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살았던동네뒷산에는벚꽃나무두그루가있었다.육십여년이지난지금은동네모습도많이바뀌었고동네앞을가로지르던개천도복개가되었지만뒷산은지금도그대로있다.
얕으막한산이어서놀이터가없었던그때뒷산은아이들의놀이터였다.꿀밤나무를비롯한갖가지나무들이울창하게들어서숨바꼭질을한다거나한여름철에는나무그늘아래누워낮잠자기도좋았었다.
완만한산머리에는벚꽃나무가두그루있어서봄이면화사한꽃이피었다.산아래동네에서도눈에뛸만큼벚꽃은흐드러지게피었고아이들은나무를타고올라가꽃가지를더러꺾기도했다.
그날도소년은아이들과뒷산에올랐다가꽃병에꽂을벚꽃가지를꺾어왔다.어머니는유달리벚꽃을좋아해서소년이꺾어온벚꽃을꽃병에꽂아거울앞에두곤했다.
소년이집마당에들어섰을때뒷집에서우장창사기그릇깨지는소리가났고뒤이어굵직한남자목소리가들려왔다.
말안해?말해.어서,오늘동네우사안할라모말하란말이다.
뒤이어울음섞인여자목소리가나왔다.뭘말하라꼬예,말할끼있어야할꺼아입니꺼.
이년이안죽도정신몬채맀네.말이끝나자뺨때리는소리가철썩났다.
뒷집에는나이지긋한내외가살고있었다.남자는예순이다된중늙은이였고,여자는쉰살이채안되었다.
내외는재혼한사이였다.홀몸으로재혼한여자는시내재래시장에서국밥집을하며남자를부양했다.
남자는하는일없이집마당에꽃밭을만들어소일했다.소년이가끔가보면이름모를꽃들이장관을이루었고겨울에는화분에옮겨방안에서키우기까지했다.
어머니는가끔한마디했다.저아자씨는꽃키우는재주하나는알아조야되능기라.아무리시들어진꽃도저아자씨손에마가모금방살아난다쿵께.
소년이꺾어온벚꽃가지를어머니손에채건네기도전에대문이부서져라열리며뒷집여자가달려들어왔다.
머리는산발했고저고리는고름이뜯겨져있었다.어머니는얼른여자를부엌으로숨으라며눈짓했다.전에도몇번있었던일이라여자도잽싸게부엌으로들어갔다.
잠시후뒷집남자가런닝차림으로뛰어들어왔다.남자는씩씩거리며고함을질렀다.
아지마씨,이년어데숨었어요.내오늘갤판을내고말끼다.
어머니는남자를붙들고사정했다.아자씨,참으이소.지발좀참으이소.
어머니의손길을뿌리치고남자는부엌문을열고들어갔다.이내남자는여자의머리채를끌고나왔고어머니의하소연도아랑곳없이뒷집에선여자의비명소리만낭자하게들려왔다.
며칠후벚꽃이우수수떨어져발길에밟히던날이었다.
소년이뒷산에서놀다가해질녘에집으로들어서자뒷집여자의혀꼬부라진소리가들렸다.
아요,동숭(동생).내는우짜모조컸노.날마다쌔빠지거로일해바야조은소리몬듣고갓신하모(걸핏하면)매타작잉께내맹에몬사는기라.내가국밥장사함서손님이술따라노코한잔묵어라쿠는데우찌안묵는다말고.내가술한잔묵어모그남애(남자)하고먼일이있는거아잉가눈에불을캐고추달을벌링께우짜모조컸노말이다.
행님,참으이소,그란다꼬우짤낍니꺼.살다보모아자씨도행님욕보는거알꺼아입니꺼.
치아라고마.이래가꼬는몬사는기라.동상,술이나한잔더조라.
아이구,아자씨가알모우짤라꼬예.이리묵어도갠찬심니꺼.
갠찬타.그사람은오늘안들온다.집안에일이있어가꼬오데갔다아이가.
그로부터며칠후,저녁답에뒷집에서짐승의신음소리같은남자의울음소리가들려왔다.
이년이,이년이갤국일을냈다쿵께,아이고오,사람죽네.
못들은체빨래를개고있는어머니에게소년이물었다.
어머이,뒷집아저씨가와웁니꺼.먼일이있십니꺼.
아이고모리겄다.뒷집아주무이가도망갔다안쿠나.저아자씨큰일났다아이가.
그날밤남자의울부짖는소리는오래도록들려왔다.
그울음소리때문일까.다음날뒷산의벚꽃나무는꽃도없이새파란잎사귀만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