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은 오늘도 말없이 흘러만 간다

고향을찾은지난월요일은유등축제가끝난다음날이라남강주변은고요했다.

열사흘동안수십만의인파가몰려들어소란을떨었건만남강은언제그랬냐는듯이조용히흘러가고만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내린나는걸어서5분여거리인남강교위를천천히걸었다.내기억으로남강교를직접걸어본게40여년전의일이었다.그때는시내버스도드물어대개걸어서강을건넜다.

강을건너오른쪽길은하동가는길목이었고,왼쪽길은남강을끼고진주농고(현경남과기대)와진주농대(현경상대)로가는길이었다.그길엔대나무밭이있어여름엔대나무향을맡으며걷는낭만이있었지만겨울엔까마귀떼들이몰려들어을씨년스런길이기도했었다.

남강교에서촉석루쪽을보니강물위엔유등축제의잔재들이남았고,오른쪽진주성지입구엔차량행렬이줄을잇고있다.길오른쪽엔’꼼장어'(말린붕장어)에양념을발라구워서파는가게들이들어서있다.

멀리신안벌판의아파트단지들이보인다.

남강교에서바라본촉석루와진주성지일대의모습이다.

70년대중반까지만해도진주성지에는민가들이있었다.70년대후반성지정화사업으로민가들은철거되었고박물관이건립되는등유적들이정비되었다.

진주성지는임진왜란의대표적인유적지이기도하다.

강위에는유등축제기간동안가교가설치되어도보로강물위를건너기도했다.

남강교를건너서바라본촉석루풍경이다.

유등축제기간동안많은볼거리들이있었음을짐작하고도남음이있었다.

청명한가을하늘아래고즈넉한진주성지의풍광이다.

남강교에서바라보니건너편에대밭이있고,그뒤로망경산도보인다.

70년대초까지만해도푸른대나무밭이강변에숲을이루었지만이젠일부만남아있을뿐이다.

남강변의대나무숲은진주의또다른명물이었는데이런저런이유로없어진걸보니아쉬운맘이앞선다.

개발도좋지만옛것을보존하면서개발하는길은진정없는것일까.

시월의남강은면경面鏡처럼잔물결하나없이깔끔하다.

진양호가조성되기전인60년대후반까지만해도여름철이면홍수로인해시뻘건황톳물이무섭게밀려내려오고는했다.그물속에첨벙뛰어들어아이들은멱을감았고….

음력시월사흘이면개천예술제가열렸고,우리들은저마다하나씩의등불을들고남강변으로나가물위에등을띄우며소원을빌고는했었다.

420년전인1593년계사년음력6월,왜군은12만의병력으로진주성을재차공격했다.

전해임진년의참패를앙갚음하기위해서였다.그전투에서진주성의7만민관군은옥쇄玉碎했고,6월29일의랑논개는스무살의꽃다운나이에왜장게야무라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안고남강에서산화散華했다.

그때그호국의애끓는함성을남강은들었으리라.

그래도남강은오늘도말없이흘러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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