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을 떠나며

별을 보러 산에 갔습니다.

곧 비쉬켁을 떠나는데, 그 동안 한번도 별이 총총한 하늘을 못 봤다고 했더니

소장님 내외가 비쉬켁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누가 거기엘 갈까 싶을 정도로 황량한 야산.

 “아마도 한인 중에 여기에 와 본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 겁니다.”

해가 지면 그런 야산에서 더 별이 잘 보인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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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 이란 나라는 참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산천이 수려하고 사람들도 다정합니다.

다른 ‘스탄’ 나라들을 다니다 보면

빨리 비쉬켁으로 돌아오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왔지만 한국말이 영어보다 편한고로

한인들과 많이 어울렸습니다.

이곳에 사는 한인들 참 본받을 만 합니다.

거들먹거리는 사람 하나도 못봤습니다. 하긴,

편한 조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사는데

특별한 사명감과 이유가 있으니 거들먹 거리는게 어울리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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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며 삽니다.

“만났을 때 헤어짐을 기약하는…” 싯귀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스탄’ 나라들의 특징이 외국인을 아무때나 자기 마음대로 쫒아내는 겁니다.

비자를 2-6개월 마다 연장해야 합니다.

그러니 삶이 항상 ‘임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오래오래 살 것처럼 현지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사귀고 정 붙이며 삽니다.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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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키르기스 사람도 못 사귀고, 언어도 못 배우고, 그냥

왔다갔다 하다가 아홉달이 후딱 지나가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 인생 같습니다.

미국에 가서 뭘 보고 느꼈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눈 덮인 천산과 들꽃 만발한 들판을 보고 왔다고 할까요?

현지인처럼 사느라 애썼다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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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품 가공하는 키르기즈 할머니                               거리의 악사 할아버지

네.

지은지 40년 넘은 낡은 13평 아파트에서 살긴 했지요.

낡긴 했지만 난방과 더운물이 나오고 계단 청소를 깨끗이 해줍니다.

파이프가 너무 낡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긴 하지만요.

층간 소음이요? 옆집에서 아기가 밤새도록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마치 엄마가 된 것처럼 안타까이 잠을 설치기도 했지요.

이 모든 것이 참을 만 한 것은, 아니 어떤때는 다정하기도 한 것은

어렸을 적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지금처럼 멋지게 산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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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니버스를 타니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아메리칸 브랜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선글래스를 껴도

할머니 인줄 금방 알아보는게 섭섭했습니다.

이 나라 국내선 비행기를 탔는데 놀라운 것은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애기엄마들 입니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아이 손 잡고 다니는 엄마들도 많았습니다.

출산이 국력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사실 부러웠습니다.

20년 후를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밝은 미래가 보입니다.

그때까지 살아서 키르기즈의 발전 된 모습을 봐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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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재래 시장에서 온갖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싸게 사 먹다가

미국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겁이납니다.

그 비싼 물가.

여기서 처럼 검약하고 살아도 마음이 편할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밥 먹는데 뭐 남의 눈치 볼 것 있냐고 하지만, 그래도 그게 잘 안됩니다.

간소하게 사는 연습 좀 했는데 잘 적응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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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쌀 때 제일 편한 방법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는 것이겠지요.

그걸 알면서도 이웃에게 줄 선물과 꿀을 사고,

한국에서 소리님이 가져다 준 멸치와 미역도 싸고

그 동안 입던 옷들도 못 버리고 가방에 넣었다 뺏다 합니다.

집에 가서 새것 사 입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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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키르기즈에서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떠나기가 조금 아쉽습니다.

그러나 떠나야 합니다.

좀 아쉬운 듯 할 때, 가방을 가볍게 해서 떠나면 유쾌한 여행이 되겠지요?

5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6월 15일 at 6:16 오전

    어느새 떠나는 날이 되었군요.
    세월 참 빠릅니다.
    덕분에 낯선나라 구경 잘 했습니다.

    편히 돌아가시길 ~~

    • 벤조

      2016년 6월 15일 at 8:40 오후

      네, 세월 참 빠르다니까요.
      이젠 ‘스탄’ 나라가 아주 낮설지는 않지요?
      우리랑 꼭 같이 생겼답니다. ㅎㅎ
      저희가 떠나는 날이 데레사님 입원하시는 날 인것 같은데
      수술 잘 되고 회복도 잘 되시길 기도합니다. 모스크바 들렀다 갑니다.

  2. 김진우

    2016년 6월 15일 at 1:03 오후

    떠날 즈음에는 늘 아쉬움과 서운함이 있지요.
    유목민들에겐 그게 덜 하답니다.

    교수님 내외분께서
    그곳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별들을 제대로 보려면
    타운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불빛 때문이지요.
    저처럼 산중에서 살면 그게 가능 합니다.

    이곳은 오늘 95도까지 올라 갔습니다.
    알라바마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갑자기 더워진 환경이나 그간의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 수도 있으니 건강에 유의 하세요.

    편안한 귀로가 되기를 빕니다.

    • 벤조

      2016년 6월 15일 at 8:37 오후

      아, 그렇군요. 유목민… 집(유르뜨)까지 접어 옮기는 그들이니까 그래야겠죠.
      그러나 떠나는 것은 항상 두렵고 서운해요.
      어디서 다시 뵐까요? 미국? 한국?

  3. 산고수장

    2016년 6월 17일 at 8:46 오전

    이제 가시는군요.
    그래요 떠나는것은 그래도 미련이
    남습니다.
    제가 중국을 떠날때심정을 말씀해
    주는것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사 보따리에 넣었다가 뺏다가를 수없이하고…ㅎ
    혹시 한국에 오시거던 꼭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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