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시기’ 추웠던 그 시절의 설날

저녁답에티비를보니벌써부터고속도로가밀린다고아우성이다.

휴게소는미어터지고,리포터는전국의고속도로망를연신보여주며길떠날사람들의가슴을조리게만든다.

경부,호남,서해,영동,중부등등’손바닥만한’한반도의절반남쪽을사통팔달로뚫어놓았는데도명절때만되면귀성,귀경전쟁을치러야하니,삼사십년전달랑경부,호남두개의고속도로만있었던시절은어땠을까.

그시절어린남매를데리고심야버스로주차장이된고속도로를노심초사하며달려야만했던시절을회고하니등골에진땀이난다.

그시절에비하면지금은고생도아니다.서울서부산까지여덟시간걸린다고난린데,그시절엔서울서진주까지장장열여섯시간을달린적도있었다.

남들은고향간다고부산한데티비만’디다보고’있는내신세가좀처량하다.

옛속담에’방구(방귀)질나자보리양식떨어진다’더니길(대전-통영고속도로)닦아놓으니고향갈일이없다.

부모님은이승을떠나셨고,명절이면우리집으로다들모이니편하긴하지만웬지마음이울적하다.

내가초등학교를다닐무렵인50년대중반의설날을생각하면날씨가’억시기’추웠다는기억밖에없다.

그시절엔왜그리도날씨가추웠는지모르겠다.아무리생각해도오들오들떨었던기억뿐이니말이다.

이유는뻔하다.그때만해도굶어죽지않을만큼밥을먹었다.제법농토를가지고소작까지주었던우리집도끼니걱정을할정도였으니삼시세끼를챙겨먹는집은쉽지않았다.

게다가나는맏이라고위해주는덕분에’입이짤라(아무것이나안먹고가려서먹어)’항상보면갈비가앙상했다.

영양실조에당시의입성또한무명옷종류였으니말해무엇하랴.

그래서내기억엔그시절의설날은추웠던기억뿐이다.

바람은또왜그리거세게불었던지지금생각해도등골이오싹하다.

지리산이가까와서였을까.아침,저녁지리산천왕봉의눈덮인산봉우리를멀리쳐다보며살았으니말이다.

방안에서들어보면칼바람이지붕위를훑고지나가는소리가마치천군만마가질주하는소리처럼섬찟하게들려왔다.’피잉~~~’하는그소리,요즘내가한잔할때면즐겨듣는키타로[喜多郞]의’실크로드’앨범을듣다보면곡과곡사이에서그바람소리가들려온다.

그소리를들을때마다그시절의칼바람소리가떠올라으시시한느낌이들기도한다.

‘작은설날’이라는그믐밤,온집안에불을죄다밝혀놓고칼바람을맞으며마당가녁의감나무밑에서두손모아절하시던할머니의모습이생각난다.

그때할머니는"조상님네들,우떻튼지(어떻든지)자슥들,손지(손주)들복많이주시고…"하시며한시간도더넘게빌던모습이떠오른다.아,아!그리운할머니의모습.

‘억시기’도추웠던그시절의설날,그래도고단했던그시절이웬지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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