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순해지는 나이

하늘이너무파래서남편과둘이산책을나갔다.
미국아저씨들이멋진선글라스에귀막이,그리고우람한팔뚝을드러내고잔디를깎다가

우리를보면손을들어아는척한다.전혀모르는사이인데도…
"참좋겠다,저나이에좋은집,마누라,예쁜아이들,그리고안정된직장까지있다니정말천국이따로없겠네."
"지금내얘기하는거야?"
남편은웃지도않고말했다.

젊은사람들을보면모두사랑스러워보인다.
정원손질을맡은일꾼들이웅기중기모여앉아점심을까먹는것도,

옆구리에아이를끼고오만상을찌푸리고종종걸음치는노랑머리엄마도,특히

네거리멈춤에서손가락까닥까닥하며먼저가라고손짓하는깨끗한와이셔츠의아저씨를보면

하루종일기분이상쾌하다.

"아직도미국은아름다워.이땅에서살집도있고,건강보험도되고,아직직장도있고,

아이들도다자립했으니,우리도성공한인생이다,그치?"
나는진심으로말했다.
진심으로…

대추야자.노란것은생것,밤색은씨빼고말린것.

그렇다.
이제와서내인생의성적표에점수를매길필요도없고,설령점수가낮게나온들그게뭐대수랴.

결국은점수도등수도없는성적표를쥐고갈텐데…
혹시거기에는,

"준비성이부족합니다""매사에적극적이고솔선수범합니다""참을성이많습니다"등과같은

옛날성적표의품행란기록과같은것은남아있을지모른다.

그러나,

점수를잘받으려고더이상아둥바둥하지는않으니

이얼마나행복한인생인가!

친구가추석에직접만든블루베리시루떡

옷장을열면안입는옷들이가득하다.그걸보며
"왜이렇게많이주어다놨을까?"의아해한다.
분명남에게멋지게보이고싶었을게다.그랬던내가너무사랑스럽다.

안쓰는그릇이이구석저구석에싸여있는걸보며,누구든지불러먹이고싶었던그기특한마음이그립다.

지금은마음뿐이고,일이무섭다.

뽀얗게먼지가앉은채로걸려있는그림들,장식품들,그리고궁리가많아여기저기서사모았던천쪼가리들…

그걸보며끊임없이뭔가만들고싶었던창작욕이대견하게느껴진다.

이자잘한것들을못해서얼마나애가탔었던가…

우리동네의교회.딸들을여기서결혼시키고싶다.

그러나,
지금이더좋다.그런것에서해방된이자유로움이더좋다.
아무도나더러성적나쁘다고흉볼사람도없고,흉을본다한들또뭐대수인가?
대신,남들이바쁘게좋은성적올리는동안편안하게하늘을바라보며,
"이시원한바람이어디서불어와어디로가는것일까?"

풍월이나읊으면되는상팔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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