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여름나기

7월접어들어본격적인무더위가왔다.

장마철이라고는하나연일31도를기록하고있다.

일부지방에선열대야현상까지일어났다고하니앞으로최소두달이상은불볕더위로고생께나할것같다.

하기사,요즘은더우면에어컨이라도켜고시원한얼음물이라도마시면어지간한더위쯤이겨낼수있다.

한술더떠찬물로샤워라도하든가-.

내어릴적50년대는여름나기가무척힘들었다.

무더위가와도우물물로등목을하거나달랑부채하나로견뎌야했으니까.

그부채도식구가많은집은쉽사리차례가돌아오지않았다.

그래도어른들은한결같이"없는놈살기는여름이최고"라고말했다.

여름엔아무리더워도돈들이지않고물뒤집어쓰면되지만,겨울에난방을하려면최소한장작이라도있어야하고옷한벌이라도더사입어야하니까돈이더든다는얘기다.

그때만해도환경오염이덜된탓인지한낮의불볕더위만피하면아침,저녁은한결시원했다.

더위가한풀꺾이고땅거미가지면가족들은이른저녁밥을먹고마당에있는평상으로모여든다.

매캐한모깃불을놓고대나무평상에누우면등어리가차가와더위는싹가신다.

대신밤하늘의깨알같은별들이눈속으로쏟아져들어온다.그가운데북극성이나북두칠성도있고-.

할머니를졸라하도들어귀에딱지가앉은묵은이야기주머니라도풀라치면어머니는갓쪄낸감자나옥수수를가져온다.

아-,그때의행복감이란-.

여름을나는먹거리는별게없었다.

냉장고가없었으니시원한물을마시려면두레박과물동이를들고공동우물에가서물을길어먹는수밖에없었다.

이물로점심때는식은밥을말아먹었다.

우물물은여름엔차가왔고겨울엔따뜻해서주민들에겐보물과도같았다.

또하나,빼놓을수없는먹거리는차가운콩물에말아먹던’우무’였다.

잘게채썬우무는식감이좋았고,시원한콩물에말아한그릇먹어면한끼를대신할정도였다.

요즘은동네구멍가게에서손쉽게하드(얼음과자)를사먹을수있지만그때는아이스케키를팔고다녔다.

어깨띠를한조그만통에아이스케키를넣어"아이~스케키"하며외치고다녔는데,용돈이궁했던아이들에겐’그림의떡’이었다.

당시진주엔’청아”석빙고”밀림’아이스케키가유명했다.

아이스케키장사는중,고교생도했다.중앙로터리부근에있었던점포에학생증을맡기고물건을받아팔면한개당얼마씩이익금을주었다.

나도친구들과’알바(요즘말로)’를했는데"아이스케키"란말이목구멍에서나오질않아고생했던기억이있다.

더울때는집에서그리멀지않은남강에가서멱을감기도했다.

그때는진양호댐이건설되기전이라홍수가나면붉은황토물이무섭게흘러오곤했다.

가뜩이나남강교밑은물이깊어여름철에멱감다가물에빠져죽었다는얘기를종종듣곤했다.

60년대들어서는촉석루가개방되어한여름이면촉석루난간에앉아남강을굽어보며더위를식히곤했다.

사방이탁트인촉석루는정말시원했다.간혹바닥에앉아시조를읊던노인들을만나는재미도쏠쏠했다.

진주성지의서쪽끝에있었던서장대는조그만누각이었지만돌기둥에앉아평거들판을내려다보며더위를쫓는멋또한일품이었다.

그뿐이랴.

비오는날밀과콩을섞어볶아먹던추억의먹거리도있었다.

아,그리운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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