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고기 잔치

양을 잡아 토막을 쳐서 삶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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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다 식탁을 차렸는데, 식탁이 따로 없었다.

그냥 방 바닥에 음식을 놓으면 식탁인거다.

오래 전  유목민 방식,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식탁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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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한 20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벽 따라 기다란 방석을 사방으로 깔아놓고

그 가운데 빈 자리에 식탁보를 깔았다.

피크닉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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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와 비슷하네?

사실, 내 아파트에도 소파는 없고 기다란 방석만 몇개 있는데,

그게 바로 키르기즈 전통 양식인 걸 오늘에야 알았다.

우리가 처음 이 아파트에 들어 올 때 집 주인이

‘좁은 거실에 소파를 놔야겠어요?’ 하기에

‘아니요, 필요 없을 것 깉네요’ 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몇 달 만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 갈 것이고,

어렸을 적에는 소파라는 것 없이도 살아봤기에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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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바닥에 전통빵인 난이 툭툭 던져졌다.

건강식과 위생을 끔찍이도 챙기는 한국사람들이

그 던져진 빵을 맛있게 뜯어먹는다. 물론 나도 그렇게 먹었다.

과일이 던져지고, 사탕과 과자도 던져졌다.

중국산 후지 사과라는데 (여기도 중국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과 껍데기를 잘 씻었는지 좀 의심스러웠지만 맛있어서 한 개나 먹었다.

밖에서 피비린내를 맡고 사지가 찢겨져 나가는 양을 보고와서 그런지

까짓 더러운 사과 껍데기 쯤이야, 하며 대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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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편처럼 생긴 음식이 나왔다. 한국의 족편이랑 맛이 비슷.

뜨거운 차와 커피를 마셨다.

이곳은 어디에 가나 차 대접을 하고, 차도 맛있다.

누군가 양고기가 다 익으려면 한시간 걸린다고 하니,

두시간 걸릴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두시간 넘게 걸렸다.

그 동안 빵을 계속 뜯어먹었더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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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전통악기인 코므즈를 연주하는 노인이 와서

자신이 작곡했다는 ‘가슴 속에 흐르는 빗물’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키르기즈 노래는 우리 뽕짝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 노인은 방송에도 자주 나갔던 유명 가수였다는데, 지금은 75세.

그래도 목소리는 쩡쩡하다.

“돈으로도 못가요, ㅎㄴㄴ나라…”라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전에는 불렀던 모양.

암에 걸린 아내가 기운없이 앉아있었다.

병원에서 암 진단은 받았지만 별 치료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 기적을 바라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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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국물을 먹어보라고 한 컵씩 떠다 주었는데, 짰다.

양고기에 간이 배어야하니까 소금을 많이 넣어서 그렇다는데

짜서 그런지 누린내는 안 났는데, 이 진국을  꼭 마시라 하고

그 다음 솥에 뜨거운 물을 더 붓고 좀 더 끓인 다음

고기는 건지고 국수를 넣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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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꼬리기름 샌드위치.

구약에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꼬리기름(엉덩이 부분의).

내장과 함께 태우라고 했는데, 이들은 꼬리기름도 먹고 간도 먹는다.

현지인들은 꼬리기름을 최상의 부분으로 친다고.

두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고기가 들어왔다.

삶은 고기를 뼈채로 가져왔다. 이름하여 ‘베스파르막’

베스파르막이란 다섯 손가락이라는 뜻.

카작에서 먹은 말고기 요리도 베스파르막이었는데

푸욱 삶은 고기는 다섯 손가락으로 뜯어 먹어야 제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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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람들이 묻기를,

양 잡는 걸 보고 나서도 그 고기를 먹게 되더냐고?

먹게 되더라. 아무 생각없이 갈비도 뜯었지…

누군가 김치를 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치보다

새콤달콤한 당근 샐러드가 양고기에 더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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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먹고 나서는 찬물을 마시지 말라고 해서

모두들 뜨끈한 차를 한 잔 더 마셨다.

전에 두바이에 살 때, 양고기 먹고 나서 마시던 달콤한 홍차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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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자리를 대강 치워주고

양을 잡은 아저씨께 감사 인사하고 주인 아주머니께 박수 쳐주고

그 집을 나왔다.

아침 열시에 갔는데 오후 세시에 나왔다.

10 Comments

  1. enjel02

    2016년 4월 2일 at 3:39 오전

    벤조 님 반가워요 이곳에서 만나니 새롭네요
    멀고 먼 알라배마에서 그들과 같이 체험하고 지내신
    부활절 특별한 추억이 되셨겠어요

    그 모습 이렇게 보여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시고 또 자주 소식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벤조

      2016년 4월 2일 at 2:51 오후

      엔젤님, 제가 알라바마에서 키르기즈로 와서 살고있고,
      블로그도 위블과 네이버를 왔다갔다해서 헛갈리시지요?
      아이구, 저도 헛갈리고 고됩니다. ㅎㅎㅎ
      그래도 이렇게 친구들 만나는 재미가 좋습니다.

      • enjel02

        2016년 4월 2일 at 8:36 오후

        벤조 님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제대로 알아듣고
        다음엔 헷갈리지 않을지는 자신이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왔다 갔다 그래도 알던 사람이 더 반갑고 좋아서요

  2. 데레사

    2016년 4월 2일 at 4:08 오전

    낯선 이야기를 벤조님 글솜씨에 빠져들면서
    읽었습니다.
    나는 양고기를 먹어본적이 없어서 맛은
    모르겠지만 뜨끈뜨끈 막 삶은거라
    먹음직 했을것 같아요.

    벤조님
    그곳 소식,많이 올려주세요.

    • 벤조

      2016년 4월 2일 at 3:42 오후

      마당에 가마솥 걸어놓고 삶는 잔치 분위기.
      사실은 손으로 반죽한 국수를 넣는다는데, 라면 사리를 넣었더라구요.
      그래서 좀 아쉬웠습니다만, 좋은 경험이었죠.

  3. 김진우

    2016년 4월 2일 at 5:42 오전

    글이 내 미각을 자극하여 입체적으로 현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타지에서 몸 건강 하세요.

    • 벤조

      2016년 4월 2일 at 3:37 오후

      네, 고맙습니다.
      댓글이 왜 이렇게 포스팅에 안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 벤조

        2016년 4월 4일 at 2:10 오후

        참, 김진우님 포스트에는 왜 댓글란을 안 열어놓으셨는지요?

  4. 산고수장

    2016년 4월 3일 at 8:32 오전

    글을 읽으면서 중국 하얼빈어느촌가
    집안에 소와 닭 돼지 와 함께 살도록 된 집에서
    돼지를 잡았다고 하면서 솥에 끓이고 내장들을
    함께넣어 삶은 국물과 고기들을 먹었던 생각이났습니다.

    추운 지방이니 그렇게 생명체 모두가 한집에서 아들며느리
    손자들과 행복하게 살고있는 가정에 초대되어서
    행복하게 사는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세대는 말씀과같이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갈 큰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많은 모습들 보시고 잘 다녀오세요.

    • 벤조

      2016년 4월 4일 at 2:12 오후

      옛말에 가난한 집이 우애가 더 많다고 했잖아요.
      생명체가 모두 한 집에…라는 표현이 아주 재미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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