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유학생들은반드시한국에서돈을가져다쓰겠다는약속을해야학생비자를받는다.
그래서그귀한노동을하고싶어도미국에서는불법이고,돈벌이가눈앞에보이는것같은데도일을못하게
하니너무답답했었다.
그러나,
미국정부에서유학생에게일을못하게한것이,지나고보니내남편에게는아주잘된일이었다.
공부보다재미있는일이푼돈버는것이다.큰돈이아니라푼돈.
지금도많은학생들이(미국학생들을포함)학비를버느라하루에대여섯시간씩일을하는데,
그런학생들은학점이엉망이고,따라서졸업도제때못하고오랫동안끌다가결국엔졸업장도못받는경우가
종종있다.
푼돈버는것,
그거참재미있다.몇시간꿈지럭거리면한50불씩번다.
그러나길게보면정말무익하다.
빨리졸업해서직장을갖고제대로돈버는것이훨씬유익한데,그거누가몰라?
안다구?알면,아는대로해야한다.
내가식당을하면서미국학생들을써보니,
일을많이한학기에는그들도공부는못하고힘만들어서스트레스를돈쓰는것으로푸니까
학비저축도못하는걸보았다.
그래서,
만일부모가학비보조를해줄형편이된다면그걸받고공부나열심히하라고나는충고한다.
가난속에서학업과일을동시에하며성공한이명박대통령을보라,또누구누구를보라,그렇게항변하는
사람도있을것이다.그렇게말하는사람은분명잘난사람일것이다.
그러나,
내남편은보통사람이었다.
만일,
내남편이일을할수있는신분이었다면그도일찌감치공부집어치우고가족들먹여살려야한다는명분으로
이일저일손댔다가박사학위는커녕제대로된직장도못잡았을지모른다.
죽어라공부해도그나이에미국학생들따라잡기가힘이드는데,부양가족핑계대고아르바이트몇시간하는것,공부에는정말치명적이다.
다행이남편은학교에서조교수당이약간나왔다.그리고조교가되면유학생이라도학비가미국학생학비와
같은수준이되기때문에그럭저럭버틸수있었다.
지금도대학원과정으로유학오는사람들은성적여하에따라조교수당을받을수있다.
석사를마친여름,온가족이4년만에한국에나갔다.
한국은올림픽을치르고나서술렁거리고있었다.
우리는여름석달동안있을예정이었기에,아이들을사립국민학교에청강생으로집어넣고
어른들은나름대로소일거리를찾기시작했다.
나는미국에서의습관대로자원봉사를해보겠다고기독교기관에찾아갔고,남편은친구와유학동창들을만나
일자리에대해이것저것알아보고있었다.
자원봉사.
그때까지도한국은자원봉사에대한개념이없었던것같다.
기독교단체를찾아가니,배가남산만하게부른해산달이다된여직원이혹시내가그녀의자리를빼앗을까봐
냉담하게경계했다.내가석달동안봉사해주면,그동안그녀는아이낳고몸조리할수있을텐데…
안타깝지만,거지취급당하기싫어더이상설명안하고나와버렸다.
한편남편은,
"미국으로돌아가지말자.좀더알아보면일자리가있을것같아."
안돌아가겠다고버텼다.
아이들교육문제,그리고남편이장담하는직장문제,이두가지가정말"문제거리"인데도,
정작남편은자신의장래에대해장미빛그림만그리며한국에남겠다고했다.
정신이번쩍났다.
그래서나는남편을달래고어르고…말안듣는마누라달래는남편처럼입장이뒤바뀌어남들모르게
쑈를하기시작했다.
내가미국으로돌아가고싶은이유는,
첫째,시집식구와멀리떨어져살고,
둘째,남편이목표했던박사학위를받게하고싶었고,
셋째,아이들을내소신껏교육시킬수있었기때문이었다.
이상의세가지가해결된다면,
가난하게사는것은하나도문제될것이없었다.
미국에서는아무도우리가독립문표메리야스를입건,왓어버거에가서1불짜리햄버거를먹건,
경조비를내건말건시비걸지않았다.
자유.
내소신껏살고,아이들공부시키고,남편공부하면그만인데,그러나한국에는그런자유가없었다.
한국에마땅한직장이없어서그랬겠지만,
결국남편은다시미국으로돌아가기로결심했다.
그래서우리가족은다시,
가난의끝을기약할수없는세월속으로,
재미없고고달픈박사과정이기다리는그곳으로,
그러나
아직은성실하게사는것이통하는아메리카로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