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살다보면많은사람들을만나게된다.
그중엔바람처럼스쳐지나가는사람이있는가하면오래도록기억에남아시시때때로생각나는사람들도있다.그래서그사람들과의지난시간들을반추해보는것도살아가는재미가운데하나다.
내가고향진주를떠나서울살이를하다가직장의명에따라1980년대초반진주,마산에서3년여살았었다.
그때참많은사람들을만났다.아마내가평생만난사람들의절반이상을그3년동안만났었다.
했던일이매일출장가서사람들을만나는일이었다보니좋은사람,궂은사람들을가리지않고만날수밖에없었다.그중엔좋은사람들도있었지만더러나쁜사람들도있었다.
그로부터30여년이흘렀지만,이젠나쁜사람들은다잊었고좋았던사람들,그리운사람들의기억만남아있다.
먼저,기억에남아있는A씨의얘기-.
그분은독실한천주교인이었다.나보다스무살정도위였는데하도마당발이라대자들도수십명에이르렀다.나와같이근무했던직원B의대부C씨가A씨의대자였을정도다.
그런데그는참술을좋아했다.그래서내직장의농촌교도원으로자원봉사했던그와술자리를자주할수밖에없었다.
그는만나면술이야기부터먼저했다.
"아요(진주사람들은상대방을부를때늘이렇게말했다.’보시오’라는말),어제주일미사디리고날이하도더버서마테오(성당’세례명’)하고둘이서성당앞에구멍가게로갔다아이가.둘이서소주한병시키갖고말뚝꼽부(맥주잔)에따릉께한잔씩나오는기라.안주는쭈쭈바하나씩물고한모금마시고쭈쭈바한번빨고-.그랬다아이가.생각보다괜찮대.카테일마시는거매이로-."
어쩌다가직원B와그의대부C씨,그리고A씨가만나면재미있는광경이벌어진다.
직원B가C씨에게"대부님…어쩌구저쩌구"하면C씨는A씨에게"대부님,이렇고저렇고"한다.그러면A씨가직원B에게"과장님…어쩌구저쩌구"한다.이를본C씨는A씨에게"대부님,서열로치면손자뻘인데과장님은무슨과장님입니까.어이,B과장,안그렇나"하고호령이다.
한번은초겨울인데A씨가’와사증’으로입이비뚤어지는사고가났다.
그의집이진주향교부근이었는데,퇴근후인근조합의이사장과문병을갔다.자리에누워있던그는부인을닦달하여안주를장만케한후한되짜리병에담가두었던모과주를내왔다.
그는마시지도못하면서그의말마따나말뚝꼽부두개를내와서쉴새없이권하는바람에나와이사장은인사불성이되어집으로갈수밖에없었다.
그는레지오마리애(신심단체)간부를지냈고,매주수요일에모이는주회(週會)에도빠짐없이참석했다.그렇지만그의말처럼주회는주회(酒會)로끝나곤했다.
또기억나는사람은남해물건리은점의D이사장이다.
내가발령받아진주로간지한달이채안되는81년9월하순이었다.
E조합에일이있어전날상주해수욕장인근에서자고아침일찍버스를탔다.그날따라가을을재촉하는비가추적추적내리고있었다.
미조가는버스를타고송정을지나초전고갯마루에서물건리로가는버스로갈아탔다.오른쪽에펼쳐진한려수도의푸른바다는비가오는데도푸르름을더하고있었다.멀리보이는콩섬,팥섬도-.
물건리에서내려길을물으려고보니앞가게에서노인세분이화투를치고있었다.
그쪽으로다가가E조합을물으니치던화투를접고따라오란다.뒤따라가니가정집인데그곳이조합이란다.당시만해도농어촌의규모가작은조합은직원도두지않고조합임원집에서업무를보는곳이더러있었다.
알고보니세노인은이사장D씨를비롯부이사장과총무이사였다.
업무를마치고나니점심때였다.부이사장이일어서더니"오늘손님이온다고해서아침에뱃머리에나갔다가생선을얻어온게있다’며나갔다.
얼마후상을차려오는데뭉턱뭉턱썬생선회한접시와막된장한보시기,그리고무학소주됫병하나였다.잔을내오는데맥주잔이었다.
깜짝놀란나는아랑곳없이D이사장은맥주잔에소주를가뜩따르더니"오늘비가오는데도우리조합에와서수고하신아무개씨를환영한다"는인삿말을하고는건배를외쳤다.하도어이가없어도대체이분들은술을어떻게먹는가하고마시는체하며봤더니술잔을입에대곤물마시듯마셔버린다.세분모두-.
순간생각했다.
이세분이환갑을넘긴분들이고,나는아직30대중반인데젊은사람이이래서는안되겠다싶었다.
한잔을가까스로비웠는데잔을비운세분이동시에잔을내게돌리는것이었다.
아이쿠,오늘죽었구나.오후에인근조합에들러야하는데-.
생각은잠깐이었다.젊은사람이쪼잔하게굴면처음만난이분들에게우습게보일거란생각이들었다.
주는대로마시고주는대로권했다.
소주한되가순식간에없어졌다.그런데도이상하게술은취하지않았다.
점심을먹고나니바람쏘이러바다로가잔다.
집앞이바다였고,큰정자나무가한그루있었다.가다가D이사장은멸치가공공장에들러멸치를한줌얻어오더니인근가게에서4홉들이소주한병까지가져왔다.
정자나무밑에앉으니부이사장이앞에보이는푸른섬을가리키며"저섬이두미도"라고설명했다.
4홉들이소주까지먹고버스에오르는데D이사장이지역의특산품이라며신문지에싼무언가를내출장가방에넣었다.엄청무거웠다.
무거운가방을들고다니며일을마친후남해읍여관에서가방을열었다.
신문지에싼걸열어보니수석(壽石)이었다.
그후D이사장의초청으로여름휴가때앞의A씨와함께은점을다시찾았었다.
그분의호의로며칠머무면서정치망수확어선을타고펄펄뛰는히라스(삼치)를배위에서맛보는즐거움도가졌었다.물론D이사장이진주로출장오면내가한잔샀고-.
작년11월우연히남해에들릴기회가있어30여년만에은점에들렀었다.
물어물어D이사장을찾았더니동네사람말이3년전인가돌아가셨단다.
진작찾아오지못한내가부끄러웠다.
그리운사람들.
그렇지만그들은이미이승을떠나하늘나라로갔다.
이분들말고도그리운분들이많지만다음으로미루고오늘은이만-.
두분의안식을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