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B시에서대학을다닐때인60년대중반유행했던노래중에’보슬비오는거리’가있었다.
저음의여가수가불렀던그노래는꽤인기를얻어라디오만켜면흘러나오곤했었다.
멜로디도쉽게따라부를수있어서젊은이들사이에서도인기가있었다.
청년이고향친구의연락을받고모임장소인중국집으로들어섰을때밖에는봄비가내리고있었다.
안내해준방안에는한동네에서살던남녀친구댓명이먼저와있었다.
몇년사이친구들은갓스물을넘긴총각,처녀로변해있었다.그가운데C의얼굴이들어왔고그녀역시반갑게미소로맞아주었다.
C의아버지는소문난술꾼이었다.그녀가살았던집이청년의집과같은골목의중간쯤있어그녀의아버지와는아침,저녁으로만났다.그때마다그녀의아버지는취기가올라시뻘건얼굴이었고,옆으로지나가면홍시냄새와도같은알코올냄새가역겹게풍겨왔다.
그남자는하는일없이술추렴으로소일했다.그러다보니그녀의어머니가밀주密酒를담가생계를꾸리며두딸을키웠다.당시는가정집에서술을담그는게불법이어서세무서에서종종’술을치러(단속하러)’나오곤했다.
간혹그녀의집대문앞에발각된술독이나딩굴어있었고단속원과삿대질을하는그녀어머니의모습을볼수있었다.
그와같은고단한일상속에서도C의집에서는또하나의볼거리를동네애들에게제공해주곤했다.
길지않은골목이다보니웬만한소리는옆에서나는것처럼들렸는데밤마다술주정하는그녀아버지의고함소리가동네애들을집앞으로끌어모았다.
낮은대문너머로보이는좁은마당에는사기그릇몇개가진작박살나있고남자는런닝차림으로마루에앉아고래고래고함을질렀다.고함의내용은매번같았는데술마신다고왜잔소리를하느냐는것이었다.
그녀의어머니는말없이방문앞에서하늘만쳐다보고있었고그녀와어린여동생이훌쩍이며어머니의치맛자락을붙잡고있었다.
한참후떠들던남자가제풀에지쳐마루에서골아떨어지면아이들은대문께를떠났다.
그녀어머니의가냘픈울음소리를귓전으로들으면서.
C는초등학교를졸업하기전에동네를떠났다.
사람들은술주정뱅이아버지가정신을차리고직장을얻어B시로갔다고수근댔다.
그러다가3년전그녀의아버지가부두에서일하다가사고로죽었다는소식이날아들었다.
동네여자들은혀를차며그들가족의비극을안타까워했다.
중국집에서나왔을땐빗줄기가제법거세져있었다.게다가바람까지불어한기를느끼게했다.
친구들은탕수육과함께마신배갈몇잔에불콰해있었지만찬바람에몸서리를쳤다.
무신노무날씨가이렇노.한여름쏘내기매이로내리네.
친구들은투덜거리며버스정류장으로흩어졌다.
청년도S동행버스에올랐다.얼핏보니C도뒤따라타는것이었다.
비오는밤이어서인지버스안은빈자리가많았다.청년과C는나란히앉았다.
참오랜만이네,니가여게로이사온기한십년은됐제?
청년의말에C는희미한웃음만머금었다.
너거아부지말이다.소식은들었는데안댔다.그래,너거어무이는우찌지내시노?
C는역시묵묵부답이었다.청년이오히려머쓱해졌다.
너거동생말이다,제법컸제?그래,지금고등학교2학년이다.
그제사C가말문을열었다.
벌써그리댔나.그래,니는어느대학댕기노?아까밥묵을때누가물어도아무대답을안했다아이가.
대학?밸소리하네.내는중학교나와서공장에들어갔다.울아부지가살았을때도집안이쪼달리서학교는생각도몬하고돈벌로나선기라.
칼로무를자르듯또박또박내뱉는C의말에청년은해머로한대맞은듯한충격을받았다.
가까스로창밖의풍경에눈길을던지며마음을추스리고있는데C가일어섰다.
우리집은다음정거장에서내린다.조심해서가래이.
잠시머뭇거리던C가한마디더던졌다.
아까우리어무이머하냐고물었제.우리어무이작년에딴사람만나서갔다.그래서동생하고둘이서산다아이가.
버스가서자C는쏜살같이내렸다.청년의얼굴로찬바람이덮쳐왔다.
보슬비내리는거리는봄비에젖어조는듯을씨년스럽게다가왔다.
어둠속저너머지난기억의조각들이희미한가로등불빛과함께망막을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