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의 먹거리들

1950년대는내가초등학교와중학교를다녔을때다.

그때는아침,저녁밥을먹으면괜찮은집이었고,하루한끼를먹거나하루,이틀물만먹고지나가는집들도간혹있었다.초등학교3학년때부터도시락을쌌는데,점심시간이면도시락을싸오지못해자리를뜨는애들도꽤되었다.

봄이면’춘궁기’란말이떠돌았고,’굶어죽었다’는말들도심심찮게들려왔다.교실한켠에는미국에서원조받은드럼통크기의분유통이있어서애들이수시로우유가루를종이에떠서깔대기모양을만들어입에털어넣기도했다.그러다가사래가들어캑캑거리던모습이지금도눈에선하다.

끼니걱정을할때이니사치스럽게무슨먹거리타령이냐고하겠지만,그때도분명군것질꺼리는있었다.

내가다닌봉래초등학교는학교앞의도랑위작은다리를거쳐상당한높이의계단을올라가야운동장에들어설수있었다.

아침등교시간이면다리못미쳐길가에장사꾼들이진을치고있었다.실한여러뿌리의칡을갖다놓고맛보기로선심을쓰는칡장사도있었고,오징어나고구마등을기름에튀겨고소한냄새를풍기는포장마차도있었다.여기에풀빵장사,호떡장사,사탕을녹여철판에쭉쏟은후오뚜기식의뽑기를찍어내던장사까지가히작은시장을방불케했다.그가운데나를괴롭힌(?)것은오징어튀김과뽑기였다.

세끼먹기도힘들었지만집에서도먹을것은있었다.

제일많이먹었던게고구마였다.마침집에서도동,초전에밭과과수원이있어서가을이면특히고구마를몇가마씩가져왔다.그래서가을,겨울은고구마를생으로먹거나삶아서원없이먹을수있었다.

그래서요즘은고구마를쳐다도보지않는다.

고구마가없는봄,여름은집마당에있는감나무두그루에서떨어지는눈깔사탕만한풋감을소금물에담가익혀먹기도하고,무화과나무가한그루있어서요기꺼리를제공하기도했다.

평상시에는당시흔했던우유가루를도시락뚜껑에쪄먹는일종의우유과자를자주먹었는데,딱딱한과자를깨무느라이빨이상당한고생을했으리라.

그때는대구(생선)가흔해서가을이면몇’학꼬’씩사서내장을들어내고’통대구’혹은납짝하게펼쳐’멜짝’으로말려먹기도했다.내장은젓갈을담고,고니와알은국을끓여먹었다.

겨울철출출할때통대구한마리를뜯어초고추장이나우리집비장의양념장에찍어먹으면7,8명의가족이든든하게먹을만했다.

덤으로얼음이버석버석한동치미(진주서는’동김치’라불렀다)를몇뿌리건져다가긴겨울밤의허기를달래기도했다.

여담한마디.

50년대에는8.15광복절이되면집집마다시에서선물을돌렸다.미국에서원조로받은’씨레이숀’이었다.

포장을풀면,그때는구경하기힘든봉지커피,잼,치즈,통조림,과자등이나와어린가슴을부풀게했다.

그가운데감자와콩을으깨어넣은녹색깡통의쇠고기통조림이제일맛있었다.

그맛을지금도잊을수가없어남대문시장에가서미제쇠고기통조림을사먹었는데,전혀그때그맛이나질않는것이었다.

그통조림이아니었거나아니면내입이고급이되어선진몰라도아쉬움을금할길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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