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더욱기죽게만든것은비단하얀쌀밥과고기반찬만이아니었다.
그들가족은가난뱅이청년의약을올리기라도하는듯틈만나면커피를마셔댔다.60년대초세끼밥먹기도힘들었던대다수가정에서커피를마신다는건상상조차할수없는일이었다.그렇지만그때그들은커피포트에물을끓여예쁜꽃무늬가수놓인잔에따라홀짝홀짝마시곤했다.
간혹청년이커피타는걸신기하게보고있으면강철이사촌여동생은배시시웃으며청년에게무안을주곤했다.
"야,니도이렁거마실줄아나?너거집에는이렁거없지?"
청년이무안해서낯이붉어지면그녀는자지러지게웃었다.보다못한강철이가
"야,은미야.우리친구한테그라모되나"
하고면박을주었다.그럴라치면그녀는성난표정을짓고쪼르르제방으로들어갔었다.
그래,그녀의이름이은미였지.그이름땜에청년은그녀로부터무안을당한적이있었다.
그때가고교2학년시절이었다.청년이강철이를만나러그녀의집을드나들며그런대로얘기도나누고더러타박을받기도했지만곰살맞은인사정도는나눌때였다.
하루는길거리에서그녀를마주쳤다.그녀는친구두명과하하호호깔깔거리며오고있었다.
청년은반가워서그녀를향해
"은미야,학교마칬나"
하고다가갔다.뜻밖의만남에잠시어색한표정을짓던그녀는청년에게야무진타박을날렸다.
"야,내이름니불러라고우리아부지가지어준거아니거든,알겄나?"
무안을당한청년이낯을붉히며돌아서자뒤에서깔깔거리는목소리들이날아왔다.
"은미야,누고?니짝사랑하는애가?"
"얘는,몰라.나는눈(누구인)지도모린다."
한참동안골목길을헤매던청년은마침내어머니가가르쳐준집을찾았다.
골목끝에파란대문이보였고대문은열려있었다.대문을들어서자마당가운데우물이보였고우물가엔석류나무한그루가비를맞고서있었다.집은기역자본채와문간의사랑채로꽤넓은저택이었다.집안은고요했다.
"누구없십니꺼"
청년은문간앞에서서소리를질렀다.잠시후사랑채의끝방문이열리며얼굴이나왔다.그녀은미였다.그녀는청년을보고는잠시놀란듯했다.
"여갠우짠일로."
쪽마루에나온그녀의행색은말이아니었다.비오는날낮잠이라도잔듯얼굴은부시시했고,세타에구겨진긴치마차림의몰골이었다.
"갠히자는사람을깨았는가베.내는강철이소식이라도좀들을까싶어서."
그녀를바로쳐다보지도못하고변명처럼늘어놓는청년의말을가로채며그녀가살짝미소를띄웠다.그러고는헝클어진머리를손으로다듬으며
"그래,비가많이도오네.잠시방으로들어온나"
하고덤덤하게말했다.그녀가나왔던방안은제법깔끔하게정돈되어있었고향긋한크림냄새가풍겨왔다.
"어른들은안계시나?"
청년의말에그녀는
"아부지하고어머이는볼일이있어나갔다"
며무표정하게대답했다.
"우리집이야기는들었제?사기당해서쫄딱망했다꼬.그라고넘어집사랑채에서세살고있다꼬."
청년은뭐라고대답해야할지몰라머뭇거렸다.그러자의외로그녀는웃는얼굴로말했다.
"사람사는기별거아니데.망할라쿵게하루아침에이리됐다아이가."
그녀는대답도못한채장승처럼서있는청년에게말했다.
"집안무너진다,앉아라.그라고차한잔할래?"
청년이앉자그녀는부리나케밖으로나갔다.
"잠시만기다리라.퍼뜩물데파서커피타오께."(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