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내리는 비(3)

고교생시절의은미는빼어난미모에깔끔한차림새로남학생들의선망을한몸에받았다.

뽀얀얼굴에팔등신의몸매는보는사람들의눈을부시게했고,또래남학생들의가슴을언제나뛰게만들었다.

모두가입었던까만교복역시은미에겐예외여서하얀칼라와스커트는그녀를더욱돋보이게했다.

그녀를처음본남학생들은저절로입이벌어졌고

"야,어떤가수난(계집앤)지잘생깄다야.저름마(저애)가누고?"

하며그녀에게서눈을떼지못했었다.

세상말에’인물값한다’더니외모와는달리그녀의성깔은몹시도짖궂었다.

청년이은미에게서당한상처는두고두고그의가슴속에각인되어있을정도였다.그때의수모를생각하면청년은저도모르게어금니를깨물었고가슴이쓰라렸다.

은미의친구중에인혜라는애가있었다.

청년이강철이를만나러그녀의집에가면은미는인혜와깔깔거리며얘기를나누고있었다.얘기는대개가영화이야기였고영화에관심이많았던청년도자연스레끼어들곤했다.

그러다보니청년은인혜와도자연스레친해졌고강철이에게그녀를한번만나게해달라고부탁했다.

강철이는씩웃더니

"그래,인혜가니맘에든다말이제.내가다리함나보까"

하고선선히나서주겠다고약속했다.

며칠후청년이강철이를만나러갔다가은미를만났다.청년을보자은미는

"철이(그녀는강철이를그렇게불렀다)가인혜이야기하데.한번만나게해주까"

하고물었다.

"그래주모고맙고."

청년의말에그녀는

"그라모낼모레목요일저녁일곱시에만복당빵집으로나온나.인혜한테그리나가라쿠께."

"고맙다,은미야."

청년은넙죽절이라도해주고싶을만큼고마왔다.

목요일저녁,청년은일찌감치여섯시쯤우체국옆에있는만복당빵집으로나갔다.

교복대신아버지점프를몰래입었고,어머니에게참고서를산다고졸라비상금도마련했다.

60년대초만복당은고교생들의아지트였다.친구들과의모임은물론이고때로는여학생들과의그룹미팅도이곳에서가졌다.당시만해도갈데없는고교생들에겐유일한만남의장소였다.

일곱시까지한시간여기다리는동안청년은몇번이나친구들과마주쳤다.친구들은

"야,니가사복까지빼입고여게서머하네.누구만날사람있나"

하며실실웃었다.청년은일부러인상을쓰며

"임마,부정탄다저리가라.빨리안갈래"

하고주먹을드는시늉을했다.친구들은

"그래,알았다,재미마이봐라"

하며자리를피해주었다.

약속했던일곱시가지나고여덟시가되어도인혜는나타나지않았다.

자주다니던단골빵집이었지만두시간씩이나그냥앉아있기도미안해서청년은단팥죽과찐빵을시켰다.

평소같으면달콤한단팥죽과팥죽에설탕을뿌린찐빵을게눈감추듯먹었겠지만그날은입맛이없었다.

벽에걸린시게는여덟시반을지나고있었다.청년은은근히부아가치밀었다.사람을불러놓고망신을주다니.

그때문이벌컥열리며은미가들어왔다.그녀의옆에는안면있는여학생도있었다.

은미는청년이혼자있는걸보고놀라는시늉을하며

"아니,인혜가안죽도안나왔나,니혼자있그로"

하며고개를갸웃했다.둘은굳은얼굴로앉은청년의앞자리에앉더니

"하이구,빵하고단팥죽도다식었네.아까바라.여게포크하고숟가락좀갖다주이소"

하더니헤헤거리며빵과단팥죽을먹어치웠다.둘은서로보며눈웃음까지쳐가면서.

그날인혜는나타나지않았다.

그게은미의장난이었음이며칠후드러났다.

우연히길거리에서만난인혜에게청년이화난얼굴로따졌다.사람을우습게해도유분수지,그럴수있냐고.

청년이짐짓성을내며말하자인혜는슬쩍웃더니정색을하고말했다.

"나도그이야기들었다.그거는은미가장난친거라쿠더라.내는니하고그런약속있는거몰랐다아이가."

"마이기다맀제,물이얼릉안끌어가꼬."

방문이열리더니은미가소반을들고들어왔다.

소반위에는찻잔두개와홍시가놓여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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