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선생의10주기가되었다는글을읽었다.
젊은시절’문예중앙’에실렸던’으악새우는사연’인가하는그의작품을읽고그질박한충청도사투리에저절로감탄이나왔었다.그후그글은’우리동네’란책의한부분으로묶여나오긴했지만그로인해’관촌수필’까지읽게되었다.
그의가족사는이문열의가족사보다도더참혹했다.그런그가민중작가의편에서긴했지만,언제나좌와우를포용하는듬직한행보를보였다.그래서그는많은선후배들로부터존경을받아왔던것이다.
황석영은1944년생으로기억한다.고향도아마황해도쪽이고어린시절영등포지역에서살았던걸로그의작품들에서얘기하고있다.
내가그의작품을접한건1972년으로생각된다.그해한국일보에소설’장길산’을연재했고,서두에’장산곶매’이야기를한걸로기억한다.
그소설이인연이되어우리나라노동문학의효시라는’객지(客地)’를읽었고,’삼포가는길’을비롯하여’장사의꿈’,’섬섬옥수’,’몰개월의새’,’낙타눈깔’등그의작품을닥치는대로읽었다.
월간조선에연재되었던’무기의그늘’역시열독했다.
그의소설들도이문열만큼겪었던아픔들을잘다듬어독자들의뜨거운호응을불러왔었다.
조선일보신춘문예당선작이었던’탑(塔)’은그끝부분의반전으로큰감명을주었다.
밤새도록일개분대가베트콩으로부터사수(死守)했던탑이다음날아침철수할때미군중장비에의해허무러지는아이러니-.젊은내가슴에많은여운을남긴작품이었다.
이처럼황석영의글속에는진솔한땀방울이흘렀고따뜻한사람의체온이감지되었다.
그래서한동안참좋아했었던작가였다.
그런데그의작품’황씨연대기’를읽으며웬지섬뜩함을느껐다.
이데올로기로인해파멸되어가는한사람의모습을보면서-.
아니나다를까.그좋은재주는뒷전으로돌리고그는엉뚱한사상놀음을시작했다.
올곧던그의시선은좌로옮겨졌고,그의글은한줌의격문으로변해갔다.
그러고는동키호테와같은철없는그의황당한행보.
그의나락을보며이념의끔찍함을다시한번절감했다.
그토록뜨겁게’사람’을보았고보듬었던그의혼은어디로갔을까.
이문구선생의10주기기사를읽고불현듯작가황석영이생각났다.
그의시선이다시올곧게회복되기를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