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의물보라는내가진주사람임을일깨워주는듯하다.
어릴적더위를견디지못해남강물에’첨벙’뛰어들었을때,내게로달려온물보라는코가찡~하게아프도록매운물을먹이곤했다.
두손바닥으로얼굴을씻으며올려다봤던하늘.
지금도불을뿜어내는8월의태양을볼때마다나는결코진주사람이었음을잊지않았고,자랑스럽게생각했다.
거긴내꿈을잉태하고키웠던비봉산이있고,내상처를보듬으며쓰다듬어주던남강이있으니까-.
진주남강백사장은엄청넓었다.
어릴적눈대중이라실제보다부풀려보였겠지만꽤나넓었던건사실이다.
추석이면백사장에서어김없이소싸움이열렸으니그넓었음을증명하고도남을만하다.
소싸움이열릴때면백사장에둥글게울타리를쳤던기억이난다.
구경꾼들은울타리안에빙~둘러앉거나섰고,입장료를받았는지는기억에없다.
소주인들은소의목이나뿔에천조각같은걸감기도했고,예리하게손질한뿔주위에는붉은머큐롬(‘아까징끼’라고했다)을잔뜩발라상대방에게겁을주는듯했다.
재미있는건소에게술을먹이는것이었다.
큰통에다막걸리를가득부어마시게했다.소들은걸신들린듯잘마셨다.
소싸움의진행방식은요즘과같았다.
대개소주인이주위에서소이름을부르며흥을돋우었고,소들은뿔을맞부딪치며상대를밀어붙였다.
간혹패배한소가꼬리를내리고관중석을향해돌진할때도있었다.
그럴때면관중석은아수라장이되었고소에차이거나밟혀부상을입는사람도있었다.
그게60여년전이니진주는’소싸움의진원지’임이틀림없다.
그런대도그명성을타지역에빼앗겼으니참으로안타까운심정이다.
또하나,남강백사장의추억으로는씨름선수들을들수있다.
여름날오후쯤이면백사장에는씨름선수들이모여연습을하거나편을갈라시합을하기도했다.
당시진주씨름계의대부는’양점배’혹은’양장군’이라부르는분이었다.
체격이한마디로육중했고,배는만삭의여인네보다더불렀다.
내가알기로예로부터진주는’씨름의고장’이었다.
그래서명절이면큰상을걸고씨름대회가열렸고,진주사람들은씨름을좋아했다.
지금은알수없지만70년대만해도진주상고에씨름부가있어씨름의전통을이어갔던걸로안다.
씨름선수들이갖가지손재주로상대방을넘어뜨리는연습을하거나,연습이끝난후남강에서몸을씼고나와근육질의몸자랑을하는모습은장관이었다.
이젠진주남강어디서도그런모습을다시는볼수없으리라.
그런추억들을가슴에묻고남강물은오늘도변함없이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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