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적시는 정겨웠던 그 목소리

지난5월마지막날의더위는대단했다.

매스콤에서는기상관측후5월의최고더위라느니어쩌니하고들호들갑을떨었지만무척더운날씨였다.

마침그날아들네가족이반려동물까지대동하고집으로와서하룻밤자는통에아내의성화로에어컨까지가동하는소란을피우기도했다.

우리집만해도5월에에어컨을켠것도처음이었다.

푹푹찌는더위와작렬하는태양을보노라니문득50년전의더위가떠오른다.

고교를졸업하고입시에낙방후음악써클을만들어’고전음악의저변화’란미명아래동분서주했던64년도의여름은지금생각해도대단한더위였다.

요즘은에어컨도있고선풍기도있어어지간한더위는피할수있지만,그때만해도피서도구는고작해야부채하나였다.그것도종이가헤져대나무살대가앙상하게드러난볼품없는부채가요즘의선풍기대용이었다.

그뜨거웠던그해여름,그날도나는음악감상회포스터를들고시내대로변의점포들을찾아쇼윈도에붙이고다녔다.주로찾아가는곳은양복점이나양품점,서점과레코드가게였다.대개의업주들은쇼윈도에지저분한포스터붙이는걸싫어했지만,염체불구하고양해를구했다.때로는이게무슨짓인가하는자괴심도생겼었다.시쳇말로’뜨신밥먹고이무슨바보같은짓인가’하는후회도생겼다.

그렇지만한번시작한것그냥둘수야있나,요샛말로’갈데까지가보자’는심정이었다.

뙤약볕아래땀을닦으며길을걷는데뒤에서어이,친구야하는소리가들렸다.

누군가하고뒤를돌아보니낯익은얼굴이서있었다.중,고교동창C였다.C는그해S대법대에붙어친구들의부러움속에상경했었다.인근S군출신으로수재였는데,우리는그친구가’지리산정기精氣’를받았다고말하곤했다.

C는그후사시에붙어중소도시지청장을지냈고수도권지검의부장검사로있다가오래전옷을벗고나와지금도변호사로활동하고있다.

C와나는인근다방으로들어갔다.시원한음료수한잔씩을시켜놓고한모금마시자마자C가입을열었다.

그친구는그날내게비수같은말들을던졌다.말인즉슨,지금네가그런종이쪼가리들고다니며음악감상횐가뭔가할때냐고다그쳤다.올해는실패했다고쳐도내년에는다시큰포부로도전해봐야할것아니냐며내자존심을푹푹찔렀다.속절없이대꾸한마디못하고친구에게면박만당한채헤어졌다.

요즘같으면어디대폿집에라도들어가서막걸리라도들이키며속을풀터인데,그때만해도순진했던시절이라꽉막힌속을다독거리며수정동S형집을찾아갔다.고교2년선배인S형도대학입시에내리세번씩이나낙방하고중앙시장에서장사하는부친가게를거들고있었다.

마침집에서부채질을하고있던S형은내얼굴빛을보고감을잡았는지얼른라디오를켰다.그러고는부엌에서시원한콩국을가져와마시라며권했다.

그때라디오에서흘러나온노래가브라더스포(BrothersFour)가부르는’여름의푸른잎새(TheGreenLeavesofSummer)’였다.

잔잔한기타반주를타고울려퍼지는그노래를듣는순간갑자기눈에서눈물이흘렀다.

어,와이라노.무신일이있었나.말좀해봐라.

S형은나를위로한답시고호들갑을떨었지만나는아무말도하지않았다.

노래가끝나자내맘도좀편해졌고,가슴의응어리도풀리는듯했다.

그래서요즘도무더운계절이오면이노래가생각난다.그친구의청양고추만큼이나매웠던충고도.

브라더스포는1957년워싱턴대학에재학중이던네명의친구밥프맄과마이크커크랜드,리처드포리,존패인에의해결성된4인조남성보컬그룹이었다.

그들은1959년샌프란시스코의유명클럽’헝그리아이’에서노래를부르다가픽업되어콜럼비아레코드에서앨범을내기시작했다.두번째앨범에수록된’그린필즈(Greenfields)’가크게힛트하면서세상에알려졌다.

꿈많던60년대청년기에참으로좋아했던정겨운목소리였다.

그래,오늘날도꿉꿉하고칵테일한잔하며이노래로옛추억에빠져볼까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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