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잘보는’한국기행’에서득량만의풍물들이소개되었다.
그가운데유독눈길을끄는것이있었으니바로조개무침과조개전이었다.
조개무침은싱싱한바지락을채소들과함께양념으로버무린것으로보기만해도군침이돌았다.
조개전역시싱싱한바지락에채소를넣어부친것인데술안주에그만이라고해설자는몇번이나곱씹는다.
가뜩이나군침이도는판에한술더떠장만한밥상을마주한노부부는연신"아이구,맛있네"를연발한다.
도저히참을수가없어한잔생각이간절했지만그저께과음했던’전과’가있는지라참을수밖에…^^
조개회에대한추억이내겐많이있다.
생선회를즐겨드셨던아버님은조개회도참좋아하셨다.그래서어머님은종종굵은’백합’을사와서직접칼로입을열었고,벌려진백합속에는싱싱한조개살이꿈틀거렸다.백합의입을열면우유빛이도는진한국물이나오는데그걸그릇에정성껏받아마셨다.
가끔내게도국물을마시게했고짭조름한국물은약간비릿했지만나름감칠맛이있었다.
아버님은백합에초고추장을넣어회로드시기도했고,때로는불에구워술안주로드셨다.
덕분에나도일찍부터조개회의진미珍味를알게되었고…..
지난5,60년대만해도진주-삼천포간에는기차가다녔다.
특히사천에는예로부터조개(진주말로’개발’)가풍성해서새벽이면수확한조개를기차로진주까지날랐다.
때문에진주중앙시장에는사천에서올라온조개가항상지천이었고,진주사람들은싼값에조개를입에달고살았다.그래서그곳밥상에는항상조개가개근을했다.콩나물국에도조개,된장국에도반드시조개가들어갔으니조개는진주사람들의식생활에일등공신인셈이었다.
내친구들중에도어머님이조개장사를해서공부한애들이몇있다.
그애들은기차로통학하며열심히공부했었다.그래서몇몇은세상말로출세도했고….
그애들을키운어머님들은새벽부터이고지고기차에시달리며악착같이장사를했었다.
그래서진주지역에는’사천개발장수’란말이있는데,생활력이강한여인들을일컫는말이었다.
어릴적시장에가면조개를통에수북히쌓아놓고열심히까고있는아줌마나할머니들을많이보았다.
아마도지금은그런풍경이사라졌을터이지.
사천에서도조개회를제대로맛보려면선진을가야한다.
사천읍에서삼천포가는중간에있었고오른족으로꺾어지는삼거리에는충무공의동상이서있었다.
선진은임란시충무공이왜선倭船을대파시킨곳으로도유명하다.
삼거리에서한참을들어가면횟집촌이나오는데,2000년대초까지만해도가격이저렴했다.
이곳에는생선보다도백합이더유명하다.몇년전서울친구들과벚꽃구경간다고나섰다가선진까지가게되었다.
물론꽃구경도하고백합을맛보기위해서였다.
이곳에서친구들은백합회의그달콤하고싱싱한맛에놀랐고,저렴한가격에두번놀랐었다.
그만큼선진의백합은그어떤곳보다도(가끔티비에나오는그곳보다도)싱싱하고값이착했다.
그러나이젠자신있게말할수가없다.3년전인가다시벚꽃구경갔다가차가밀려아예들리지도못했고길이새로뚫리는통에충무공동상도보이질않았다.
그러니이제그곳백합에대해선장담할수가없는것이다.
백합도좋지만사천의바지락은워낙싱싱해서회로도많이먹었다.
그걸생각하면,내아버님은’생生것’을엄청좋아하셨던걸로생각된다.
소라도사와서망치로깨어서는데치질않고회로드셨으니말이다.
바지락이야기를하니생각나는게또있다.
80년대초모협동조합에서근무할때종종남해로출장을가곤했다.
그곳에서일이끝나면만나는분이있었는데모조합의이사장이었다.내가가면이분과무조건가는곳이있었다.
골목에노부부가하는작은술집이있었는데그집에는언제나조개를꼬치에꿰어말리고있었다.
우리는그말린조개를모테(석쇠)에구워술안주로했었다.
말린조개를구워초고추장에찍고소주와곁들여먹는그맛이란….^^
서울에선도저히상상할수없는맛을나는그때그곳에서이미맛보았었다.
그나저나아직도그때그조개회가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