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되면세가지가달라집니다.
첫째,호칭이닥터로바뀌구요,
둘째,새차를사구요,
셋째,새집을사지요."
1995년12월,남편은드디어박사학위를받았다.
그러나달라진것은아무것도없었다.
우리는이미집도있었고,새차도샀었고,사람들은이미남편을"유박,유박,"하고불렀었다.
그해겨울,나도석사학위를받았다.
하루차이로우리는졸업식을하고중국식당을빌려축하파티를했는데,
한국에서오신친정부모님과아이들,그리고유학생들이모여축하해주었다.
아이들이찬송가"AmazingGrace"를연주하자어머니께서는감격하시며,
"수고했다.이렇게아름다운음악은처음듣는구나.아이들잘길러준것도너무고맙다."
지금까지도,
결혼식같은데서현악중주를하면어머니는누가듣거나말거나큰소리로,
"미국에있는우리손자들도참잘해요,그뭐냐,찬송가있지요?참듣기좋아요.우리돈이는바욜링을하고,
걔누나들은…"
젊은교수에게’너같은스투핏은처음봤다’는말을들으면서도,
공립학교의무료급식을받아먹으면서도그걸아주당연하고즐겁게받아들인것은그은혜를알았기때문이다.
내공부가끝나가고있었다.
이말을하자,남편은화들짝놀라면서"벌써?언제그렇게했어?"하는것이다.
"글세말이야…"
항상남편공부가제1목표였던우리집은,아이둘이대학엘다녀도,마누라가대학원엘다녀도
공부는남편혼자다하는것처럼여겨지던시절이었다.
남편은내가졸업한다니까쇼크를받았는지,
부지런히움직이더니자기도다음학기에졸업하게되었다고했다.마치졸업하기싫어안하고여지껏
밍기적거린것처럼.
가끔씩나는,
"이제공부한지10년이되어가는데,졸업좀시켜달라고해봐요.당신나이도50이다되어가잖아요."
떠보았는데,그럴때마다그는
"박사학위가매달려사정한다고받는거냐?"했었다.
나는당시아주지쳐있었다.
빵가게를시작하고새벽4시면어김없이나가야하는생활을5년동안해오고있었고,
그와중에대학원을다닌지도5년이다되어가고있었다.내가속한교회와교단의일도많았다.
딸둘이대학에갔고,막내는아직도중학생.
아이들을차에태우고정신없이돌아다녀야했던10년.
그러니까,
장사와공부,신앙생활,아이들교육과살림을도맡아해야하는수퍼우먼이었다.
아무곳에나엉덩이가닿으면곯아떨어져잠이들어버리는수퍼우먼.
"당신들은마누라가해주는밥먹으며공부하는데,뭐가그렇게힘들다구그래?"
남편은내클라스남자동기들을만나면그렇게말하곤했는데,자신에게하는말이었을꺼다.
아무튼,
더이상버틸힘이없을것같았을때,졸업을했다.
아이들이제일기뻐했다.
그들은아빠박수없이연주회를해야했고,
아빠응원없이운동경기를해야했으며,
아빠없이시상대에올라상을받아야했다.
아빠없이영화구경을가고,아빠없이맥도날드에가고,아빠없이식스플래그에갔다.
10년동안,
아빠졸업식을기다리며,박사학위를기다리며,그들은허전한마음을잘참아주었다.
그아이들이이제"어메이징그레이스"를연주하니그감동이얼마나클것인가…
내가졸업한학교는졸업식에배우자에게Ph.T라는학위를주었는데,그것은남편이나아내가공부잘마칠수
있도록밀어주어수고했다는뜻의"PushingHer(Him)Through"학위다.그야말로명예학위인것이다.
실제로남편은내졸업식날,이런학위증명서(?)를내가다닌학교에서받았었다.
나는우리아이들에게도이걸주고싶었다.
얘들아,정말고맙다.
이번성탄절에도두딸이내려와크리스마스트리를만들고그밑에선물을잔뜩쌓아놓았는데,
성탄절날아침에그선물을풀며얼마나즐거웠는지…
박사아빠는자기가요즘뭘하고있는지신이나서얘기하고,딸들은그런아빠를쳐다보며웃는다.
우리부부는점점아이처럼되어가고,
다자란자식들은그런우리를챙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