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80년대중반,잘다니던직장을그만두고조그만사업체를차렸을때였다.

의욕을갖고이곳저곳에서자금을빌려시작한사업은생각보다어려움이많았다.믿었던곳에서는일감을주지않았고,두명의인건비조차감당하기어려웠다.’없는집에제사다가온다’는말이있듯이몇푼안되는월급이었지만돌아서면월급날이다가와피를말릴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정작집에는생활비조차가져다주지못해가족들을볼낯이없었다.의욕에가득찼던마음은어느새서서히무너져내렸다.

자꾸만나약해져가는마음을추스리고자가끔술을찾게되었다.

퇴근길에지하철을타러가노라면지나가는길목에조그만술집이있었다.이층집이었는데,상호는’꽃피는산골’이었다.허름한건물의계단을올라가면우측에열평남짓의홀이나왔다.

상호와는달리실내는어수선했고테이블대여섯개의볼품없는술집이었다.

주인은마흔살이됨직한여자였다.종업원도없이직접안주도만들고손님이없을때는술친구로앉아푸념을들어주기까지했다.

술은주로맥주를팔았는데,마른안주와맥주세병정도를마시면만원한장으로해결되는실비집이었다.

남의신변까지신경쓸기분이아니어서물어보진못했지만지나가며털어놓은말들로추측하건데여자는홀몸이었지만동거하는남자가있는것같았다.

그궁금증은그집을드나든지두어달지나밝혀졌다.

그날도초저녁퇴근길에그집에들렀다.

계단을올라막문을열려는데난데없는굵직한남자의목소리가문밖까지흘러나왔다.

그래,말못해?그자식이누구야.자꾸날피하려는게그자식때문이지.

무슨말을그렇게해요.그사람은술마시러오는그냥손님이야.그런사람이아니야.

그럼왜날피하는데.요샌집에도안들어오잖아.말해봐.그이유를말하란말이야.

그래,이유를말할게.이젠당신이싫어.우리헤어지자구.제발,부탁이야.

오라,이제실토하구먼.딴놈과눈이맞은거지,그렇지?

이어서여자의뺨을때리는소리와날카로운비명이흘러나왔다.그대로발길을돌렸다.

다음날,그집을다시찾았다.여자의뺨은퍼렇게멍이들었고,눈두덩은부어있었다.

그날따라여자가한잔달라며일부러잔을들고왔다.마침홀에는손님도없어술을대작하며여자의하소연을들을수가있었다.

한번결혼에실패하고홀몸으로이혼한여자는직장생활을하다가삼년전이술집을차렸다고했다.

그때만난사람이지금함께살고있는남자였다.사십대중반의남자는공사판잡부였다.

자신도홀몸이라고했던남자는몇달전전처와의사이에중학생아들이있다며데려오겠다는말을꺼냈다는것이다.물론여자는반대했고,그제안이후남자가싫어본래있었던어머니집으로들어갔다고했다.

그날밤여자는꽤많은술을마셨고나중에는흐느끼기까지했다.그나마홀에손님이없어다행이라며안도했지만낭패는금방일어났다.

밤아홉시쯤이었을가.출입문이세차게열리더니웬사내가들어섰다.날카로운눈매의호리호리한체격이었는데,사람을쏘아보는눈초리가예사롭지않았다.얼른계산을하고도망치듯빠져나왔다.

‘꽃피는산골’이문을닫은것은그로부터얼마지나지않아서였다.

그날이후그집엔가지않았는데,두주쯤지나중국음식점으로바뀌어있었다.

그여자의일이궁금하긴했지만그때쯤사무실도새활로를찾기위한기로에있어서신경쓸틈이없었다.

다만,그여자의앞날이잘풀렸으면하는바램은있었다.

그여자와의인연은그게끝이아니었다.

몇달후사무실을옮기고새영역의일을시작했다.전과는달리거래처도쉽게확보되었고,모든게순탄했다.잃었던활력도되찾아탄탄대로를달리듯했다.

그날도퇴근길에사무실인근식당에서맥주를한잔했다.안주를시켰더니주방에서일하던여자가들고왔다.음식을테이블에놓으며쳐다보는데’꽃피는산골’의그여자였다.

반가운김에어찌된일이냐고물었더니얼마전부터주방에서일하고있다는것이었다.

주인의양해를얻고잠시이야기를나누었다.그녀는그날이후그남자와헤어졌다고했다.

한동안어머니집에있다가심심하기도해서식당에서주방일을거들고있다며미소를지었다.

그래,잘되었구나.그생각도잠시며칠후그여자는식당에서사라졌다.

주인에게물었더니아무말도없이안나온다는것이었다.

그녀를마지막본것은그식당에서만나지한달쯤지나서였다.

그날도요즘처럼불볕더위가계속되던한여름이었다.일이있어늦은점심을먹는다고그식당에있었다.

차려준음식을막떠려는데그여자가들어섰다.대낮인데도어디서마셨는지흠뻑술에취해있었다.

그녀가뚜벅뚜벅테이블앞으로오더니손을내밀었다.무슨뜻인가하고쳐다봤더니입을열었다.

아저씨,집에가려는데차비가없네.돈좀줘요.

흘끔거리며보는다른사람들의눈길이부담스러워얼른만원짜리한장을꺼내주었다.

그녀는꾸벅절을하고는비틀거리며나갔다.

그녀는지금잘살고있을까.

무더위속에서문득그녀의고단했던인생살이가떠오른다.