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그녀를다시만난건10년하고도7개월이나지난그해초가을이었다.
그녀가느닷없이나타나사내(그때는20대청년이었지만)에게청첩장을전달한후10여년이지났으니,사내는30대중반이었고그녀는30대초반이었다.
그사이결혼했던그녀가3년이채안돼이혼했다는소식을들었다.그렇지만그것도잠시,상경했던사내가새로운사회의적응에안간힘하면서그녀는한낱과거의흔적으로지워져가고있었다.
그때사내는인사이동으로고향에내려와도단위협동조합에서근무하고있었다.
그날오전사내는볼일이있어A국민학교를방문했다.
교장을만나기위해교무실로들어섰을때몇몇교사들이둘러서서잡담을나누고있었다.문을열고사내가들어서자돌아본교사들속에낯익은그녀의얼굴이함께묻어왔다.
순간사내는멈칫했지만태연히방문목적을말하고교장을찾았다.
그러자나이지긋한한교사가사내를교장실로안내했고그녀와의일별은거기서끝났다.
사내가그녀의전화를받은것은그날퇴근무렵이었다.
송수화기를들자착가라앉은그녀의목소리가전화기너머에서들려왔다.태연을가장했지만약간떨리는듯한목소리로퇴근후만났으면했다.사내는선약이있었지만그러마고선선히약속했다.
사실따지고보면굳이만나야할이유는없었지만,지난날의아쉬움을정리해야할나름의명분은있었던것이다.
약속한다방으로갔을때그녀는이미나와있었다.
"그때청첩장주고간지가벌써10년이지났지요?"사내의생뚱한인사에그녀는대답대신살짝웃었다.
"언제A국민학교로왔어요?""2년됐어예."그녀는짧게대답했다.스피커에서는중소도시다방답지않게포레의’비가(悲歌,Elegie)’가잔잔하게흘러나왔다.
차를주문하고사내가입을열었다."내친구들도이곳국민학교에몇명있던데요."그러자그녀가피식웃으며말했다."여긴교육도시라인구절반이학생이라예.직업중에제일많은기선생일깁니더."
사내는그녀가왜그렇게빨리이혼했는지묻질않았다.그보다더궁금한,왜그렇게빨리결혼해야만했는지도묻질않았다.시덥잖은이야기만주고받는사이창밖은깜깜해졌다.
"어디가서저녁이나합시다."사내의말에그녀는잠시머뭇거렸다."식사약속이있나요?"사내가거듭묻자그녀가살짝웃으며말했다."요새도술한잔씩마십니꺼?""그럼요,술한잔할까요?"
그녀는대답대신배시시웃었다.
다방인근에사내가종종가는호젓한술집이있어그녀를안내했다.
골목안에있는가정집스타일의동동주집으로예순이넘은할머니가혼자서장사하는곳이었다.
작은방에는네모진앉은뱅이식탁하나가덜렁놓여있었다.자리에마주보고앉자마자여느때와같이반되들이주전자와안주가나왔다.이집의고정메뉴인구운피문어다리자른것과가오리무침이었다.
둘은잔을채우고서로의안녕과건강을기원하며술을마셨다.
그녀는예상보다빨리잔을비웠다.
사내는군에서제대하고그녀가친구들을불러밤새워축하주를샀던그날밤을잠시떠올렸다.
"웬술을그렇게빨리마셔요.천천히드시지."사내의말에그녀는살짝웃었다."제가술잘마시지예?접장(선생)십년만에마이(많이)늘었어예.본래접장들은술잘마신다아입니꺼."
둘은지난시절그들이했던취미활동을두서없이회고하며많은술을마셨다.사내가걱정하는내색을하면그녀는다부지게말했다."걱정마이소.폐는안끼치께예."환하게웃는그녀의볼이단풍처럼물들어있었다.
그녀가의외의행동을보인건술이네주전자째나왔을무렵이었다.
술을가져다준할머니가사내에게웬술을많이마시느냐고눈짓으로물을정도로흠뻑마신후였다.
다시구워온피문어다리를안주로한잔들이킨그녀가느닷없이식탁에두팔을괴고는머리를묻었다.사내는그녀가술이올라그런가했지만그게아니었다.
잠시후그녀는소리없이울기시작했다.가녀린그녀의어깨가파도치듯들썩였다.
술자리는그렇게끝났다.그녀가왜울었는지사내는묻질않았고,그녀도말하지않았다.
둘은술집을나왔다.초가을인데도스산한바람이불어왔다.택시를기다리는동안그녀는아무말이없었다.
"괜찮겠어요?내가집까지바래다줄까요?"그녀는대답대신괜찮다는듯사내를향해싱긋웃었다.그녀에게서짙은알코올냄새가풍겨왔다.
빈택시가오자그녀는뒷좌석에올랐다.그러고는창밖으로손을내밀어흔들었다.
사내도그녀를향해손짓을했다.그녀와의만남은그렇게끝이났다.
그것이마지막이었다.
밤하늘에는흰달이걸렸고시원한바람이불어와사내의두뺨을어루만졌다.
엘에스디
2016년 10월 21일 at 11:17 오후
그 가을 밤의 이야기 후속편이 기대된다.
바위
2016년 10월 24일 at 2:18 오후
이 교수, 언제 들어왔어?
후속 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