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여자들과바이블스터디를할때였다.
가을어느날이었는데
나는문득그들과시(詩)한편을나누고싶어졌다.
그건일종의모험인것이,
성경공부는성경말씀만공부하는시간이라는인식때문에
세상사람의시를읽는다는것은눈치가보이는일이었기때문이다.
예쁜폰트로타이핑을해서열장을카피했다.
"우리,오늘은가을에관한시를한번감상해봅시다."
일순긴장감이감돌았다.
詩는겁나는거…
천천히읽기시작했다.
"버려야할것이
무엇인지를아는순간부터
나무는가장아름답게불탄다"
"어머…너~어~무좋아요."
눈물을글썽이며갑자기에스터가말했다.
에스터.
항상어수선한여자.
징징짜다가도내가왜이래?하는여자.
16살어린딸이아이를배고,낳고,기르는것을함께한여자.
마냥우왕좌왕하는여자…
여덟명쯤되는여자들중에서오직에스터만이눈물을흘렸다.
"제삶의이유였던것
제몸의전부였던것
아낌없이버리기로결심하면서
나무는생의절정에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키워온
그러나이제는무거워진
제몸하나씩내려놓으면서
가장황홀한빛깔로
우리도물이드는날"
"이시에서나무가버려야할것이뭐라고생각하세요?"
나는국어선생님처럼질문을던졌다.
"돈,명예,욕심,프라이드…그런거?"
그들은교회학교학생처럼대답했다.
"그런거버리라고하는것,나도알아요!"
갑자기에스터가소리쳤다.
"그런데도대체방하착이무슨뜻이예요?"
"나무가잎사귀를다떨궈버리는모습…"
에스터는,
아무도묻지않았던’放下着’이라는단어를물었다.
40대초반의그녀가궁금했던것,방하착,다내려놓음.
사실그땐,
법정스님도,무소유라는말도,그리떠들썩하게알려지지않았던시절이라서
나도’다내려놓는다’는말을몰랐었다.그래서,
"예수님이자기몸을희생해서우리를살리신것과비슷하지요."
그후로나는그교회를나왔고,
일년에한번정도한국가게나교민들행사장에서에스터를만났는데
그때마다그녀는나를반기며
"그때성경공부를잊을수가없어요.
그시있잖아요,자기온몸을다불태워버린다는,그세글자뭐지요?"
그녀를만난날은
도종환의시집을열어보곤했는데
어느해인가그시집이없어져버렸다.
‘단풍드는날’과그’방하착’이라는단어도함께잊혀지고말았다.
그리고나서나는병이들어
방하착해야할상황에직면하게되었다.
放下着
뭘버린다고
붉게타는것도아니고,
생의절정에섰다고할수도없었다.
무거워진몸을하나씩내려놓아도전혀황홀하지않았다.
황홀하기는커녕
주위의안타까운시선과고통만있었다.
방하착은고통이었다.
"수고하고무거운짐진자들아,다내게로오라,내가너희를쉬게하리라."
(마태복음11장28절)
에스터의손녀는초등학교에들어갔고
미혼모였던딸은간호대학엘다닌다.
그녀는더이상눈물을지물거리지않고대신
남을어루만져준다.
방하착
단풍드는날,그래서나는에스터를생각한다.
그녀는희생의의미를알았는지?
소유와집착을내려놓으라는’방하착’이
나혼자방하착,하고끝낼일이아니라는걸깨달았는지?
예수님도
제자들을세상으로내보내시며방하착을말씀하셨다.
"두벌옷과전대,그리고지팡이하나만가지고나서라"(마태복음10장9절)
그리고자신도방하착하며벌거벗겨진채로세상을떠났다.
"내가진실로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
한알의밀이땅에떨어져죽지아니하면한알그대로있고
죽으면많은열매를맺느니라."(요한복음12장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