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선생을 생각하며

오늘조선일보에남인수선생서거50주기를맞아다양한행사들이벌어질것이란기사가실렸다.

문화체육관광부가각종자료들을모아선생의진면목을볼수있는뜻깊은자리를마련하고,동호회와기념사업회는전집출반과기념행사를준비하고있다는소식이다.

내가고2때였던1962년6월남인수선생이폐병으로타계했다는신문기사를읽었던기억이있다.

선생은작게는나의모교진주봉래초교의선배이고,크게는온국민이사랑했던’국민가수’였다.

봉래다닐때큰따님이같은학년이었는데,그때만해도남,녀를따로반편성해서전교조회시간이나간혹체육시간에볼수가있었다.

따님은남선생의본명이’강문수’였으니강00로기억하고있다.키가커서언제나맨뒤에섰고,얼굴이갸름한달걀형이었다.

선생의자택은옥봉성당에서나오면좌측으로빠지는큰길에서50미터가채안되는수정북동에있었다.

단층양옥이었는데당시엔보기어려운아담하고깔끔한집이었다.

이기회에하고싶은말이있다.

한동안선생을친일파라고떠들어대던’얼치기민족주의자’들에게묻고싶다.당신들은’애수의소야곡’이나’이별의부산정거장’은안불렀는지.(이들은이당김은호선생이그린논개여사영정도친일파가그렸다고철거시키는야만적행위를했다).

덤으로,홍난파선생을역시친일파로몰아수원의’난파축제’를폐지시킨얼치기들역시’고향의봄’은안불렀으리라고믿고싶다.만일불렀다면사람도아니고.

한마디만더-.

이런축제를구경만하고있는진주시청구성원들에게묻고싶다.

당신들은남인수선생을위해뭘했냐고-.

다른지자체는없는것도만들어서홍보하는데,있는것도못챙기는꼴이라니-.

이봉조,이재호선생등좋은인물들을두고도못본체하는당신들의행태가정말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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