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웠던 ‘봄’ 이야기

봄처녀가금방콧노래라도부르며달려올것만같은화창한날씨다.

겨울이시작되기전기상대의위압적인예보와는달리이번동장군은젊잖게보따리를싸려는가보다.

하긴동해안지역의기록적인폭설로크고작은재난들이있긴했지만그런데로무난하게넘어가는듯하다.

따스한햇살을따라홍제천에나갔더니봄빛이완연하다.

오리떼도한가롭게물놀이를하고있고,천변을거니는사람들의옷차림도가벼워보인다.

미풍을타고잔물결치는개천속에는송사리떼들도몰려다닌다.

아!봄이구나,봄이왔구나하고가슴속으로외쳐대다가문득오래전의어떤일이떠올랐다.

봄과관련된’사건’이었다.그일을생각하니갑자기낯이뜨거워진다.

사건의발단은베토벤의’봄’소나타였다.

꼭50년전인64년봄고향에서주피터음악회를결성하고’고전음악의대중화’란거창한슬로건아래’고군분투’하고있을때의이야기다.여기서’고군분투’란,지방소도시여서매주정기감상회때마다찾아오는’손님’이적어적자로허덕였기에붙인말이다.

그해4월쯤동산예식장에서감상회를가질때였다.

계절이봄이어서감상곡을고르다가베토벤의바이올린소나타5번’봄'(OP.24)으로정했다.

감상회날짜가되었지만돈이없어음반을사질못해단골레코드가게에서빌렸다.그러다보니사전에음악을충분히들을수가없었다.솔직히고백하자면난생처음들어보는곡이었다.

한번도들어보지못한곡을해설서만달달외워해설을한답시고나섰다.

그러니’사고’가날수밖에.^^

감상객들,그날따라많이모였던걸로기억한다.

그감상객들앞에서그럴듯하게’노가리’를깐후디스크를턴테이블위에얹었다.

음악이시작되는데초다듬이부터급하게프레스토(Presto)로진행되었다.아닌데,’봄’소나타의1악장은분명히알레그로(Allegro)인데저렇게폭풍처럼빠를수가.

이상해서자켓을봤더니아뿔사,바이올린소나타9번’크로이처'(OP.47)의3악장이아닌가.

사건의전말은이랬다.

빌린음반에는베토벤의바이올린소나타5번’봄’과9번’크로이처’두곡이수록되어있었다.

그런데9번이전면에,5번은후면에있었는데,’크로이처’의곡이길다보니전면에는1,2악장이,후면에는’크로이처’의3악장과’봄’1~4악장이수록되어있었던것이었다.

그런데라벨도찬찬히보질않고후면의첫곡부터시작했으니’크로이처’3악장이’봄’의1악장으로바뀐것이었다.

등골엔식은땀이흐르는데이미음악이시작되었으니어쩔도리가없었다.

지금생각하면바늘을잘못놓았다고양해를구하고다시시작해야하는데,그땐총망중에그럴정신이없었다.

그대로밀어부쳤다.다행히감상객중에누구한사람음악이잘못되었다고항의하는사람도없었고다들조용히잘듣고있었다.지금생각해도내가그렇게뻔뻔스러울수가없었다.

‘크로이처’3악장이끝나자마자얼른’봄’2악장에바늘을올렸다.

2악장부터는제대로돌아간셈이다.

참,지금생각해도얼굴이화끈거리고낯이뜨겁다.

정말,감상객들이몰랐을까,아니면모른체눈감아주었던것일까.

지금생각해도그것이의문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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