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질주하던버스는국도로길을바꾸고산청읍내로들어섰다.
한때는뻔질나게드나들었던곳이었지만실로오랜만에산청을찾았다.30여년전조그맣던읍내는현대식건물도많이들어섰고,버스터미널옆에는아파트공사가한창이다.
‘십년이면강산도변한다’고했었다.강산이세번이나변할동안못찾아왔으니’상전벽해桑田碧海’가되었다한들변했다고말할수가없다.
산청읍에서진주까지는국도로달렸다.겨울이건만내눈엔푸른나무숲들이들어왔다.대나무숲이다.
대나무를보는순간아,드디어고향엘왔구나하는생각이들었다.대나무숲은진주까지이어졌다.
나는이상하게어디서건대나무를만나면고향을떠올린다.그만큼내머릿속엔고향과대나무가깊이있게각인되어있다.그렇다고진주에유독대나무가많은것은아니다.아직도시내의작은산들에는대나무들이있긴하지만많은편은아니다.오히려대나무구경하기가쉽지않다.
지난날남해안고속도로를타고고향에갈적에도지수톨게이트를벗어나면가장먼저눈에들어왔던게길옆의대나무숲이었다.그때도그대나무숲을바라보며고향에왔음을실감했다.
대나무는내게아스라한추억을불러오는나무였다.겨울이면칼바람에파르르떠는그대나무잎새소리가내기억을추억의늪으로안내하곤했다.
작가이문열은소설’그대다시는고향에가지못하리’에서첫머리에이렇게썼다.
[누구든지고향에돌아갔을때,그걸대하면"아,드디어고향에돌아왔구나"싶은사물이하나씩은있기마련이다.그것은이십리밖에서도보이는고향의가장높은봉우리일수도있고,협곡의거친암벽또는동구밖노송(老松)일수도있다.그리워하던이들의무심한얼굴,지서뒤미류나무위의까치집이나솔잎때는연기의매캐한내음일수도.](1.’롤랑의노래’중)
내게는고향을떠올리는사물이대나무인것이다.
대나무에대한추억은희미하다.
육이오동란이났던1950년이다섯살때였으니뚜렷한기억은없다.하지만한가지기억만은또렷하다.
그해여름,우리가족은합천군병목으로피난을갔다고했다.다섯살짜리가육십리를걸었다는얘기도나중에어른들로부터들었다.
지금도기억나는건그곳의방공호였는데대나무숲에있었던게기억난다.피난지의대나무숲에서뛰놀았던기억과얕으막했던방공호가어렴풋이기억난다.
그후대나무와의인연은죽순으로이어졌다.
오월쯤되면고향의시장에는죽순들이지천으로깔렸고,어머님은이걸사오셔서껍질째가마솥에서삶았다.
푹삼긴죽순은찬물에행궈껍질을벗겼고,약간은대냄새가나는삶은죽순을죽죽찢어우리는된장에찍어서잘도먹었다.또식초와고추장으로무침을해서먹었는데봄철이면빼놓을수없는요리였다.
이래저래나는대나무에담긴추억이많다.
그래서대나무만보면고향을느끼는지도모를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