대로놔둔다고했다.
이베를린장벽이무너진지올해로20년.
베를린시는"자유의축제(FestivalofFreedom)"라는이름으로기념행사를한다.
베를린장벽을상징하는1000개의스타이로폼널빤지를옛장벽자리에설치할예정이다.
그스타이로폼을한국이나키프로스,예멘과같은분단의경험이있는나라에보내,지식인들이나예술가에의해
분단의현실을거기다작업하게한다.
그다음,베를린에다시가져와설치해서11월9일,베를린장벽이무너진날,
이널빤지도도미노처럼무너지게하는퍼포먼스를할예정이다.
한국에는3개의널빤지가배당이되었고,소설가황석영씨와미술가서용선,조각가안규철씨가여기에참가한다.
베를린장벽이무너진지도어언20년.
그러나우리조국의현실은도대체변할줄을모른다.
그저남북이갈린채아직도서로’판문점바라보기’만하고있는것같다.
누구,
판문점앞에서"판문점협주곡(concerto)"을연주할위인은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