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말했듯이내게고전음악을가르쳐준건영화’물망초'[勿忘草,Vergissmeinnicht]였다.
이영화를처음본게고2때인1962년7월로기억된다.
그때부산에사셨던큰고모님댁에갔다가국제극장에서이영화를봤었다.
이영화에서당시최고의테너이자주연배우였던훼루초탈리아비니의목소리에홀딱반했다.
그래서내생애최초로산음반이물망초OST였다.
그후티비로재방영된물망초를몇번보았다.
십여년지나고보니음반도없어졌고,진실로이노래에목말랐었다.
당시만해도인터넷이없던시절이어서이노래를찾을길이없었다.
서울시내웬만한중고레코드가게를뒤졌지만허사였다.
우연히베냐미노질리의CD를샀는데그속에물망초노래가있었다.
‘Nontiscordardime’의제목이붙은이노래는유명한칸소네작곡가Curtis의작품이었다.
그이름도’거룩한’질리의노래여서기대하고들었지만내겐실망만이돌아왔다.
그러다가근자에유투브의힘을빌려자료를모았더니많은물망초들이나왔다.
물론탈리아비니는말할것도없고내로라하는사람들이이노래를불렀다.
이가운데나는’다섯송이의물망초’를골랐다.
첫송이는질리(B.Gigli)의물망초다.
비로드보다더부드러운그의음색은만인의지극한사랑을받고있다.
비제의오페라’진주조개잡이’중’귀에남은그대음성’은카루소도따를수없는최고의노래다.
몇사람이부른그노래를들었지만질리와는비교가안될정도였다.
특히마스카니의’카발레리아루스티카나’중마지막죽음의결투를앞두고어머니와애틋한이별을노래하는’맘마…’로시작되는그노래,전주前奏가사시나무떨듯하는그노래는영화’대부2’에도나왔었다.
마지막절규하며흐느끼는그노래를질리말고그누구가그렇게부를수있을까.
오늘아침그노래를카루소의음성으로들었지만내귀엔단연질리였다.
그렇지만물망초는아니었다.
두번째송이는파바로티(L.Pavarotti)의물망초다.
가끔동영상으로그가부른토스티의’이상(Ideale)’을들으며한참동안감격에잠기기도한다.
손수건을쥐고떠난연인이돌아오기를빌듯이울음을누르며간절히부르는그음성.
이전에는윳시브욜링의노래를최고로알았지만파바로티를듣곤생각을바꾸었다.
가히불세출의테너라고하는그의물망초도특유의유장함과아름다움은있었지만간절함은없었다.
세번째송이는아라갈(G.Aragall)의물망초다.
스페인출신의아라갈은호세카레라스와곧잘대비된다.
카레라스가라틴계특유의외향적이고정열적인정서를나타내는데비해아라갈은절도와양식을소중히여기는연기로많은사랑을받았다.반면에역동성이부족하다는평을들었지만중음역의아름다운목소리로아마추어보다는매니아들로부터인기를얻고있다.
아라갈의물망초역시타고난미성美聲은돋보이지만무미건조한노래로그쳤다.
네번째송이는테발디(R.Tebaldi)의물망초다.
이태리태생의소프라노로2차세계대전이후마리아칼라스와쌍벽을이룬또하나의’디바’였었다.
1946년명지휘자토스카니니에게발탁되어밀라노스칼라극장의재건기념공연이출발점이었다.
그후수많은오페라공연과음반녹음으로명성을떨쳤던테발디도물망초를불렀었다.
여자라는한계때문일까.그녀의명성에맞지않게물망초는만개滿開되지못한아쉬움만남겼다.
아무래도물망초는남자의몫인것만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