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성당은내어릴적의아스라한추억으로기억된다.
내가네살적부터성당의성모유치원엘다녔다.
우리집은가톨릭이아니고오히려불교쪽이었는데(사월초파일이면반드시연화사와내가살았던동네뒷산의보리암에등불을달았으니까)집안장손인나는성당의유치원에다녔었다.
유치원은본당앞마당한켠연화사쪽에있었고2층건물이었던것으로생각된다.
지금도내앨범에있는사진을보면,6.25동란이발발하기한달전인1950년5월에찍은졸업사진이있다.
그때사진을보면,성당앞계단에앉아찍었는데,성모유치원졸업생은40여명되었다.
내기억으로(당시다설살이었음)성당’당까수녀님'(후에들은이야기로재무담당수녀님이었다고함)이주셨던’탱자음료수’가기억난다.
6.25동란이터지고나는부모님과함께도동모래사장에서잠시피란생활을했었는데,진주남강다리가떨어지던날(정확한날짜는기억못함)진주옥봉성당의뽀죽탑도같이날아간것으로기억된다.
뾰죽탑은한동안보수되지못했고몇년후에야십자가탑이세워졌던걸로생각난다.
지금도생각나는것은사람이죽어장례를치르는데,상여가공동묘지가있었던선학재로가려면내가살던동네를거쳐야했고신부님이라틴어로큰소리를내면신자들이따라하며지나가던광경이떠오른다.
1952년내가봉래국민학교에입학했고,내가살았던옥봉남동에서통학할때는옥봉성당앞을항상지나다녀야만했다.
내기억으로성당입구에집이두,세채있었는데성당에서모두사들였고,그중한채는꽤오랫동안안팔고살고있었던것으로기억된다.
당시성당마당에꽤큰호두나무가두그룬가있었던것으로생각난다.
옥봉성당과관련된추억두토막.
하나는,내가1974년상경했다가1981년직장관계로다시진주에돌아와서3년여살았는데그때독실한가톨릭신자였던김영도박사를만난일이다.
당시김박사는’영도의원’을제일교회앞에서개원하고있었는데,어떤분의주선으로진주극장부근음식점에서김박사와함께기분좋은저녁식사를나누었던기억이있다.그때김박사는벌써휴대폰(삐삐전호기)를호주머니뒤에차고다녔고,다양한취미활동을즐기시던’첨단인’이었다.
그분은한때옥봉성당의성가대를지휘하셨던걸로알고있다.
또한분은이태규한의원원장님이셨다.
이원장님은옥봉성당에서오랜기간봉사하시다가봉곡성당이세워질때그곳으로옮겨많은활동을하셨다.원장님은꼭소주에다가오란씨를섞어드셨는데,나더러천주교로개종하라고몇번씩이나권유하시기도했다.
이밖에도진주신협이사장을했던김정식씨,진주신협과진주장학신협,천전신협전무를지낸김덕기씨도잊을수없는분들이다.
두번째는옥봉성당에서의추억이다.
1984년으로기억하는데,그날이주일이었다.누군가를만나기위해옥봉성당을찾았다.그런데대낮부터성당사무실에서몇분들이모여소줏잔을기울이고있었다.
잘아는모씨에게"이렇게성당사무실에서술을먹으면신부님이야단치시지않느냐"고물었다.
그분왈"신부님이소주한박스를사주시면서나이많은사람들이낯이뻘개가지고동네구멍가게돌아다니지말고성당에서한잔마시고집으로바로가라고했다"는것이다.
순간내머리가띵~했다.참으로멋쟁이신부님이시구나.
지금은하늘나라로가신몇몇분들을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