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가 생각나는 밤

시인청마유치환이생각나는밤입니다.

가슴적시는노래[詩]들을선물하고시인은표표히우리곁을떠났습니다.

그래서오늘처럼서늘한바람이불어오는가을밤이면더생각나는지도모릅니다.

시인의따스한미소가-.

의학박사이기도한허만하시인은산문집’청마풍경’에서’노래하며퇴장한시인’청마를이렇게회상하고있습니다.

<1980년2월13일은청마의십삼주기가되는날이다.

김규태에의하면청마는이세상을춤을추면서갔다고한다.

그의글은다음과같다.

콧노래를부르며어깨춤을추다간청마의마지막모습을본이는아주드물것이다.

칠년전의2월13일.몹시추운날씨였다.

광복동의한길목에자리잡은선술집에서이날그는분명잔을들고있었고콧노래를부르며진한잿빛두루마기를입고있었고그두루마기의자락이눈에얼른띄지않는선율로흔들리고있었다.

그는이선술집을일행에앞서귀가길에나섰고그길로횡사(橫死)한것이다.

난세(亂世)의기나긴겨울을저항하며살아가던한위대한시인의영원한퇴장장면이었다.

지금도이때의얘기를들려주면듣는이는과연청마가콧노래를부르며춤을추며이승을떠났을까의아해하는눈치들이다…(부산일보,1974년2월13일)

이글은청마시비(詩碑)의제막식에맞추어쓴것으로아깝게도청마의마지막모습을그린대목은이것으로끝나버리고있다.이글의과묵성이우리를더욱안타깝게한다.

청마는그날(1967년2월13일)새벽일찍집을떠났다.그는부산남여상의교장으로있었고그날이마침후기입학시험날이었던것이다.

오후네시쯤집으로그의전화가걸려왔다.흔한일이아니었다.

전화를받은부인권여사에게그는"어쩐지오늘은집에일찍들어가고싶다"는이야기를했다.

권여사는"옆에서누가전화를듣고있느냐"고물었다.그러자청마의대답은"모두시험장에들어가고혼자교장실에앉아있다"는것이었으며계속"어쩐지집에가고싶다.목욕물을준비해두라"는것이었다.

이전화도놓은지얼마안되는것으로갓한달치요금을낼무렵의일이었다.

이통화가청마와그의아내의마지막교신이었다.

그런데청마가집으로바로가지못한것은예총(藝總)관계모임때문이었다.

그날모임은공식적인행사는아니었다.그는이런감투(?)때문에평소에도늘마음이편치않았다.

모란다방을나온일행은지금부산데파트자리에있던시장안의짬보집이라불리던선술집을돌아다시에덴다방옆자리에있던목로집에들렀던것이다.

그는이무렵고혈압때문에금주를하고있어서약간의소주를마신뒤내내사이다를마셨다.

모두들돈이없었다.청마의지갑안에있던삼백원으로술값을치렀다.

소설가윤정규는그를남포동파출소옆까지전송했다.

때마침그무렵유행했던합승이왔다.합승값은이십원이었다.

청마는그뒤에오는택시를버리고합승을탔다.그러고는그를아는사람들의마지막시야에서사라져갔다.

주인이없는청마집전화벨이다시울린것을그의부인은밤아홉시삼십분쯤의일로기억하고있다.

학교에서온그연락은청마선생이대학병원응급실에계시니빨리가보라는것이었다.그때권여사는고혈압증세가악화된것으로생각했다.

그러나청마는얼마전좌천동도로에서길을건너다(지금봉생신경외과앞의대로다)명신여객소속버스84호에치여노상에쓰러졌던것이다.

조순이대학병원으로달려갔을때청마는영안실에누워있었다.그얼굴은환하게밝았다.

바른쪽얼굴에약간의상처가있었을뿐잠들어있는시인의모습그대로였다.

청마가차고있던회중시계는그대로이승의시간을계산하고있었다.그러나청마는이미시간의굴레를벗어나있었다.그의얼굴의조용한광휘가그것을말하고있지않은가?

깨진유리창으로는늦겨울찬바람이드나들고있었다.

조순은소주를마시면서밤을새웠고권여사는내내울었다.

청마는언젠가’죽음도삶의한양식(樣式)!’이라고말했다.(시’단장40′)

그는또어떤편지에서"내가오늘있는것은오직죽음에대한수련이요준비뿐인것입니다"고말했다.

이것은파스칼이나키에르케고르의사상의축이되어있는메멘토모리(죽음을기억하라)라는기조음과동일하다.

이것은하이데거의철학에도계승되어있다.

청마는늘죽음을바라보며살았다.그리고죽음의이쪽에있으면서도죽음과친했다.

그것은그만치목숨에대한그의사랑이뜨거웠다는말과도일치한다.

아무래도그는자연발생적인실존주의자였던것같다.>

청마의시두편을올립니다.

그리우면

뉘오는이없는골에는

하늘이항시호수처럼푸르러

적은새가지옮으는곁에

송화(松花)가루지고

외떨기찔레

바윗돌하나

기나긴하루해지키기제우노니

참으로마음속그리운이있으면

이런골짝호올로숨었기도즐거워

고운송화가루송화가루

손에만묻다

심상(心像)

한밤을내내도록머리맡지붕위에서퍼득이며보채어우는안타까운울음소리에나도전전히잠한잠못이루고.날이밝아일어나자창을열고내다보니.지붕위공중깃대끝햇빛에.어제저녁내리우기를잊은.울다지친아이처럼까부라져걸려있는물질아닌심상(心像)하나.

청마가더더욱생각나는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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