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생각나는 마산에서의 1년

이웃블로거가운데마산분이있어댓글을주고받다보니불현듯마산에서살았던시절이떠오른다.

솔직히어렸을적고향진주와마산은사이가좋질못했다.

일제강점기시절경남도청을부산에빼앗긴진주사람들은항상’도청환원’을꿈꾸었다.

그렇지만도내중심부에위치해있으면서도시규모가진주보다컸던마산은경남도청은당연히마산으로와야한다고생각했다.그러다보니진주와마산은항상으르렁거렸고,진주개천예술제에왔던마산학생이얻어맞고갔다는소문이돌기도했다.

진주학생이마산갔다가얻어맞았다는소문도자주들렸고-.

초,중학생때가끔부산에계신고모님댁엘가려면기차를타고가야만했다.

당시만해도진주-마산간은국도가비포장이었고’진동고개’라는험준한길도있어버스보다는기차가편했다.

지금도기억나는건기차를타고마산에도착하면부산으로출발할땐거꾸로가는거였다.

그래서마산은부산으로가는길목이거니하고생각했는데직장관계로마산에서1년여생활하게되었다.

그렇다고마산이나와전혀인연이없는곳은아니다.

아내의고향이마산이고성호국민학교를나왔다고했다.처형두분도마산여고를나왔다.

장인어른이우익운동을하시다가테러를당해6.25동란직전돌아가셔서무학산에묘소가있었다.

이쯤되면나와마산은대단한인연이있는곳이기도했다.

내가마산에서산것은1984년1년정도였다.

지금도생각나는것은초봄의마산풍경이다.

바다가있어선지마산은먹거리,특히해산물이지천이었다.

그때3월이면우리(나와회사직원들)는자주어둠이깔리는바닷가를찾곤했다.

지금은지명을잊었지만,우리는바닷가횟집에앉아’꼬시래기’라는생선회를참많이도먹었다.이회는진주에도있었지만유독마산에서그이름값이높았다.

오래전일이라그맛도기억나진않지만우리는꼬시래기와소주를한입가득털어넣고짙은어둠이내린밤바다를쳐다보며따스한봄바람을즐겼다.

바다너머휘황하게불이빛나는공장이삼미특수강이라고누군가가알려주었다.

이맘때쯤생각나는집은’도다리집’이라는식당이다.

당시그쪽사람들은광어보다도다리를무척좋아했다.사실맛도도다리가훨씬나았다.그래서’봄도다리,가을전어’란말까지나왔었다.

지금도그집이있는진알수없지만그집의도다리회와양념맛은그어디서도찾아볼수없는최상이었다.

양념은막장(된장과고추장의조합인듯)에다가다진땡초(청양고추),파,마늘다진것을넣고참기름을듬뿍얹은것이었다.그원리를딴곳에서도적용해봤지만그맛이잘나질않았다.

어떻든마산’도다리집’의초봄도다리맛은이젠어디서도맛볼수없는추억속의맛이되고말았다.

마산하면’불종거리’를빼놓을수가없다.

그곳의대구볼찜은가히환상적이라고말할수밖에없다.

지금도그대론진모르지만그길한밤중에커다랗게켜놓았던어느교회의십자가는지금도눈에선하다.

그리고돛섬유원지의수려한풍광도-.

30여년전의마산이야기를늘어놓다보니그시절이그리워진다.

굳이노산선생의’가고파’를들먹이지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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