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강을 사랑했던 음악가의 ‘봄’

만개한봄꽃들이때아닌추위로몸살을앓고있다.

지난3월하순기상관측이래처음으로3월에서울에서벚꽃이피었다며방송들마다호들갑을떨었다.웬소란인가하고좀마뜩찮게생각했는데,아니나다를까.동장군의마지막시샘이시작된듯하다.

목련은이미하얀꽃잎을벗고새잎으로단장하고있고,동네뒷산의진달래도속절없이분홍빛꽃잎을떨쳐내며’봄날은간다’를부르고있을법하다.

지난일요일오후아내와동네안산을올랐을때개나리,산수유,진달래가꽃대궐을이루었고벚꽃도꽃망을을터트리기위해몸단장을하고있었는데이추위에어떨지안부가궁금하다.

이따가점심먹고한번안산에올라가봐야겠다.

슈만의교향곡1번’봄'(op.38)을동영상으로감상했다.

1841년3월31일라이프치히의게반트하우스에서멘델스존의지휘로초연되었다.그해슈만의나이는31세,피아노스승비크교수와의질긴법정투쟁에서이겨그의딸클라라비크와결혼한지1년후였다.3월말에초연되었으니봄맞이음악으로는최고의선물이었겠다.

그렇지만혹자들은이곡을’화사한봄’이아니라’우수의봄’이라고말하기도한다.특히도입부에서호른과트럼펫이연주하는팡파르가화려하기보다는우수에차있다고혹평을한다.그래서이비평가들은레너드번스타인이지휘하는슈만의’봄’은지휘자의발랄한제스쳐가덧칠되어있다며조지셸의지휘를더좋아한단다.

내가듣기엔번스타인의지휘가더좋았는데도말이다.^^

내가가진책에서슈만부부의모습을휴대폰으로찍었더니사진이별로다.하기사이책의발행연도가1962년이니인쇄상태가좋지않을수밖에없다.

호사가들은브람스를일컬어’스승의아내를사랑했던사람’이라느니어쩌구하며클라라슈만과요하네스브람스를얽어넣으려고야단이다.뭐,그런영화도나왔다지만난본적이없다.

물론브람스가클라라를동경하며사랑했던건틀림없지만세상사람들이보는그런관계는전혀아니었다.

서로를아끼며,걱정하며응원했던지고지순至高至純의사이였다고후세사람들은기록으로증언하고있다.

그런데도있을법한이야기꺼리로분식시켜그들을우스개소재로만들고있다니,한심하다.

분명히슈만(RobertA.Schumann,1810~1856)의생애는행복하지못했다.

기록을보면출판업자인아버지와다정다감한어머니의정서를받아글도잘썼고음악에도조예가깊었다.

어릴때부터동네피아노선생으로부터렛슨을받았고7세때는작곡에도관심을보였다고한다.11세때합창곡과관현악곡을작곡했다니가히천재의범주에들만했다.

대학에선법률을공부했지만진작걷어치우고20세였던1830년부터라이프치히에서소문난피아노선생비크교수밑에서피아노를배웠다.너무지나친연습으로손가락을다쳐피아니스트의꿈을접을때까지.물론그집에서클라라를만났고장인과의법정투쟁끝에결혼했다.

슈만은1834년부터10년간’음악신시보’란잡지를발간하면서작곡과평론가로서이름을날리기시작했다.

슈만을통해1843년에쇼팽이,1853년에는브람스가등단했으니실로그의힘은위대했다.

그렇지만집안내력에따른정신질환으로슈만은고통을겪어야만했었다.고소공포증에다가환시幻視,환청幻聽에시달렸다고하니그의고통이얼마나컸을까.

그래서결국44세였던1854년2월라인강에투신했다.마침지나던선박에구조되어정신병원에서요양을받았지만2년후인1856년46세의나이로이승을떠났다.

라인(Rhein)강은스위스중부지방에서발원하여독일과네델란드를가로질러북해로유입하는중부유럽의대하천이다.강의길이가1,390km에달한다고하니큰강이다.

슈만이왜라인강에몸을던졌을까.그유장한강물을들여다보며혹시어머니의포근했던품속을그린건아닐까.

내생각에슈만은라인강을몹시사랑했던것같다.그래서그는교향곡3번으로’라인'(op.97)을남겼던것이다.

그가남긴주옥같은명곡들뒤에숨은그의고민과갈망은무엇이었을까.

‘라인’을작곡하고4년후라인강에몸을던졌으니말이다.

아무래도교향곡3번’라인’에서답을찾아야만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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