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고향생각이간절하다.
오곡백과가무르익고황금물결을이룬들녘을생각하면당장이라도버스터미널로달려가고싶다.
비봉산은아직도푸르런지,남강물은잘흐르는지도알고싶다.
물론비봉산도그자리에그대로있을터이고,남강도유유히잘흘러가겠지만매년10월만돌아오면괜히조바심이나고밤잠을설치기도한다.간혹잠자리에서잠들지못하고뒤척일라치면아내는한마디한다.
"또시월이돌아왔구먼…쯧쯧"
일년열두달어느날이건마찬가지겠지만유독10월이면고향이더그립다.
옥봉남동골목안집의두그루감나무엔주먹만한감들이익어가는계절이었다.그옆의무화과나무에도누렇게잘익은열매들이튼실하게달려있었고….
초전의논에서소작인들이나락섬과고구마포대를싣고오는때가또한10월이기도했다.거기에알맹이가굵은노란콩과도동에서거둬들인땅콩이며토란,우엉도실려왔었다.
할아버지께서일궈놓으신전답을결국아버님이사업하시면서날리긴했지만….
사실개천예술제는10월이아닌,음력10월3일에열렸었다.
그래서5,60년대에개천예술제(처음엔’영남예술제’였다)가열릴때면날씨가꽤쌀쌀했던걸로기억된다.
그러다가70년대에들어양력10월3일에열게된것이아닌가생각된다.
올해로63주년을맞았다고하니참으로우리나라지방문화제의효시였다.
지금은거의모든시,군들이지역특성에걸맞는문화축제를벌이다보니지역문화제로써의정체성을잃고말았다.
그렇지만개천예술제는굶주림에밀려문화가뒷전을맴돌때한줄기빛으로우리들의심성을눈떠게한문화전령사이기도했었다.
요즘들어유등축제가주인공으로올라섰고예술제는곁다리가된느낌이없지않지만,누가뭐래도진주는개천예술제를지금까지잘보존하고가꾸어왔기에문화예술도시로서우뚝섰다고해도지나친말이아닐것이다.
혹자는그렇게그리워만하질말고후딱갔다오면될것아니냐고물을지도모른다.
그렇다.요즘은길이좋아고속버스를타면세시간반만에갈수있고,비행기를이용하면한시간도안걸려사천공항에내릴수가있다.이처럼지척에고향을두고엄살부린다고꾸짖을지도모른다.
이북에고향을두고월남한분들은평생고향을그리며눈물짓는데,한달음에갈수있는고향을두고향수가어떠니하는건복에겨워서라고손가락질할지도모른다.
굳이변명이라면이북에고향을둔분들은가고싶어도못가지만,갈수있는고향을가까이두고도못간다면이건애간장이더타는것이라고말하고싶다.
노산선생의시처럼모든것뿌리치고가고싶지만일때문에훌훌털고가지못하는심정이야말해무엇하랴.
오늘오전일때문에구기동이북5도청에들렀다가나오면서멀리뵈는북한산(삼각산)비봉을찍었다.
고향을떠나온지60년이지났지만부모형제들의생사조차알지못한채설움을안고살아가는실향민들의모습을보면서하루빨리평화통일이되었으면하고염원해본다.
이10월에고향을그리는마음을달래며박목월선생이남긴’진주행晋州行’이란시를올린다.
뛰어쓰기와한자의병용도게재된그대로옮긴다.
晋州行
朴木月
주머니는가벼운것이좋다.
그만큼마음이가난한날
어렵게마련한
아아晋州行뻐스……
洛東江線百餘里는
오락가락가랑비
昌寧近處서
날이드는데
하얀
해질무렵의그길고느긋한薄暮
훈훈한바람을
산을
서서히물러나는
山川을
지치도록바라본다.
어느洞口를벗어나면
다음마을의새로운산모습
아아晋州三百里를
이렇게허전히앉아서간다.
이렇게허전히앉아서
내가허락받은人生의
後半코오스에서
이런일저런일
할일을생각해본다.
속절없는것이기에
한결착실히살아보리라.
그런생각이
왜,이처럼눈물겨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