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클라우디오아바도(ClaudioAbbado)가세상을떠났다.
1933년6월26일이탈리아의밀라노에서태어난그는2014년1월20일조국에서가족들이지켜보는가운데편안하게생을마쳤다고한다.81년의삶을살다가간것이다.
보도를보면아바도를가리켜’우리시대최고의마에스트로’니’거장’이니하는칭호를부여하고있지만,나는그저’지휘자’,아니면’명지휘자’로부르고싶다.절대로그를낮추거나폄하해서가아니다.평생겸손하고소탈한삶을살았던그였기에거창한존칭따위는달가워하지않을것같아서이다.
아바도는음악가의가정에서태어났다.아버지는바이올리니스트였고가족모임에서실내악을연주할정도였다니멘델스존만큼이나음악적인환경에서유년기를보냈을것이다.
밀라노음악원에서피아노를배웠고,빈음악아카데미에서지휘를공부했다고한다.1958년쿠세비츠키콩쿠르에서우승,26세에지휘자로데뷔했고,그후밀라노라스칼라극장의음악감독,빈오페라음악감독을역임했다.
그가전성기를누린것은1979년부터1986년까지런던교향악단의상임지휘자로활동할때였다.
명성을얻은그는1990년베를린필의수석지휘자로취임하면서우리시대명지휘자로우뚝섰다.
아바도가베를린필의지휘자로선택되었을때의에피소드는지금까지회자되고있다.
푸르트벵글러에이어35년동안베를린필을’통치’했던’황제’카라얀이물러나고1989년새지휘자를뽑을때단원들은후임지휘자를놓고비밀투표를했다고한다.그당시후임물망에올랐던지휘자들은로린마젤,다니엘바렌보임등이었다고한다.그런데투표결과아바도가선택되었다.
의외의선택에세상은놀랐고,아바도자신도놀랐다고하니쟁쟁한거장들을제낀그의저력을알만하다.
그렇지만아바도가걸어간베를린필지휘자로서의여정은만만치않았다.
2002년까지12년간수석지휘자로활동하면서50여명의신단원을영입하며분위기쇄신을위해애썼지만쉽지만은않았다.’황제’카라얀의색채를지우기가힘들었고,고참단원들과의충돌도많았다고한다.
뿐만아니라보수적인독일의유명오케스트라를이방인인이탈리아사람이지휘하는데대한거부감과보수적인관객들의불만도컸다고한다.아바도는현대음악에관심이많아적극소개하려고했지만전통적인고전음악을선호하는관객들은이를좋아하지않았다니그의입지가어려울수밖에없었다.
그런가운데도아바도는베를린필을자율적이고부드러운분위기로바꾸기위해노력했다고한다.
단원들과의불협화음때문이었을까.2000년아바도는위암수술을받았고,2년후베를린필을떠났다.
그후투병생활을하면서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지휘를맡아큰성공을거두었다.이와함께유럽연합청소년오케스트라와구스타프말러청소년오케스트라를창단,청소년들의음악활동을위해힘을쏟기도했다.
이같은공로로이탈리아의종신상원의원에임명되는영예를얻었다.
아바도의명성은명쾌하고정교한곡해석과풍부한표현력에있었다.
그에게는특유의카리스마도없고기이한행동을통한’별난’명성을얻지도않았다.그의지휘하는모습을보면더러는소극적이고유려한멋이없다고평할수도있다.
생전에베토벤의교향곡전곡과말러의교향곡전곡을녹음했다.둘다아홉곡씩이어서재미있는우연일수도있지만,그의말러9번4악장아다지오의연주는특이했다고한다.곡자체가종반에들면서음량이잦아들듯사그러지는데이때아바도는연주회장의조명도점점사그러들듯연출해서청중들에게감동을주었다고한다.
말러의교향곡은여러지휘자들이명반을남겼지만,가장대조적인두지휘자는레너드번스타인과클라우디오아바도가아닐까한다.번스타인이지휘하는빈필의연주를보면그화려함과유장함이타의추종을불허하게한다.
번스타인특유의지휘하는제스쳐는’백조의호수’공연을보는듯하다.덩실덩실춤을추듯지휘봉을흔들기도하고어떨땐펜싱을하듯지휘봉으로프랑스검객의모습을보이기도한다.한마디로보는게즐겁다.
이에반에아바도의지휘는다분히학구적이다.별제스쳐도없고지휘봉역시멋을부리지않는다.
그렇지만그의지휘에는말러의고뇌와생에대한회한이겹겹이묻어있다.
나는아바도의연주앨범가운데멘델스존의교향곡3번’스코틀랜드’를좋아한다.
물론4번’이탈리아’의경쾌하고깔끔한여운도좋지만,낙천적인멘델스존이보여주는우울하고금방이라도눈물을쏟을것만같은서글픔이더욱좋다.
아바도는런던교향악단을통해멘델스존의애틋한감정을여과없이전해주고있다.
자,이제명지휘자의죽음을애도해야겠다.
베를린필은홈페이지를통해"우리는놀라운음악가와인간의타계를애도한다.음악에대한그의사랑과채워질줄모르는호기심은우리에게영감을주었고우리의음악에도흔적을남겼다"고애도했다.
클라우디오아바도여,우리들에게준그음악의기쁨,그렇지만그힘들었던멍에를이제내려놓고천국에서평안한안식을보내소서.신이여,아바도의영혼에평안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